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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Words : 여성의 언어
독서는 제게 여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에요. 내가 모든 걸 잊고 떠날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우주선이에요.
수전 손택
Her View : 여성의 관점
<45> '엄마도 직업이 있었단다'
(2022년 2월 17일자)
안녕하세요, 독자님. 허스토리입니다. 오늘은 조금 다른 관점의 뉴스레터를 준비했어요. 대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 경제 등 다뤄야 하는 묵직한 주제가 산적해 있지만, 일상의 중요한 축인 문화 영역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요즘 많은 사회 현상이,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운 TV 프로그램 등으로 인해 견인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말이에요. '더 이상 납작하게 그려지지 않는 화면 속 여성 캐릭터'라는 주제로 오늘 뉴스레터를 준비했어요.
① '엄마도 무대에서 반짝거린단다'
세 딸을 3년 터울로 낳았습니다. '텔 미' 등으로 온 나라를 주름잡았던 원더걸스의 리더였던 선예의 이야기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 아이들 도시락을 싸고, 등교와 등원을 시키고, 다시 식사 준비를 하는 날들이 9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춤과 노래가 출중했던 선예의 특기는 가사와 육아가 됐습니다. 2007년 베이비복스리브로 데뷔했던 양은지는 13년 동안 '경력 단절 여성'으로 지냈는데요. 그 사이 아이돌이었던 그의 특기는 '아이들 머리 빨리 말리기'가 됐습니다.
이 같은 이야기는 신인(?) 아이돌 '마마돌'로 뭉친 6명의 전직 아이돌과 춤꾼의 공통 서사입니다. tvN '엄마는 아이돌'을 계기로 뭉친 이들은 석 달의 준비 기간을 거쳐 신곡 '우아힙'을 내고 최근 음악 방송에 출연했습니다. 작은 공연도 치렀고요. '아줌마, 애 엄마'라는 이름에만 갇혀 있었다면, 결코 채울 수 없었던 삶의 장면일 겁니다. 결혼을 하고도 활발히 무대에 서는 여성, 아이를 낳고도 꿈을 잃지 않아도 되는 여성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통해서일까요. 육아와 살림으로 가득 찬 일상을 지내던 수많은 여성들이 이들에게 응원과 연대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하네요.
▶ 맘카페가 '마마돌' 응원 나선 사연 보려면? https://url.kr/lc9k2q
② "왕은 궁녀를 사랑했다. 궁녀도 왕을 사랑했을까?"
국적불문 사극의 공통 공식이 있습니다. 천하제일 권력자가 존재한다. 그를 둘러싼 많은 여성이 존재한다. 여성은 어떻게든 왕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진짜 마음이든, 단지 순간에 불과한 승은이든. 궁에 있는 여성들의 목표는 단 하나다. 왕을 사랑하는 것. 이 같은 공식은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인물만 바뀌어서 계속해서 다른 사극을 만들어냅니다.
'모든 궁녀는 정말로 왕에게 선택되기를 바랄까?'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을 세상에 던진 드라마가 있습니다. 연초 종영한 MBC '옷소매 붉은 끝동'인데요. 의빈 성씨와 정조의 실화를 소재로 삼은 이 드라마에서, 궁녀 덕임은 한사코 왕의 구애를 밀어내는 여성으로 등장합니다. 그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주체적인 나'로 존재하고 싶은 이유가 컸어요. 드라마를 보면서 궁녀라는 직업이 얼마나 전문 인력이었는지를, 동시에 모든 궁녀가 로맨스의 주인공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 '궁녀 성덕임 역' 이세영 인터뷰 보기 https://url.kr/gnxqae
③ '여자 셋이 주구장창 술 마시는 얘기가 되겠어?'
이제 막 서른이 된 세 주인공, 소희 지구 지연은 밤마다 함께 모여 소주 한 잔에 세상 시름을 털어 넣습니다.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술도녀)'은 90년대생 여성들이 '꼰대'들의 조직에서 느끼는 염증과 그 안에서 여성의 대처와 우정을 그렸습니다. 여자들이 술만 마시는 게 얘기가 될까요? 온라인에서 화제몰이에 성공한 술도녀의 영향으로 티빙의 유료가입자 수가 36배 폭증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간 인사불성이 될 정도의 음주는, 적어도 화면 속에서는 '남성의 전유물' 정도로 여겨졌어요. 분명 주위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혼술을 하거나 음주가무를 즐기는 여성들이 많은데도 TV 속의 여성들은 늘 정돈된 모습이었죠. 그래서 '술에 취한 여성들'을 소재로 삼은 이 드라마 참 이색적으로 다가왔어요. 이런 여성의 모습을 발굴해 세상에 내어놓은 작가는 바로 위소영 작가입니다. 지난해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시작으로 큰 인기를 얻은 여성 콘텐츠가 참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요. 그 중심에는 섬세하게 시청자의 요구에 호응하는 '여성 창작자'가 존재하는 것도 주목할 일 중 하나입니다.
▶ '술도녀' 위소영 작가 인터뷰 보기 https://url.kr/4gifs9
Her Story : 여성의 이야기
탄핵: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
미국 역사상 130여 년 만에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번진 클린턴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의 중심에 서 있던 여성들의 시각으로 재연했다.
이 드라마가 소재로 삼는 스캔들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전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의 '성추문'으로 잘 알려져 있죠. 당시 저는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이 일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고, 르윈스키는 일종의 '불륜 여성'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페미니즘을 알고, 그리고 이 사건의 중심에 있던 여성들의 시각으로 사안을 바라보니 새로운 것이 보였습니다.
드라마는 세 여성이 중심축이 되어 전개됩니다. 모니카 르윈스키, 힐러리 클린턴, 그리고 이 스캔들을 대중에 폭로한 린다 트립입니다. 린다는 모니카와 우정을 나눈 직장 선배였지만, 클린턴의 비밀을 폭로하기 위해 몰래 통화를 녹음하고 그를 덫에 빠지게 만듭니다. 클린턴의 탄핵소추 사유는 '위증'과 '사법 방해'였지만, 특검팀은 '활자로 된 포르노'처럼 성생활을 보고서 전면에 내세웠고 이는 매스 미디어를 통해 전세계로 퍼집니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알고 있던 인물들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모니카의 테드(TED) 강연 '수치심의 대가' (https://url.kr/61xqsh)를 보시는 것도 추천해요.
(→ 한국일보 기사보기 https://url.kr/9rs741 )
"22살에 실수 안 하는 사람 있나요?"라 웃으며 애써 경쾌한 모습을 보입니다. 스스로 '최초의 사이버 왕따 피해자'라 밝히기도 한 그는, 이후 페미니즘 연대에 가입하고 사이버 불링에 대한 공익광고 캠페인을 주도하는 등 사회적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기 시작했어요. 이 드라마 역시 그가 제작에 참여했다고 하네요.
아무리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20여년 전 22세 여성을 상대로 한 전세계적 사이버불링(Cyber bullying)과 성희롱을 생각하면 세상이 무척 여성에게 가혹하다는 생각을 떼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높은 인기를 유지하며 임기를 끝낸 걸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죠. 지난 설 연휴에 정주행한 이후, 허스토리에 소개할 적기만을 기다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했던 미드입니다. 넷플릭스에서 이번 달 28일까지만 볼 수 있다고 하니, 마음먹은 분들은 빨리 정주행하시기를 권해요!
※ 본 뉴스레터는 2022년 2월 17일 출고된 지난 메일입니다. 기사 출고 시점과 일부 변동 사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허스토리'를 즉시 받아보기를 원하시면 한국일보에서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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