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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픽]스마트폰 다음은 메타버스? '고단한 현실의 탈출구 된 가상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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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박일근 논설위원이 살아 숨쉬는 우리 경제의 산업 현장과 부동산 시장을 직접 찾아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20여 년 전 컴퓨터와 인터넷은 세상을 바꿨다. 10여 년 전 스마트폰과 모바일 환경은 우리의 삶도 변화시켰다. 다음은 뭘까. ‘메타버스’에 주목하는 이가 많다. ‘초월, 가상’을 뜻하는 그리스어 ‘메타’와 ‘우주,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의 합성어인 메타버스는 디지털 가상공간에서 자신의 분신인 ‘아바타’로 다른 이와 소통하고 즐기는 걸 일컫는다. 이런 메타버스에선 상상이 현실이 된다. 누구든지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언제라도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이제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듯 10년 후엔 메타버스 없는 삶은 상상하기 힘든 시대가 올 수도 있다. 페이스북(오큘러스) 애플(VR 장갑) MS(홀로렌즈) 구글(글라스)은 메타버스 시대의 디바이스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메타버스가 각광받는 건 그만큼 젊은 세대의 삶이 힘들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현실에선 취업도 안 되고 연애도 힘들고 코로나19로 여행도 갈 수 없고 집값이 폭등해 부동산도 살 수 없으니 가상 세계로 탈출해 대리 만족하는 것이란 설명이다.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한 밀레니엄 세대와 Z세대)가 만들어낸 신대륙, 젊은 세대들의 가상 놀이터로 불리는 이유다. 결국 마케팅의 일종으로 한때의 유행에 그칠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메타버스 가상세계(VR)와 주요 플랫폼을 직접 체험하며 미래상을 점쳐 봤다.
현실과 구분 안 되는 3D 가상세계
메타버스란 용어가 처음 쓰인 건 1992년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다. “고글을 쓴 양쪽 눈에 서로 조금씩 다른 이미지를 보여줘 3차원 영상을 만든다. 이어폰을 통해 디지털 스테레오 음향을 집어넣는다. 이렇게 하면 가상의 세계, ‘메타버스’로 들어가게 된다.”
29년 전 묘사는 이미 실현됐다. 100만 대 넘게 팔린 페이스북의 가상현실(VR) 헤드셋인 ‘오큘러스 퀘스트2’를 쓰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메타버스를 체험할 수 있다. 머리에 스키 고글보다 두꺼운 형태의 헤드셋을 쓰고 양손에 마우스와 조이스틱 역할을 하는 ‘터치 컨트롤러’를 쥐면 가상세계에서 다양한 3차원 콘텐츠와 앱을 실행할 수 있다. 프랑스 파리나 스위스 알프스 산맥을 하늘 위를 날듯 감상할 수 있고, 3D 롤러코스터를 타고 가며 총으로 과녁을 맞히는 게임을 할 수도 있다. 파티가 한창인 도쿄의 클럽 한복판으로 들어가 함께 춤을 출 수도 있다. 필라테스 강사가 눈앞 1㎝ 앞까지 불쑥 다가올 땐 너무 사실 같아 깜짝 놀랄 정도다. 몰입도가 상당하다.
그러나 오래 착용하자 땀이 찼다. 실제로 페이스북은 최근 퀘스트2 헤드셋과 얼굴 사이에서 쿠션 역할을 하는 발포 고무 부분을 리콜했다. 피부 발진과 가려움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멀미다. 일부 앱은 실행 후 1분도 지나지 않아 머리가 어지럽고 속까지 메슥거려 더 이상 헤드셋을 쓰고 있을 수 없었다. 다만 멀미도 세대별 개인별 차이는 났다.
로블록스, 게임 즐기며 경제 활동
현재 가장 많은 이가 이용하는 메타버스는 미국의 로블록스(Roblox)다. 기본적으로는 게임 플랫폼으로, 회원 가입을 한 뒤 레고 블록을 닮은 아바타를 취향대로 설정하면 이후 스스로 게임을 만들어 올리거나 다른 유저들이 만든 수많은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애완 동물을 입양해 키우고 피자를 배달하는 단순한 게임도 많다. 이 때 동물을 치장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배달원으로 일을 하면 게임머니를 벌 수도 있다. 미국 16세 미만 청소년의 55%가 가입했고, 월간 활성 이용자도 1억5,000만 명이나 된다. 지난 3월 뉴욕 증시에 상장된 로블록스의 시가총액은 470억 달러(약 55조 원)를 넘나들고 있다.
그러나 워낙 자율성이 큰 게임 플랫폼이라 처음 들어가면 뭘 해야 할지 어리둥절하기 십상이다. 주어진 게임의 룰을 따르는 데 익숙한 세대 입장에선 재미를 느끼기 쉽지 않다. 내내 드넓은 메타버스 속을 뛰어다니기만 하다 나올 수도 있다.
제페토, 나를 닮은 따뜻한 캐릭터
미국에 로블록스가 있다면 우리나라엔 제페토가 있다. 피노키오 동화의 제페토 할아버지에서 이름을 따왔다. 네이버의 자회사 ‘네이버Z’가 운영하는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일단 캐릭터(아바타)가 딱딱하고 각진 로블록스보다 훨씬 부드럽고 예쁘다. 얼굴 인식 앱 ‘스노우’에서 출발한 덕에 셀카를 찍은 뒤 이를 바탕으로 자신을 꼭 닮은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 헤어스타일은 물론 얼굴 형태와 의상, 액세서리, 신발까지 보기에서 골라 개성을 표현할 수 있고 다양한 표정과 춤으로 영상을 만들 수도 있다. 현실에선 몸치라도 메타버스에선 순정만화 주인공과 아이돌을 합쳐 놓은 듯한 가상의 나를 창조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아이템이 없다면 직접 만들어 팔 수도 있다. 심지어 럭셔리 브랜드 구찌도 옷과 핸드백 등 다양한 패션 아이템을 판매하고 있다. 2억 명을 돌파한 제페토의 가입자 중 90%는 해외 이용자, 80%는 10대다.
가상 부동산 거래, BTS 공연도
SK텔레콤도 지난달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ifland)를 출시했다. 수많은 가능성(if)들이 현실이 되는 공간(land)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앞서 SKT는 코로나로 대학 캠퍼스에 가지 못한 순천향대 신입생을 위한 입학식을 메타버스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3차원 지도 ‘구글 어스(Earth)'를 기반으로 호주에서 만들어진 ‘어스2’도 관심이다. 지구와 동일한 크기인 가상 지구에서 10㎡ 단위(타일)로 땅을 나눠 사고팔 수 있다. 이미 한국인이 100억 원 안팎의 땅을 사들였다.
메타버스 원조격인 싸이월드가 이달 초 서비스를 재개한 것도 이런 메타버스 열풍과 무관하지 않다. BTS와 블랙핑크 등 연예 음악 엔터테인먼트 그룹도 메타버스를 활용한 뮤직 비디오 공개나 가상 팬사인회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반도체 성능, 5G 통신망, 코로나19 삼박자
메타버스는 하필 왜 지금 각광받고 있나. 박상현 페이스북코리아 이사는 “이제야 기술과 환경이 안정된 데다가 코로나19로 가속화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 이사는 “기본적으로 3D 기술은 데이터가 커 통신 속도가 빨라야만 하고 서버도 뒷받침돼야 한다”며 “대용량 반도체 가격이 크게 떨어지고 5G 시대가 되면서 VR 하드웨어의 성능과 인프라가 갖춰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재택 근무와 비대면이 확대되고 시간과 국경이 모호해지면서 초월과 가상의 개념이 일상이 됐다” 고 덧붙였다. 지난달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아예 회사를 메타버스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아바타와 디지털 객체를 창조하는 게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중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페이스북은 뉴욕에서 VR 메타버스 플랫폼 호라이즌(horizon)을 서비스 중이다.
가짜가 진짜의 대안 될까
진짜가 아닌 가짜가 과연 대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없잖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주인공은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상세계 게임 ‘오아시스’에 접속한다. 그러나 최종 우승자로 오아시스를 공동 소유하게 된 그는 화ㆍ목요일은 문을 닫기로 한다. ‘현실만이 유일한 진짜’이기 때문이다. 메타버스와 현실 세계의 경계가 결국 무의미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김동연 SKT 매니저는 “부캐처럼 가짜도 각광받는 시대”라며 “진짜를 대체할 순 없겠지만 진짜 세상에선 할 수 없는 걸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메타버스 문법 따로 있어, 긴 호흡 필요
VR 멀미 문제도 해결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 제페토 이프랜드 호라이즌 등 메타버스 콘텐츠와 플랫폼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과 개발 엔진을 제공한 회사인 유니티코리아의 오지현 에반젤리스트(기술전도사)는 “웹페이지도 PC 기반과 모바일 기반이 다르듯 메타버스도 VR 소프트웨어는 VR 문법에 맞춰 제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직 초기라서 메타버스 문법에 맞지 않는 소프트웨어가 많다는 얘기다. 그는 “궁극적으로는 가상 디지털 세상과 현실 세계의 경계가 무너지고 하나로 융합될 것”이라며 “한때 유행에 그치는 단발성 투자나 정책이 아닌 긴 호흡을 갖고 인력 교육에 공을 들이는 꾸준한 투자와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메타버스는 인간 삶의 변곡점이 될 것이다. 현실의 환경이나 양극화 문제를 일부 해결하는 확장 공간도 될 수 있다.
김상균 강원대 교수
메타버스 전문가인 김상균(48) 강원대 교수는 현실세계와 메타버스는 서로를 보완해 가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아가 메타버스가 인간 삶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메타버스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아바타로 사는 온라인 세상이다.”
-왜 뜨나.
“그전부터 그랬지만 코로나19로 더 힘들지 않나. 탐험하고 싶고 만나고 싶고 이루고 싶은 꿈들이 좌절되자 대안으로 물리적 지구를 파헤치기보다 디지털 지구를 만든 것이다.”
-페이스북도 뛰어들었다.
“인간은 소통의 방식을 꾸준히 개선해 왔다. 집전화에서 휴대폰으로, 다시 인터넷과 스마트폰, 소셜미디어로 발전했다. 페이스북은 메타버스가 그다음이라고 생각한 셈이다. 사람들의 꿈을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기술로 확장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사실 권력 관계에선 두 가지, 시간과 공간이 중요하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시간을 단축시켰다면 메타버스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고 있다. 어마한 권력의 변화가 올 것이다.”
-젊은층의 탈출구 아닌가.
“젊은층의 메타버스 선호도가 높은 건 사실이다. 대리 경험, 가상의 경험을 통해 실질적 만족을 느끼는 세대다. 이젠 부동산으로 부자 되기도 힘들고 주식도 너무 올랐다.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의 신대륙을 찾으려 한다. 경제의 터전으로도 바라본다. 가상인데 경제적 가치가 있을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예술 작품들을 보면 정말 비싼 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허구도 인류 문화의 큰 밑바탕이다. 강남 땅이 비싼 건 많은 사람이 몰리기 때문이다. 허구지만 더 많은 사람이 모인다면 진짜보다 비싸질 수도 있다. 물론 유령도시처럼 무의미한 땅과 공간도 나올 수 있다. 투자엔 신중해야 한다. 가능성이 실현될 때 가치도 올라간다. 지금은 허구 중에서도 진짜와 가짜가 섞여 있다. 남을 추종해선 안 되고 집단 동조도 경계해야 한다.”
-우리 삶은 어떻게 바뀔까.
“메타버스의 끝을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나 ‘매트릭스’로 보는 이가 많다.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매트릭스로 들어가겠다는 대답이 60%나 됐다. 삶이 얼마나 고단하면 현실을 버리고 가겠다고 하나. 인류는 방향을 찾을 것이다. 현실을 대체하거나 버리고 가는 게 아니라 현실이 갖고 있는 환경이나 양극화 문제를 일부 해결하기 위한 확장의 공간으로 메타버스를 만들어갈 것이다.”
-꼭 하고 싶은 얘기는.
“가상현실(VR) 기기를 팔아먹으려는 것 아니냐, 주가 올리려는 것 아니냔 오해도 많다. 메타버스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나 사업모델이라기보다 인류가 살아가는 삶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환경에 몸이 바뀌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기술과 디바이스를 바탕으로 삶을 바꿔 나가는 능동적 진화라고 본다. 젊은 세대의 원격근무 선호도가 높다.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호모사피엔스는 너무 거대한 도시를 만들었다. 메타버스는 이제 약간의 거리를 띄우기 위한 시도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메타버스에서 만나 얘기하다 보면 더 편하게 느끼는 긍정적 효과가 크다. 사람은 상처를 많이 받는 존재다. 페이스북의 ‘좋아요’에 열광하는 건 그만큼 평상시 ‘잘했어, 좋았어’ 이런 얘길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메타버스에서 편하게 피드백을 붙이면 그런 온라인 감정이 오프라인으로도 전이된다. 그럼 관계가 좋아질 수도 있다. 메타버스는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많다. 장점을 잘 쓰면 된다. 현실세계와 메타버스가 서로를 보완해 가는 게 이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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