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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이 최고"… 존재감 드러낸 '베트남판 동학개미' F0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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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일간지 최초로 2017년 베트남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가 2020년 2월 부임한 2기 특파원을 통해 두 번째 인사(짜오)를 건넵니다. 베트남 사회 전반을 폭넓게 소개한 3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격주 목요일마다 전달합니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3년째 근무 중인 한국기업 주재원 A(44)씨는 요즘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친한 베트남인의 추천으로 작년 상반기 사둔 베트남 기업 주식 4개가 모두 '대박'을 쳤기 때문이다. 유일한 아쉬움은 너무 소심하게 투자했다는 정도. 그는 "'장이 너무 좋다'며 추천하기에 '몇 년 뒤 귀임할 때 조금은 올라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1,500만 원어치 정도만 산 게 두고두고 아쉽다"고 말했다. 손 넘어 보이는 A씨의 휴대폰 안 베트남 주식 정보창에는 5,000여만 원이 찍혀 있었다.
외국계 기업을 다니는 베트남인 B(37)씨는 6년을 타던 오토바이를 처분하고 자가용을 살 계획이다. 그의 '총알' 또한 지난해 베트남 주식 시장에서 거둔 수익이다. B씨는 "대학 동문들의 '잘로'(베트남 1위 사회관계망서비스) 대화방에서 주식 이야기가 계속 나와 시작한 게 큰돈을 가져다 줬다"며 "이젠 베트남 화이트칼라 노동자 대다수를 'F0'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라고 웃어 보였다. F0은 베트남 보건당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최초 확진 판정을 받은 인원에게 붙이는 수식인데, 한국의 '주린이'(주식 어린이)처럼 이제 막 주식 시장에 진입한 신규 투자자란 의미로도 통용된다.
코로나19 시대에 때마침 대거 등장한 F0의 존재는 지난해 외국계 자본의 주식 매도를 방어한 한국의 '동학개미'(개인 투자자) 이미지를 불러왔다. 하지만 B씨는 "돈이 되기에 서둘러 투자한 것일 뿐, 외세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현지 증권업계도 "지난해 베트남 주식시장 활황은 외국계 자본이 은행주 등 우량주를 띄워 놓은 장에 F0이 대거 가세하면서 랠리를 이어간 게 결정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국과 달리 단일 외국계 자본의 주식 투자 한도가 있는 베트남이기에 굳이 F0이 현지 주식시장을 견인할 이유가 없었다는 얘기다.
꼭꼭 숨겨 뒀던 자금이 주식 시장에 유입된 것은 시장 성장에 호재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베트남은 경제 개방의 효시가 된 1987년 도이머이(개혁) 정책 이전까지 암시장이 투기자금의 유일한 통로였다. 개방 이후 국내총생산(GDP)에 잡히지 않는 거대 자금이 형성됐으나 관성은 그대로였다. 돈 액수만 커졌을 뿐 여전히 달러와 금의 형태로 개인 금고에 묵혀 있었던 것이다.
잠자던 돈은 2000년대 초반 베트남 주요 은행들이 등장하면서 외부로 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1년 연쇄적으로 드러난 은행의 부실이 사회 문제화하면서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이어 1차 조정이 완료된 지난 2020년은 더 이상 두 자리 대의 고금리 시대가 아니었다. 5%를 밑도는 금리는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사실상 제로(0)금리였고, 시중의 돈은 또다시 갈 길을 잃었다. 심지어 2015년 이후 고속 성장하던 부동산 시장도 코로나19 사태로 건설 경기가 죽으면서 유효한 선택지가 되지 못했다. 겉돌던 유동성은 지난해 주식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F0세대의 주식 투자는 압도적인 수치로 존재감을 끌어올렸다. 5일 베트남 증권거래소(VNX)와 미래에셋자산운용 베트남법인 등에 따르면, 작년 말 베트남 월간 신규 증권거래 계좌 개설수(누적)는 역대 최고인 408만 건에 달했다. 2018년 1월 195만 건에 불과했던 수치가 4년 새 2배 이상 폭증한 것이다. 특히 작년 한 해 동안 123만 건이 늘어났다. 이는 앞서 3년(2018~2020년) 증가폭 82만 건을 압도한다.
F0의 가세에 거래 규모도 껑충 뛰었다. 베트남 주식장의 기본이 되는 VN-인덱스의 지난해 일일 거래 대금은 1년 새 4배 이상 급증했다. 2020년 12월 31일 9조9,000억 동(한화 4,950억 원)만 거래됐던 시장이 지난해 11월 19일 43조1,000억 동(2조1,550억원)까지 치솟은 것이다. 북부에 코로나19 델타 변이가 창궐한 3월(13조4,000억 동)과 남부의 확산세가 잡히지 않아 불안감이 고조되던 9월(13조1,000억 동)을 제외하면, 월평균 거래액도 20조 동을 가뿐히 넘어섰다.
주가 지수가 수직 상승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2020년 12월 31일 기준 1,103.8포인트(VN-인덱스)로 마감한 지수는 작년 5월 25일 사상 처음으로 1,300선을 돌파했다. 힘을 받은 시장은 코로나19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11월 25일 결국 1,500선까지 뚫었다. 같은 기간, VN-인덱스 등록 30개 주요 기업이 모여 있는 VN30-인덱스 지수도 1,070.7포인트에서 1,572.4포인트까지 치고 올라갔다. 연초 대비 성장률은 35.73%로, 세계 7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미래 전망도 밝다. 국내ㆍ외 투자분석기관들은 베트남 거시 경제지표의 안정성을 근거로 올해도 상승장을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우선 베트남의 동과 달러 환율 낙폭은 최근 3년 동안 1%포인트를 크게 넘지 않았다. 경쟁국인 태국이 같은 기간 11%포인트 가량 널뛰기한 것과 비교하면 환율 안정성이 두드러진다. 외환보유고도 지난해 9월 기준 역대 최고인 1,052억 달러에 달한다.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강력한 통제에 따른 것이지만,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외국 자본의 유입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베트남 산업에 대한 기대치도 나쁘지 않다. 베트남은 올해 자기자본이익률(ROE)이 19%로 예측되는 등 주변국 대비 밸류에이션(가치평가)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고 있다. 인접국이자 경쟁국인 말레이시아는 10%, 태국과 필리핀이 각각 9%인 점을 감안하면 월등한 수익이 예상된다는 얘기다. 베트남 경제의 중심 축인 제조업 역시 올해엔 재도약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베트남의 지난해 11,12월 제조업 구매관리지수(PMI)는 52 이상을 기록, 코로나19 봉쇄령 발동으로 인해 40선까지 떨어진 수치를 만회한 상태다. PMI가 50을 넘으면 경기 활성화에 기대가 크다는 의미다.
이런 전망들을 고려할 때 한국이 베트남을 다시 주시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실제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된 해외 주식형 펀드 가운데 수익률 상위 10개 중 5개는 베트남 관련 펀드였다. 2017년 베트남에서 첫 외국계자산운용사 법인 설립 인가를 받은 미래에셋이 최근 9,000여 개에 달하는 베트남 진출 한국 기업의 자금 운용 효율화를 위해 펀드를 새로 출시하는 등 한국 증권업계의 현지 사업 확장도 활발하다. 업계는 특히 베트남 정부가 "GDP의 10%에 해당하는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겠다"는 약속을 올해 지킬 경우, VN30-인덱스 지수의 1,700선 돌파도 무난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소진욱 미래에셋자산운용 베트남 법인장은 "올해 글로벌 경제회복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미국 등 선진국 시장으로 향했던 자금이 다시 제조업 기반 국가로 이동할 것"이라며 "신흥국 중에서도 자본시장 성장 여력이 큰 베트남을 향한 한국 등 외국 자본의 직접 투자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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