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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운동과 국정운영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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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숨가쁜 한 주였을 것이다. 국회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 한미정상회담 등 굵직한 이벤트가 줄을 이었다. 성적표가 나쁘지는 않았다. 국회 시정연설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전시내각을 이끌었던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을 언급하면서 초당적 협치를 화두로 올렸다. 5ㆍ18 기념식에서 한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광주 시민”이라는 발언도 보수 대통령에게서 나온 말이라 울림이 있었다. 마침 야당이 한덕수 국무총리를 인준하면서 새 정부 조각과 인사청문 정국도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최고조에 달한 미중경쟁과 북한 도발 상황을 감안하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합격점이다. 미중 사이에서 미국 쪽으로 확 균형추를 옮기는 만만찮은 의제가 다뤄졌지만 과속이나 졸속 우려 같은 불협화음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취임 1주도 안 된 초보 대통령에게는 실로 진땀 나는 데뷔 무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막이 내리고 지금은 조용히 지나간 ‘슈퍼 위크’를 반추하고 있을 윤 대통령의 심정은 어떨지 상상해본다. ‘그래, 해볼 만하다. 정치 경험 운운은 기우 아닌가. 나는 대선도 이긴 사람이다. 앞으로는 더한 역경과 위기도 헤쳐나갈 수 있을 거야’ 같은 위안과 격려, 그리고 자기확신 아닐까.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대통령직을 두고 느낀 부담감을 토로한 적이 있다.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여기서 끝난다).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 팻말에 적힌 문구를 언급하면서 그가 전하고 싶었던 얘기는 국정에 무한책임을 지며 국민 기대와 비난을 한 몸에 받는 자리의 어려움이다. 그처럼 절해고도와 같은 자리에 있다면 지나온 성공의 길을 반추하며 스스로 자기 긍정의 힘을 주입하는 것도 동력을 얻는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자신감이 지나쳐 ‘그래, 이 길이 맞아’라는 자기확신을 굳혀갈 때는 아직 아니다. 거대 야당의 강퍅함이 없지 않지만 지금은 집권 초 허니문 기간이다. 권력의 힘이 빠지고 민심이 바뀌면 어떤 수를 둬도 다 악수가 되는 게 한국의 대통령제다. 지금은 무슨 수를 써도 잘 풀리게 마련일 뿐, 자기가 잘해서 잘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단 하루도 청와대에 있을 수 없다며 용산 집무실 이전을 강행하고, 검찰 인사를 윤석열 사단으로 깔아도 일단은 정국이 굴러가고 있으니 문제없다고 생각한다면 민심 오독이다. 여전히 국민의 절반은 윤 대통령의 리더십에서 연대와 공감보다 능력주의를, 공존과 분권보다 갈라치기와 배제의 정치를 떠올리고 있다. 갈등을 아우르는 통합의 리더십이 없으면 취임사에 쓴 ‘반지성주의’ 프레임은 언제든 대통령실을 향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안 그래도 타고난 낙관주의자에 자기 주관이 뚜렷해 뭐에 한번 꽂히면 뒤도 안 돌아보고 직진하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한쪽이 이기면 다른 쪽이 패배하는 제로섬 게임 선거운동에선 이런 리더십이 유리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국정운영은 다르다. 상대는 적이 아니라 파트너다. 이쪽 국민, 저쪽 국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모두가 승리를 거둘 수도 있고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일 수도 있다(‘제왕적 대통령의 종언’ㆍ함성득). 정치의 복원이 절실한데 서초동 권력이 여의도를 장악했다는 식의 퇴행의 얘기가 나오면 곤란하다. 퇴근 길 김치찌개에 고기 구워놓고 야당 지도부와 언제든 소주 한잔 기울이는 게 윤 대통령의 진짜 속마음이라고 했던가. 바이든과 나눈 대화 내용을 국민과 공유할 지금이 바로 그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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