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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에게도 복지를" 동물 복지 농장 인증제 도입했지만 6%만 실시

입력
2022.03.05 12:00
수정
2022.11.01 13:02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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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공화국의 속살]
'밀도 낮추고 잠 재우고 환기 잘되면' 인증
닭 공급사 주문대로 단기 대량 사육 관행
생산성 높이기 집중 탓 '기본적 복지' 실종
"공장식 사육 조장 닭 유통 구조를 바꿔야"


한 육계농장에서 크고 있는 23일령 된 닭의 모습. 조소진 기자

한 육계농장에서 크고 있는 23일령 된 닭의 모습. 조소진 기자


"4년 전에는 1,500평 계사에 11만 수를 키웠어요.
최대한 많은 닭을 키워 파는 게 목표라 닭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 없이 빽빽했습니다. 불도 24시간 켜뒀죠.
끊임없이 먹여야 살이 붙으니..."

경남 하동군 북천농원 주인 김진수(73)씨

김씨의 계사는 2019년 8월 동물 복지 농장으로 인증받은 뒤 확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사육 밀도였다. 크기는 이전과 달라진 게 없지만, 이제는 닭 7만5,000수를 키운다. 전보다 30% 정도 줄어든 셈이다. 그만큼 닭이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생겼다. 하루에 최소 6시간 이상 불을 끄기도 한다. 닭이 충분히 쉴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과 최소한의 수면시간 확보. 당연해 보이지만, 김씨 계사처럼 닭을 배려하고 있는 육계 농장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동물 복지 인증 농장은 극소수

4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동물 복지 농장’으로 인증받은 육계 농장은 전국 1,597곳 가운데 97곳에 불과했다. 계 농장의 6.1%에서만 동물 복지를 신경 쓰는 방식으로 운영 중이라는 의미다. 지역별로는 △전북(81곳) △전남(9곳) △경남(4곳) △경북·충남(1곳) 순이었고, 인증 받은 농장이 없는 지자체도 수두룩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동물 복지 농장 인증제도는 2012년부터 시행됐다. 생산성만 추구하는 밀식 사육이 가축들에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유발해 면역력을 약화시키고, 조류 인플루엔자(AI) 및 구제역 확산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정부는 동물이 본래 습성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도록 관리하는 축산 농장을 인증해 혜택을 주겠다며 산란계(2012년), 양돈(2013년), 육계(2014년)로 인증제도를 확대 실시했다. 경제적 지원은 아니지만, 표지판과 농장에서 생산된 제품에 '동물 복지 인증'을 표시하도록 허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시설 개조 필요하지 않는데도 참여 저조

치킨용 닭을 키우는 육계 농장이 동물 복지 인증을 받기 위해선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 핵심은 ①사육 밀도 ②조명 시간 ③횃대 제공 ④공기 오염도 관리다.

육계의 경우 1㎡ 기준 19수 이하 및 닭 무게 30㎏ 이하를 지켜야 한다. 닭이 날개를 펴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3.3㎡당(1평) 최대 57마리까지만 키우라는 것이다. 빨리 살찌게 하기 위해 계사 조명을 24시간 켜둬서도 안 된다. 최소 8시간 이상 밝게 해줘야 하고, 6시간 이상 어둡게 해야 한다.

1,000마리 당 횃대는 2m 길이로 제공하도록 했다. 어두워지면 높은 곳에 올라가는 닭의 습성을 지켜줘야 한다는 취지다. 계분과 축축한 깔짚에서 생기는 암모니아와 이산화탄소 농도가 일정 수치 이상 올라가지 않도록 환기도 자주 시켜야 한다.

전중환 국립축산과학원 농업연구사는 “육계 농가는 산란계와 양돈에 비해 추가적인 시설 개조가 필요하지 않은데도, 동물 복지 농장으로 인증 받기 위한 참여가 저조하다” “동물의 본래 습성을 좀더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동물 복지 고민할 수 있는 여건 아냐"

한 육계 농가에서 출하를 하루 앞둔 닭의 모습. 조소진 기자

한 육계 농가에서 출하를 하루 앞둔 닭의 모습. 조소진 기자

농가에선 그러나 공장식 사육을 조장하는 닭 유통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동물 복지는 꿈도 꿀 수 없다고 지적한다. 하림과 마니커 등 '인티그레이션'(인티 회사 또는 계열회사)으로 불리는 닭 공급사가 병아리를 공급해 주면, 농가는 닭을 최대한 빨리 토실토실하게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금전적 지원 등 정부 인센티브도 없기 때문에, 농가 입장에선 돈을 들여 동물 복지 농장으로 전환할 이유도 없는 셈이다.

전북에서 육계 농장을 운영 중인 A(44)씨는 “한 마리라도 더 키워야 돈을 더 받기 때문에 사육 밀도를 일부러 낮춰 동물 복지 농장으로 운영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더구나 인티 회사에서 농가들을 상대 평가하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닭을 공급하는 쪽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고 말했다.

인티 회사도 품질보다는 '양'과 '가격'을 신경쓸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대 고객인 치킨 프랜차이즈에선 생계 가격을 최대한 낮추려고만 할뿐, '값비싼' 동물 복지 인증 제품에는 관심이 없다”고 전했다.


조소진 기자
심희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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