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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뭔지도 모르고 처벌법 만들어" ... 집착이 강력범죄로 커져도 '사랑 싸움' 취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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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여자 친구를 흉기로 찌른 혐의로 3년 6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던 50대 남성이 출소 후 피해 여성을 스토킹하다가 20일 경찰에 붙잡혔다. 흉기 피습으로 목숨을 잃을 뻔한 피해자는 이후 이름도 바꾸고 거주지도 옮겼지만 스토킹을 막을 수 없었다.
올해 2월 출소한 가해 남성은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스토킹했고, 급기야 피해자가 사는 곳까지 찾아가 '집 앞 카페에서 기다리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경찰은 사건 당일 스토킹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가해 남성을 입건해 조사한 뒤 풀어줬다.
스토킹처벌법이 지난달 21일 시행되면서 스토킹에 대한 법적인 처벌 근거가 마련됐지만 피해자들이 처한 상황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21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여성들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사례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스토킹처벌법 시행일이었던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17일까지 경찰 신고건수는 하루 평균 103건이었다. 올해 1월부터 법 시행 전까지 접수된 유사 신고건수가 23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실제로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이른바 '교제 살인' 등의 강력범죄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17일에는 서울 서초동 한 아파트에서 동거하던 여성을 살해한 남성이 경찰에 체포됐다. 남성은 여성이 이별을 요구하자 아파트 비상계단에서 수차례 흉기로 찌른 뒤 19층 집으로 여성을 끌고 가 내던졌다.
19일에는 서울 중구 한 오피스텔에서 전 남자 친구가 휘두른 흉기에 찔린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숨진 여성은 스토킹처벌법에 따라 경찰이 관리하는 신변보호 대상자였지만, 비극을 피하진 못했다.
전문가들은 스토킹처벌법에 정작 가해자 행위를 막을 강제 조항이 미흡해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를 끊을 수 없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스토킹처벌법에 따르면, 경찰은 가해자에게 응급조치와 긴급 응급조치, 혹은 잠정조치를 내릴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조치인 잠정조치 4호를 통해서만 가해자 인신구속(유치장 또는 구치소 유치)이 가능하고, 다른 조치들은 '접근 시 처벌'을 정해 놓은 것에 불과해 이를 어겨도 막을 방법이 없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위원은 "스토킹처벌법은 스토킹의 본질을 모르고 만든 법"이라며 "가해자들에게 특정 행위를 금지시켜 놓기만 할 경우 망상과 반발심이 커져 손쉽게 이를 어기고 범죄를 저지른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교제 살인의 경우 작은 다툼이나 집착에서 시작해 강력범죄로 끝나는 게 전형적인데, 현장에선 '사랑 싸움' 정도로 치부하고 가해자 구속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해자 통제보다는 피해자 관리를 통한 범죄 예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도 스토킹처벌법의 한계로 지적된다.
피해자는 신변보호를 요청하면 쉼터로 주거지를 옮기거나 실시간 위치 추적과 긴급호출이 가능한 스마트위치 등을 지급받는다. 하지만 급증하는 신변보호 요청을 감안하면, 스마트워치 물량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경찰의 신변보호 건수는 2017년 6,675건에서 2018년 9,442건, 2019년 1만3,686건, 지난해 1만4,773건으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지만, 확보된 스마트워치 물량(올해 9월 기준)은 3,700여 대에 불과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숱한 여성들의 죽음으로 교제 살인 문제가 의제화됐음에도 법 실행에 필요한 기본적인 예산조차 확보되지 않았고, 지원책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할 경찰 인력도 부족하다.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일선 경찰서엔 스토킹 신고가 접수되면 사례를 분석하고 모니터링하는 학대예방경찰관(APO)이 증원됐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출동해야 할 수사 인력은 보강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건수는 갈수록 급증하는데, 피해자 보호와 구조를 담당할 인력은 그대로"라며 "스토킹처벌법이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당분간은 현장에 혼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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