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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반도체동맹’은 한국경제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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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때 첫 일정으로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를 함께 방문한 건 한ㆍ미 두 나라 모두에 매우 의미심장한 행보였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자국 공급망 강화와 미ㆍ중 ‘반도체 전쟁’에서 한국을 확실한 미국의 동맹국으로 세웠다는 선언이었다. 반면, 윤 대통령으로서는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공약으로 내세웠던 ‘반도체 초강국’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한 무대로서 의미가 컸다.
우리 산업에서 반도체는 1990년대 이래 지난 30년간 세계를 주름잡으며 경제 선진국 도약을 이끈 견인차였다. 그럼에도 새 정부가 또다시 반도체 초강국을 산업정책의 화두로 내세우게 된 데는 지금이 새로운 도약이냐, 추락이냐를 가를 분수령이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 공급망 강화 전략과 미ㆍ중 ‘반도체 전쟁’은 시장과 국제분업체계를 격동시키고 있다. 그 와중에 우리나라는 D램과 낸드플래시 같은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중국의 강력한 추격을 받고 있고, 초미세 및 차세대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선 대만, 일본과 치열한 경쟁의 회오리 속으로 진입한 상태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 우리 경제의 미래를 가를 도전들이 숨가쁘게 몰아치고 있는 셈이다.
지금 우리 경제에서 왜 또다시 반도체인가. 그리고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있는 도전의 실체는 무엇인가. 최근 삼성전자가 주요 임원 20여 명을 전격 물갈이하면서 급박하게 돌아가는 배경은 어디에 있고, 우리나라가 반도체 초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국내 최고의 반도체산업 전문가 중 한 명이자, 최근까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산업2분과 위원으로서 새 정부 반도체정책의 대강을 마련한 유웅환 SK 고문의 의견을 들었다.
-윤석열 정부는 반도체, 인공지능(AI), 배터리, 정보통신 등을 미래전략산업으로 선정하고 강력한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 새 정부에서 또다시 이들 업종에 주목하고 집중 육성책을 추진하는 배경은?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이고, AI를 기반으로 디지털 전환이 급속하게 진전되는 시대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가 어떤 산업과 기술로 신성장동력을 만들고, 미래의 먹거리를 준비할 것이냐 하는 고민을 반영한 정책인 셈이다. 지금 대부분 기술이나 산업의 발전은 결국 기기가 인간의 인지와 판단, 행동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반도체는 그런 과정에서 신경세포 역할을 하는 것이고, AI가 뇌의 역할을 한다면, 통신망은 신경망일 것이고 배터리는 에너지 역할을 하는 식일 것이다. 이제 비상한 각오로 이런 기술과 산업을 육성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정도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미래전략산업으로 거론되는 업종들은 우리 기술력이 이미 글로벌 수준에 도달한 상태여서 노력하면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구축할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새 정부 산업전략 중에서도 ‘반도체 초강국’또는 ‘초격차’ 전략이 두드러진다. 우리 경제에서 반도체산업이 갖는 현재와 미래의 가치를 말한다면.
“일단 반도체가 작년에 1,280억 달러 수출을 했고, 666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전체 무역흑자가 295억 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반도체 흑자가 없었다면 무역이 적자가 될 정도였다. 그만큼 반도체는 현실적으로 우리 산업과 경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 하나, 지금 과거 PC시대를 지나고 모바일시대를 거쳐서 이제 ‘에지(Edge)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 에지시대라는 건 정보 연결의 단말기가 PC나 모바일처럼 특정 기기였던 시대를 지나 자동차에서 집 안의 에어컨을 가동시키는 식으로 부가 연결망을 통해 사람과 사물, 사물 간 초연결이 이루어지는 시대를 말한다. 그러니 논리적으로는 모든 사물에 정보연결장치가 쓰이게 되고, 연결접점이 폭증하는 만큼 반도체 쓰임새도 넓어진다는 거다. 실제 전 세계 데이터 양이 2018년도에 33제타바이트(1제타바이트=1조1,000억 기가바이트)였던 게 2025년에는 6~7배 증가할 걸로 예상된다. 그러니 그만큼 미래에도 반도체의 쓰임새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게 반도체산업의 미래 가치라고 보면 된다.”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새 정부 반도체 정책방향을 수립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향후 반도체 초강국, 또는 초격차 전략과 정책의 핵심을 요약한다면.
“당장 최대 수익원인 메모리 부문은 결국 중국에 3년 내외에 따라잡힐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 중국이 우리나라를 포함해 국제적으로 기술과 인력을 탈취하고, 반도체 기술 지식재산권(IP)을 함부로 침해하는 식으로 ‘반도체 굴기’를 추구하는 현실은 우리에게 매우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로서는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라도 기업의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경영’ 여부를 반영해 경쟁의 규칙을 재정비하는 글로벌 추세에 발 맞출 필요가 크다. 사실 우리가 미국과의 ‘반도체동맹’에 나서는 이유도 그런 글로벌스탠더드 구축 필요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첨단반도체 부문에서는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 모두에서 극자외선(EUV) 초미세공정, 선단공정을 축으로 넷다이(Net Dieㆍ웨이퍼당 생산 가능한 칩수)를 증가시키는 집적기술에서 초격차 기술력 확보가 목표다. 나노기술이 한계에 이른 만큼 3D 패키징 같은 적층기술, 반도체 구조를 입체화하는 3D소자 개발 등이 절실한 상황이다.
또 하나 매우 중요한 과제는 비첨단 기존(레거시) 반도체를 다품종 소량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사실 에지시대엔 초미세 첨단반도체보다 비첨단 기존 반도체를 용도에 맞게 다품종 소량생산한 제품의 수요가 폭증한다. 일례로 스마트폰이 작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15억 대가 만들어졌는데, 에지시대 본격화로 초연결사회가 도래하면 앞으로 스마트폰 반도체 수요의 수백, 수천 배의 저급, 저가 반도체 수요가 형성된다는 얘기다. 그게 돈이 된다. 대만 TSMC는 이전의 저급, 저가 반도체 생산라인을 그대로 유지해옴으로써 이런 수요에 부응할 체제가 견고한 반면, 우리 반도체업계에선 첨단공정 개발에 주력하면서 다품종 소량생산 기반이 취약해졌다. 따라서 이쪽을 확충하는 전략 역시 시급해졌다. 적어도 5년 이상 걸릴 것이다. 또 다품종 소량생산을 위해서는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기업들도 충분히 육성돼야 한다. 지금 우리에겐 그런 생태계가 거의 없다. 대만의 관련 인력 25만 명에 비해 우리는 1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해당 인력 육성책이 시급하다. 삼성전자의 외국기업 인수합병(M&A) 논의가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또 정부 차원에서 공공 팹을 만들어서 팹리스 기업들의 운동장을 마련해줄 필요도 크다.”
-최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 정부는 미ㆍ중 반도체 전쟁에서 미국 편에 다가섰음을 분명히 드러냈다. 정부의 선택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윤석열ㆍ바이든 두 대통령이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시찰할 때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바로 공장 내부 장비에 미국 성조기가 부착된 것이다. 이른바 ‘소부장(소재‧부품‧장비)’에서는 여전히 미국ㆍ일본 등의 의존도가 크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첨단기술 역시 마찬가지다. EUV 초미세공정이나 미국 쪽 기술협력이 우리로서는 반도체 초강국을 위해 불가결한 상황이다. 얼마 전 반도체 1위를 놓고 삼성전자와 경쟁하는 인텔의 겔싱어 CEO가 방한해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 협력을 논의한 것 역시 각자 다른 분야에서 확보한 경쟁력을 결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새 정부로서는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을 한 셈이다.”
-미ㆍ중 반도체 전쟁의 본질은 무엇인가.
“미국은 중국의 굴기를 자신들의 전략적 실패로 생각하고 있다. 탈냉전 이후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는데, 그 과정에서 정치적 민주화가 진전되기는커녕, 중화제일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중국공산당 일당독재 권위주의 체제만 강화됐다.
그 와중에 미국의 전통적 산업벨트였던 러스트벨트에서는 산업이 쇠퇴하고 일자리가 감소했다.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전 세계의 산업시설을 빨아들이는 중국에 대한 강한 반중정서가 형성됐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며 미국을 추격하자, 미국은 중국에 의존하지 않는 반도체 공급망,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 등을 막기 위해 동맹국 중심으로 반도체 동맹을 추진하며 중국 견제에 들어간 것이다."
-미·중 반도체 전쟁의 현황과 우리 반도체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말씀해 달라.
“미국은 바이든 정부 출범 후에도 중국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를 이어 초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따라서 동맹국‧우호국을 중심으로 반도체 분야에서도 대중 포위망을 형성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으로서는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대만 등과의 긴밀한 협력을 추진 중이다. 특히 한ㆍ일ㆍ대만 중 누가 미국의 최우선 파트너가 되는가도 우리 반도체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변수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신속한 결단이 절실하다. 우리로서는 미국 동맹과의 협력을 통해 반도체 초강국의 기반을 다져야 한다.”
-중국의 반발과 외교통상 관계의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우리가 견지해야 할 원칙과 중국과 상호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은.
“중국은 우리 반도체 수출의 50%를 차지하는 시장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중국 내수용이 아닌, 중국에 설립된 외국기업의 수출제품 중간제 수요다. 우려보다는 반도체 수출 타격이 덜할 것이라는 분석의 근거다. 그럼에도 인접국으로서, 또 세계 최대 시장으로 중국의 가치는 결코 무시돼서는 안 된다. 우리로서는 우리의 선택이 반도체 초강국 실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 또 ESG 같은 기업경영 가치의 글로벌 스탠더드 구축이 공정경쟁을 위한 가치라는 점을 중국에 차분하게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미ㆍ중 반도체 전쟁과 다른 축에서 대만 일본 등과 우리나라 간 반도체 경쟁도 가열되고 있다. 첨단 반도체 기술경쟁의 현주소를 요약한다면.
“대만은 파운드리 전반에서 글로벌 최고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비첨단 다품종 소량생산 기반까지 온전히 갖추고 있어 제조, 설계, 후공정을 아우르는 반도체 기술생태계에서도 앞서 있다. 여기에 연구개발(R&D) 세액공제 15%, 투자 시 이익에 대한 법인세 5년 면제 등 경쟁력 유지를 위한 정책지원도 강력하다. 일본은 파운드리에서는 우리나라와 대만보다는 떨어지지만, 소부장에서는 여전히 막강하다. 특히 최근엔 미국, 대만과 공격적 협력을 통해 반도체 권토중래를 노리며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올해 반도체산업 지원에만 8조 원의 추경을 편성했고, 대만 TSMC와의 합작공장에 4조1,000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하지만 일본은 출발이 다소 늦었고, 대만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적지 않다. 우리는 이런 부문의 비교우위를 활용해 경쟁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경쟁과 협력은 공존할 수밖에 없다. 소부장에서는 여전히 일본과의 협력이 필요하고, 대만과도 초미세공정의 경쟁과 협력이 요긴하다.”
-반도체 경쟁력 확보를 위해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주요국들이 공격적 규제완화와 지원책을 속속 정비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비교한다면.
“각국이 반도체에 투자하는 금액은 상상을 초월한다. 향후 수년간 미국이 62조 원, 유럽연합(EU)은 71조 원, 중국은 170조 원이다. 각국은 경쟁적으로 반도체 지원법을 유기적으로 구축해 규제완화는 물론이고 반도체 산업계를 위한 지원책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우리 역시 정부와 민간을 합쳐 ‘50조 원+α’의 투자계획을 밝힌 상태다. 하지만 우리 과기부는 전문인력 예산을 애초 계획보다 40%가량 삭감한 안을 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반도체 육성 의지와도 어긋난다. 산업부가 상반기 중 반도체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한다고 한다. 인수위가 그린 밑그림이 후퇴하지 않도록 보다 적극적인 재정투자를 기대한다.”
-최근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이 업계 대표, 국내 4대 과학기술원 총장 등과 만나 반도체 핵심 인력 양성 방안을 마련하는 등 관련 인재 양성을 서두르고 있다. 왜 인재가 부족하게 됐는지, 향후 어떻게 인재를 확보해야 할지에 대해 말하다면.
“에지시대에 맞게 각 소요 분야별로 맞춤식 반도체가 생산돼야 한다. 따라서 다양한 품종을 소량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중소 팹리스에서 근무할 인재 양성이 절실해졌다. 인수위는 반도체 기술 인력 10만 명 양성 계획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학부‧대학원 정원을 확대해 양성하게 될 설계 및 R&D 인력 3만 명과 함께, 중소 팹리스에서 주로 활동하게 될 설계 실무자 7만 명도 포함돼 있다. 이 설계 실무자 7만 명은 석‧박사급이 아니라도 이공계 학부 졸업생 수준이면 얼마든지 감당이 가능하다. 반도체산업이 사양산업에 접어들 가능성은 없으므로, 설계 실무인력은 양질의 청년 일자리가 되어줄 것이다.”
-삼성 SK 등 우리 반도체 기업의 미국 투자가 두드러지면서 국내 투자는 어떻게 되는 거냐는 의구심도 존재한다. 국내 투자도 문제없는 건가.
“이미 경기남부권을 중심으로 반도체 클러스터가 형성돼 있고,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공장이다. 상당한 인프라가 구축돼 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추가 확장이 이어질 전망이다. 국내 기업의 국외 투자가 이어진다 하더라도 국내의 우수한 반도체 인력과 인프라를 활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부 태도도 중요하다. SK하이닉스 용인공장은 부지 선정에서부터 착공까지 몇 년 째 미뤄지고 있다. 기업 활동을 옥죄는 불필요한 규제가 계속된다면 국내의 유리한 조건을 살리지 못하고 기업들은 해외로 나갈(오프쇼어링) 것이다. ‘할 수 없는 것만 빼도 다 되는’ 네거티브 규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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