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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발전 위해 질서 있는 이민 필요… 이민자 수용 원칙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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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재외동포청을 새로 만들고, 출입국이주관리청(가칭)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정부조직 개편안이 발표되면서 이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출입국이주관리청은 이민청의 다른 이름이다. 단일민족 사회라는 우리나라 특성상 그간 이민에 무관심했고, 한편에선 거부감마저 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출산율과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데 따른 위기감의 영향으로 이제는 이민을 수용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외국국적동포와 관광객 등을 포함해 국내에 머물고 있는 체류외국인은 212만3,352명이다. 이 중 91일 이상 머물고 있는 장기체류 외국인이 161만6,013명이다. 최근 10년간 꾸준히 증가해온 체류외국인 수는 2020~21년 코로나19 대유행 영향으로 잠시 줄었다가 올 들어 다시 늘고 있다. 또 올 1~8월에만 5,022명의 외국인이 대한민국 국적을 얻었다(귀화). 최근 5년간 해마다 1만 명 안팎이 귀화했다.
6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연구실에서 만난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과 귀화자, 영주권자 등이 인구의 약 5%에 이르는 만큼 이민청의 필요성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한국에서 30년 넘게 이민 정책과 이민자들의 삶을 연구해온 윤 교수는 “이민청 설립에 앞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민자 수용에 적용할 기본 원칙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정부조직 개편안에 앞서 법무부도 이민청 신설 검토를 공식화했다. 지금이 이민청을 만들기에 적절한 시점인가. 재외동포청과 이민청을 별도로 만들 필요가 있나.
“국내에 상시 거주하는 외국인이 인구의 약 4%다. 귀화자, 영주권자 등을 포함하면 5%에 달한다. 이 규모와 경제발전 수준을 감안하면 이민청 설립은 상당히 늦었다고 본다. 대만은 우리보다 15년 전에 이민 전담 조직인 이민서를, 일본은 3년 전에 출입국재류관리청을 만들었다. 대부분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도 이민 전담 기관이 있다. 현재 실질적으로 이민 행정을 맡고 있는 법무부 내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는 업무의 복잡성이나 규모 면에서 이미 웬만한 청보다 크다.
재외동포청은 재외동포들의 20년 넘은 숙원이다. 반면 이민청은 16~17년 전부터 학계와 정부에서 정책적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각기 다른 요구에서 나온 만큼 우선은 따로 만들고 나중에 여건이나 필요성에 따라 통합하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다. 다만 재외동포청과 이민청 업무가 겹치는 영역이 있다. 국내에 체류하는 재외동포 정책이 그 예다. 가령 중국동포, 고려인 동포는 법적으론 외국인이지만 민족적으론 한민족이다. 이들에 대한 정책은 재외동포청과 이민청이 사전에 역할을 분담할 필요가 있다.”
-이민이 인구 감소의 주요 해결 방안으로 제시되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민 활성화가 저출산, 고령화 문제의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까.
“이민청 설립의 정당성을 ‘인구절벽’을 해결할 현실적인 방안으로 내세울 순 있다. 실질적으로 효과도 있을 것이다. 선진국에서도 이민자가 늘면 출산이 늘고 경제가 성장한다. 거시적 차원에서 이민이 인구와 경제력 증가에 기여하는 건 일반적이다.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이민을 장려한다’는 식으로 국격에 맞는 일종의 레토릭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더 성장하려면 세계 체계의 자유로운 구성원이 돼야 하는데, 겉으로는 세계화를 지향하면서 내부적으론 외국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위상을 키우려면 외국어와 다문화 수용성이 높아야 한다. 외국인이 들어와서 자유롭게 생활하는 개방적 환경을 만드는 건 아시아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성장의 출구를 찾는 데 꼭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을 이민자라고 부르는지 모르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 국내에선 제도적, 학문적으로 이민자를 어떻게 정의하나.
“일반적으로 특정 거주국에 90일 이상 체류하면 이민자라고 본다. 유엔(UN)의 기준도 마찬가지다. 단 귀화자는 한국 국적을 취득한 한국인이기 때문에 이민자에 포함하지는 않는다. ‘이주 배경 인구’라고 하면 이민자와 귀화자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미국에 이민을 가기 시작한 게 1970년대부터다. 처음엔 대부분 단기체류 신분으로 갔고, 시간이 지나 자리를 잡아 영주권을 얻었다. 국내로 오는 외국인도 마찬가지다. 거주자격으로 장기체류하다가 영주자격을 신청하기도 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수용국이 처음부터 영주를 목적으로 이민을 받는 건 아니란 얘기다. 이민을 활성화한다고 하면 일단 들어온 사람들 모두의 정착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오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주로 어떤 목적을 갖고 어떤 경로로 들어오나.
“노동 이주자가 가장 많다. 재외동포가 고용허가제, 방문허가제를 통해 들어와 일하는 경우를 모두 포함해서다. 다음이 결혼 이주자, 유학생 순이다. 전문 기술자들은 매우 적다. 정부가 적극 유치하려 해도 쉽지 않다. 전문직일수록 우리나라보다 더 선진적이고 외국인에게 더 개방된 국가로 가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머무는 전문직 외국인들이 꼽는 가장 큰 어려움은 자녀 교육 문제다. 국제학교에 보내자니 너무 비싸고, 일반 학교에 보내면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외국인을 대하는 한국인의 시선이나 태도도 여전히 편치 않다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전문직 외국인은 가족을 데리고 이민 올 수 있어도 꺼리게 된다.”
-이민청 신설 논의가 본격화하면 관련 정책도 점검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시행된 외국인 정책 가운데 의미 있는 것과 개선이 시급한 것을 꼽아 달라.
“고용허가제는 이주 노동자에게 입국 때부터 합법적인 지위를 주고 내국인과 동일하게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다. 이주 노동자에겐 동북아시아 다른 나라보다 임금이 월등히 높은 한국에서 노동 3권을 보장받으며 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고용허가제 대상 외국인을 현지에서 선발하는데, 어떤 나라에선 선발 시험날 경찰이 도로 교통을 통제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그러나 국내에 들어와서는 작업장을 3번만 옮길 수 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그곳에서 계속 일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일손이 부족한 현장을 선별해 노동력을 공급한다는 제도의 취지는 살리면서도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재외동포 비자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5년간 출입국이 자유롭고 국내에서 종사할 수 있는 분야도 넓기 때문에 제약이 많은 방문허가제보다 선호도가 높은데, 발급 국가를 차별한다는 논란이 있다. 재외동포는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이 다른 외국인과 비교해 훨씬 용이하다는 점에서 개선할 부분이 있다. 하지만 정부 입장에선 나라별 발급 규모를 제한하지 않으면 내국인 노동자의 일할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음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 부분에서 이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생긴다. 이민자가 늘면 내국인이 일자리를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 수밖에 없지 않나.
“이민 정책 담당 공무원들이 ‘외국인정책이라고 쓰고 이민정책이라 부른다’는 말을 종종 한다.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을 알기 때문에 이민이란 단어를 쓰는 것조차 민감해한다. 이주 노동자 유입이 내국인의 일자리나 임금을 줄이고 협상력을 약화시킨다는 경험적 연구는 이미 나와 있다. 주로 제조업, 건설업, 간병이나 식당 같은 개인서비스업 분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민이 거시적으로는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지만 산업별, 계층별로는 부정적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고용주나 중산층은 이민자 유입으로 이득을 보지만, 노동자나 저소득층에겐 차별적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외국 인력을 받아들이기 전에 내국인 취업을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함은 당연하다. 인력을 얼마만큼 잘 활용하는지는 지도자가 국민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다.
현재 고용허가제, 방문허가제로 들어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가족을 동반하지 못한다. 영주자격을 얻으려면 허가받은 분야에서 일정 기간 일한 뒤 교육을 받고 시험을 치러야 한다. 앞으로 우리 이민 정책이 갈 길이 여기 있다고 본다. 이렇게 하면 우리 사회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인력을 정착시킬 수 있고, 수용 규모도 관리가 가능하다. 어느 나라든 이민자를 받을 땐 그 나라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예컨대 아무리 조건을 개선해도 내국인이 좀처럼 가지 않는 영역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농업, 어업, 뿌리산업 같은 분야가 대표적이다. 이런 분야에서 일정 기간 일한 뒤 경제적 자립 정도, 한국어 구사 능력, 준법 기록 등을 평가해서 우리 사회의 모범적 구성원이 된다는 판단이 가능할 때 정주하도록 한다면 수용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비단 일자리 문제뿐 아니다. 이민자가 늘면 교육 기회나 복지 혜택 등 다른 여러 측면에서 이민자와도 경쟁해야 한다고 인식하는 국민들이 늘어 사회적 갈등이 커질 우려도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이민의 부정적 측면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방법이 모니터링이다. 예를 들어 유입된 이민자가 노동시장에 들어갔을 때 어느 산업, 어느 계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면밀히 조사하는 식이다. 부정적 영향이 확인되면 유입 조건을 강화해 외국인의 진입 장벽을 높임으로써 내국인을 보호해야 한다. 지금은 사회 여러 분야에서 이런 영향을 정확히 짚어낼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다는 게 학계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데이터를 쌓고 추적하고 모니터링해서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런 게 바로 이민청의 역할이다.
과도한 경쟁을 만들지 않으려면 이민의 적정 규모도 생각해봐야 한다. 2050년이면 생산가능인구 300만 명이 줄어들 거란 예측이 나온다. 그때까지 적어도 이만큼의 생산가능인구를 이민자로 채우려면 그들의 가족을 합쳐 500만~600만 명은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보다 2, 3배는 더 많은 외국인을 수용해야 경제성장이 유지된다는 얘기다. 이민청 설립에 앞서 내국인 우선, 합법성 확보, 투명한 소통 등 사회 구성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민자 수용 원칙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이민자를 사회적 약자로 보고 배려와 지원, 복지 정책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자격을 엄격하게 제한해 이민을 받아들이고 별도의 집단적 지원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어떤 방향의 이민 정책이 적합하다고 보나.
“공정성과 관련된 문제다. 이민자를 받아들일 때 어떤 나라든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그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을 선발한다. 이민자에게 정주 권리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절차다. 그렇게 선발된 이민자는 무조건적인 약자라고 보기 어렵다. 단지 그들이 불합리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평등한 권리를 인정하는 게 우리 사회의 역할이다.
하지만 난민은 다르다. 내전을 피해 2018년 제주도로 들어온 예멘인 수백 명이 난민 신청을 했을 때 이들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놓고 국민들이 갈라졌다. 당시 신청서를 낸 예멘인 484명 중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단 2명이다. 굉장히 까다롭게 심사했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2010~20년 우리나라 난민 인정률은 1.3%에 불과해 주요 20개국(G20) 중 일본(0.3%) 다음으로 낮았다.”
-우리나라는 이민자가 생활하기에 쉽지 않은 환경인 것 같다. 이민 수용이 불가피하다면 우리 사회는 뭘 준비해야 하나.
“이민자에겐 수용국의 정책 못지않게 국민들의 수용도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이민자에게 척박한 땅이다. 혈통과 언어, 문화 같은 생득적 요소를 공유해야 한국인이란 생각이 강해서다. 정치·경제가 위기일 때, 희소 자원을 배분할 때 이는 배타성으로 나타난다.
질서 있게 이민을 수용하려면 우리 스스로 달라져야 한다. 교육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세계 각국의 언어를 배울 기회가 늘어야 하고, 세계 역사를 충분히 배우고 다른 나라의 문화와 어우러질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지금 교육은 어떤가. 영어나 제2외국어의 중요성은 점점 떨어지고, 세계사보다 한국사 비중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 사람을 경제적 가치로 평가하고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는 경향도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외국인이나 이민자에게 관대할 수 있겠나. 이민자와 내국인이 더불어 발전하는 더 큰 나라를 꿈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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