문제는 많고 해법은 없는 답답한 상황
장관들에게선 위안 대신 피로감만 느껴져
국정안정과 쇄신 위해 대폭 개각 꼭 필요
지금과 같이 집권 3년 반이 되는 시점일 때, 과거 정부(김영삼정부 이후)들은 총리와 장관들을 얼마나 많이 교체했는지 찾아봤다. 우선 이맘때 총리는 박근혜정부에선 황교안, 이명박정부 김황식, 노무현정부 한명숙, 김대중정부 이한동 등 다 세 번째 총리였다. 김영삼정부 시절엔 이수성 총리였는데, 그는 무려 제5대 총리였다.
역대 정부에 비하면 문재인정부는 각료를 잘 바꾸지 않는 편이다. 현 정세균 총리는 이 정부의 두번째 총리다. 장관의 경우 과거 정권에선 이 무렵 네 번째 혹은 다섯번째 장관이 이끄는 부처가 수두룩했는데, 현 정부에선 법무(박상기-조국-추미애) 국방(송영무-정경두-서욱) 통일(조명균-김연철-이인영) 농림축산식품(김영록-이개호-김현수) 여성가족(정현백-진선미-이정옥) 등 5개 부처에서만 세 번째 장관이 나왔지 다른 부처들은 다 그 이하다. 외교(강경화) 보건복지(박능후) 국토교통(김현미) 등 3개 부처는 초대 장관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지난 정부들에서 초대 장관이 3년 6개월 넘게 재임한 경우는 박근혜정부의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김영삼정부의 오인환 공보처 장관 등 두 번뿐이었다.
과거 정부의 잦은 장관 교체는 고질적 병폐였다. 정책 실패나 대형 사고, 개인 비리에 의한 합당한 퇴진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국면 전환, 민심 수습 같은 모호한 이유로 경질되곤 했다. 개각 때가 되면 파워게임과 보은 논리가 작동하면서 문제 장관뿐 아니라 멀쩡한 장관까지 낙마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장관이 자주 바뀌면 정책의 밀도와 효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언제 옷을 벗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장관들은 소신도 뚝심도 발휘하기 어렵다. 공무원 사회는 늘 뒤숭숭하고 정책은 연속성을 잃고 중간중간 끊어진다. 김영삼정부가 외환 위기로 비참하게 퇴장하게 된 수많은 이유 중엔 5년간 무려 8명에 달했던 경제부총리의 잦은 교체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정부가 장관들을 잘 안 바꾸려는 것이 처음에는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국정책임 차원에서 의원들을 기용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집권 종반부로 접어든 지금은 반대로 정부가 장관을 너무 안 바꾼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청문회 문턱을 감안한다 해도, 이렇게까지 장관들을 눌러 앉힐 수 있을까 싶다. 물론 장관에 대한 선호는 다 다르고, 인사권자와 국민의 판단 기준도 다를 것이다. 만약 교체 1순위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다면 누군 김현미 장관을, 누군 홍남기 부총리를, 또다른 누군 박능후 장관이나 추미애 장관을 꼽을 것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추미애 장관을 유임 1순위라 답할 수 있고, 홍남기 부총리를 재신임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신뢰다. 아무리 인사권자의 신임이 두텁다고 해도 보통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그 장관은 바꾸는 게 옳다. 신뢰가 무엇인지는 상식의 눈에서 보면 된다. 더 이상 현안 해결을 기대할 수 없는 장관, 존재감이 사라진 장관, 말과 표정에서 피로감과 무력감이 느껴지는 장관, 국민과 국회와 소통이 되지 않는 장관은 바꾸는 게 맞다고 본다.
신뢰 잃은 장관이 하나둘 늘어나면 결국 정부 전체의 신뢰가 사라진다. 조롱받는 장관이 하나씩 생겨나면 정부 전체가 조롱거리가 된다.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피로감에 찌들어 지루한 기계적 답변만 반복하는 장관들이 한둘이 아니다. 어차피 위안도 솔루션도 내놓지 못할 거라면, 국민들의 답답한 속이라도 풀리게 장관 면면이라도 일신해야 한다.
연내 개각이 있다고 한다. 옛날식 발상일지 몰라도 국면 전환, 민심 수습을 위한 개각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남은 1년 6개월을 위해서라도 가급적 큰 폭의 개각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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