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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코로나에서 살아남은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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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문외한이다. ‘베르나르트 하이팅크’라는 네덜란드 지휘자 이름을 접하게 된 건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의 책 ‘거장 신화’ 때문이다. 무슨 원조에 원조에 원조를 거듭하는 족발집이나 떡볶이집도 아닐 텐테, 클래식계는 유독 거장에 거장에 거장을 반복한다. 마케팅치곤 상상력이 빈곤한 건지, 너무 고졸해서 거장 이외의 표현은 진부해진 탓인진 모르겠지만.
‘거장 신화’는 그 신화를 깨는 책이다. ‘말러리안’ 열풍까지 낳았다던 구스타프 말러는 자리 욕심에 종교를 가톨릭으로 바꾸기까지 했다. 악보 그대로 연주한다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사실 악보 뜯어고치고, 악기를 추가해 연주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헤르베르트 카라얀은 드레스덴 폭격 추모공연은 해도 나치 희생자를 애도하는 음악회는 결코 열지 않았다. 세르주 첼리비다케가 레코딩 작업을 그렇게나 꺼렸던 건 공연장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서였다. 세상사에 그렇게나 초연했던 카를로스 클라이버 또한 실제 지휘료 협상 때는 매우 자본(!)주의적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곧이곧대로 들을 건 없다. 영웅전 아닌 인물평이 금기시되는 우리 문화와 다른 데다, 저자가 하필이면 영국인이다. 또 책 자체가 ‘거장 놀음하다 클래식계는 망할 것’이란 경고를 담고 있다. 신랄한 유머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토록 쏘아대던 레브레히트가 하이팅크에 대해서는 “이전 지휘자들의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판타지로 상처투성이가 되어왔던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을 재평가하는 데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역할을 했다”는 정도만 써뒀다. 악평을 안 한 것만 해도 놀라운데, 다른 사람들이 과장한 쇼스타코비치를 제자리에 돌려놨다고까지 했으니 찬사에 가깝다.
레브레히트는 고향인 영국 버밍엄에서 오래 활동하다 베를린으로 건너간 사이먼 래틀에게 호감을 나타낸다. 거장입네 폼 재는 이들보다 한 세월, 한 악단을 오래 담금질한 점을 높이 여긴다. 그러고 보면 하이팅크도 수십 년간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췄다.
오호라 싶어, 찾아 듣기 시작했는데 미안하게도 문외한이라 그런지 그저 밋밋했다. 이런저런 평을 찾아보니 ‘자연스러운’ 연주를 추구하는 스타일이란다. 아니나 다를까, ‘지성의 절제’처럼 약간 닭살 돋는 칭찬도 있었다. 무척 심심한 나머지 크게 안 와 닿을 수도 있는 스타일, 혹은 슴슴한 평양냉면 스타일 정도로 정리했다.
그런 그가 지난 10월 세상을 떠났다. 쏟아지는 글 중에 이런 대목을 발견했다. 아마 이래저래 돌려 물었겠지만, 왜 거장인 양 굴지 않느냐, 그런 질문이었던 모양이다. 하이팅크의 대답이다. “학창 시절 나보다 훨씬 뛰어난 친구들이 아주 많았지. 하지만 유대인이라 나치에게 다 죽었어. 남은 건 나 하나였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된 것뿐이야.” 그걸 생각하면 나 잘났네, 군림할 수가 없었다는 얘기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코로나가 이어지는 지금, 하이팅크의 저 말이 떠오른 건 우리는 여전히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 연말에는 마침내 나치 독일을 패퇴시킨 소련의 승리를 묘사했으되, 너무 우울하게 묘사하는 바람에 반동분자로 몰리는 데 일조했다던 쇼스타코비치의 8번 교향곡을 듣자. 당연히 그 우울함이 사무쳤을 하이팅크 버전으로, 심심하게. 투덜댈 일뿐이더라도 어쨌든 살아남은 우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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