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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하는 홀어머니, 집안일 안 하는 쌍둥이 자매...하루 하루가 고통스러워요

입력
2022.09.26 04:30
수정
2022.09.26 09:32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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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정우열의 회복’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정우열 원장이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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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언니와 쌍둥이 동생이 있는 학생입니다. 어머니, 두 자매와 살고 있는데 가족들과 자매들을 마주하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특히 저와 늘 같이 있고, 보살펴줘야 하는 쌍둥이 동생은 행동에 거슬리는 점이 많아서 대하는 것이 점점 괴롭고 힘이 듭니다.

어린 시절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셨어요. 어머니는 혼자 딸 셋을 키우시느라 쉬는 날 없이 일을 하셨어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저에게 동화책을 읽어준다거나 따뜻한 이야기를 해준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저에게 늘 무섭고 차가운 어머니었어요.

공부는 당연하고 집안일도 혼자 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책가방을 스스로 챙기고, 집안일도 혼자 해결했죠. 어머니는 그런 제 앞에서 자주 "내가 죽지 않고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게 기적이다"라며 한탄을 했어요. 집에서는 주로 '돈' 관련 이야기만 하셨고, 본인 기분이 안 좋을 때나 저의 행동이 내키지 않을 때 "내 집에서 나가라"는 막말이나 욕설도 서슴지 않았어요. 머리로는 당시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해하면서도 주변에서 딸들을 아끼고 아낌없이 사랑 표현을 하는 다른 어머니들을 볼 때마다 원망이 올라왔어요. 저의 학교생활이나 친구관계, 취미, 감정상태에는 관심이 없는 어머니가 뭐든 '빨리빨리' 결과만 재촉할 때는 원망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요.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어머니의 채근과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 때문에 저는 어린 시절부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고 그 결과 좋은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다만 뭘 하고 싶은지를 찾지는 못 했어요. 반면 쌍둥이 동생은 느리고, 포기를 잘하는 아이여서 제가 옆에서 챙겨줘야 했어요.

저와 동생이 태어났을 때 저는 건강하고 동생은 약했다고 해요. 주변 어른들로부터 항상 "너가 네 쌍둥이 밥을 뺏어 먹어서 그런 거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죠. 어머니와 언니도 "동생이 몸이 약하니 네가 잘 돌봐주고 도와줘라", "쌍둥이지만 언니처럼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해라"고 이야기했어요. 나만 잘되는 게 싫고 쌍둥이 동생도 잘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동생을 챙기면서도 늘 힘에 부치고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지금 와서 쌍둥이 동생은 "내가 언제 도와달라고 했었냐", "자발적으로 해놓고 왜 고마워하길 바라냐"며 외면합니다.

집안일은 지금도 제 차지예요. 어질러 놓은 것을 못 견디는 깔끔한 성격 탓에 항상 제가 집안 정리와 청소를 하게 되죠. 동생은 집안일에 전혀 관심이 없어요. 제가 동생의 그런 점을 지적하면 다른 가족들은 "묵묵히 하면 동생도 고마워할 거다", "그냥 하면 되지 왜 스트레스를 받느냐"며 오히려 의아해합니다.

어머니와 언니, 동생은 저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저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들을 대하는 것이 힘들어요. 늘 제 주변을 맴도는 쌍둥이 동생과는 스킨십도 싫고, 얼굴을 보고 있는 것조차 불편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목소리나 말하는 방식이 거슬리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워요. 동생이 밉고 싫은데 누군가와 웃으며 통화를 하면 궁금하고 질투가 나기도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가족들과의 관계, 동생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족끼리 화목하게 지내려면, 쌍둥이 자매에게 마음을 열고 서로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박지우(가명·28세·학생)


지우씨, 저는 먼저 어린 시절의 상처를 딛고 각고의 노력으로 스스로 인생을 발전시켜오고 있는 당신을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정서적 허기를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노력한다는 것은 당신에게 내면의 힘이 있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인간인지라 노력하는 과정에서 절망과 고통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어요.

지우씨는 어린 시절 가장 중요한 존재인 부모에게 온전히 의지하지 못 했어요. 어린 자녀가 부모에게 기본적인 보호와 돌봄 외 충분히 관심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정서적 지원을 갈구하는 건 당연합니다. 짐작건대 홀로 생계를 책임지며 세 자녀를 돌봐야 했던 지우씨의 어머니는 먹이고 재우고 씻기는 기본적인 보호 외에 자녀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쏟을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우씨는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어머니에게 전적으로 의존했지만 칭찬이든 비난이든 어머니와 정서적 교류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여요.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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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는 어머니를 이해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지우씨의 내면에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단단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방치 혹은 방임으로 일관하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엄격하게 통제를 하는 식으로 양육을 했을 때 자녀의 마음속엔 '화'가 생깁니다. 그리고 어린 나이로 자신이 통제할 수 없이 부모를 의지해야 하는 환경에서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억압하는 방식으로 해소하게 되죠. 자연스러운 감정조차도 엄격하게 통제하는 식입니다. 지우씨 역시 어머니의 정서적 방임으로부터 생긴 상처와 그로 인한 충동적인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그런 방어책을 사용해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지우씨는 어머니에게 의존하고 싶었지만 그런 자연스러운 욕구도 수치스럽게 여겼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를 억누르고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오히려 자매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식의 반동형성 방어기제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걸 '역의존성 태도'라고 해요. 어려서부터 동생에 대한 과도한 죄책감을 가지게 한 주변 상황도 이를 강화시켰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굉장히 큰 원망을 억누른 채 복종과 반항 사이에서 갈등하며 오랜 시간 지내다 보면 그 사람과의 관계뿐 아니라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강박적인 성향이 나타나게 될 수 있습니다.

흔히 완벽주의라고 일컫듯 일에 대한 기준을 높게 세우고, 스스로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데 집착한 나머지 자기 자신을 몰아세우고, 타인에 대해서도 과도한 통제를 합니다. 기준을 달성하지 못하면 과거의 해결되지 않은 감정적 갈등이 다시 활성화 됩니다. 화가 치밀어 오르고, 충동적으로 분노가 올라오고, 내 기준에 맞춰주지 않은 상대에 대해선 적개심이 생깁니다. 억누르고 있지만 내면에 친밀함, 의존성에 대한 욕구가 여전히 크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이 어쩌다 건드려지면 그 순간에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이 증폭되는 거예요.

지우씨도 이런 종류의 갈등을 겪어왔을 것이고, 이런 문제의 원인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문제는, 현재의 표면적인 감정 반응에만 너무 몰두하게 되면 관계 스트레스만 더 커지고, 이에 집중하느라 오히려 오랫동안 억압했던 자신의 진짜 감정과는 더 멀어지는 것이죠.

지우씨는 주변의 일들을 섬세하고 예민하게 알아차리고, 늘 자신보다 주변을 먼저 생각하는 사려 깊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억눌러왔기 때문에 자신이 설정해 놓은 틀을 벗어난 감정과 행동을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다소 강박적인 성향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지우씨가 묘사한 일상에서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인에게 때로 과도한 통제를 하고 있는 모습이 종종 보여요. 아무리 선한 의도라도 자기 감정을 억압하고 타인을 통제하는 방식이라면 행복하고 편안한 관계가 될 수 없어요. 타인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조차 억압하고 통제하는 그만큼의 힘으로 멀어질 수밖에 없지요.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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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씨가 고민해야 할 것은, 다른 가족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만들어야 할까가 아니라 자기 생각과 감정 자체입니다.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가 되려면 감정을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표면적인 화목함에 집착해 자기 감정을 누른 채로, 어머니나 자매들에게 납득할 수 있는 답만을 구하려 해선 안 됩니다. 지우씨 역시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전달해야 해요. 감정이란 건 그냥 그렇게 느끼는 것이지 좋은 것 나쁜 것이 있거나, 이치에 맞춰 설명하는 게 아닙니다. 자매를 아끼면서도 질투하고, 어머니를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 다가가 보세요.

그건 지우씨가 독립적인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일 겁니다. 지우씨에게는 가족들로부터 생긴 기준이 아닌 스스로 세운 인생의 목표를 재설정하고 정신적인 독립을 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겠지만, 당신 안의 상처를 대면하고 감정과 생각에 집중하는 과정을 지금부터라도 천천히 밟아가야 하는 이유예요.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따라 가며 삶의 기준점을 세우다 보면 당신 안에 내재된 불안도 조금씩 줄어들 거예요. 제가 짧은 지면을 빌려 마지막으로 지우씨에게 꼭 해주고 싶은 얘기는 당신이 받았던 상처의 시작은 당신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앞으로의 삶은 오롯이 당신에게 달렸다는 거예요. 그동안 놓쳤던 내 마음과 친해져 가족으로부터 정서적으로 독립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고 만족하는 지우씨가 되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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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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