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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펜도 아이스크림도 화장품까지…'아트살롱'에 진심인 유통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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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 들어가서 흙을 밟아보세요." "흙에서 향기가 나. 신기하네."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북촌에 위치한 플래그십 스토어 '설화수의 집'. 한옥 공간 한편에 전시된 한애규 작가의 '꽃을 든 사람'에 관람객들이 모여들었다. 푸근한 여인의 모습을 테라코타(점토를 굽는 기법)로 표현했는데, 직접 만져볼 수 있어 호기심을 자극했다. 관람객들은 따뜻한 점토의 촉감을 즐기며 탄생을 뜻하는 '흙'을 감상했다.
이 작품은 설화수가 '흙, 눈, 꽃'이라는 콘셉트로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면서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소개한 것이다. 설화수는 1930년대 지어진 한옥과 바로 뒤편 1960년대 양옥까지 합쳐 약 991㎡(약 300평)에 이르는 공간에서 20일까지 '흙·눈·꽃 설화, 다시 피어나다'라는 전시를 진행 중이다. 특히 문을 연 지 일주일도 안 돼 예약이 끝났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8일 "한옥의 아름다움이 한방 화장품인 설화수의 정체성과도 잘 맞물려 입소문을 타고 있다"고 소개했다.
유통가에 공간을 예술로 탈바꿈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단순히 상품을 홍보하는 팝업스토어(임시매장)가 아니라, 브랜드 정체성을 각인하거나 리브랜딩하는 수단으로 공간을 활용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서울 성동구 성수동을 중심으로 팝업스토어가 늘어나면서 남들과 다른 콘텐츠를 제시해야 하는 부담도 '아트 마케팅'의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설화수의 집에서 전시회를 연 이유는 브랜드 이미지 개편을 위해서다. 설화수는 최근 주요 고객인 4050세대를 넘어 2030세대로 타깃층을 넓히고 있는데, 이 공간 덕분에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반 출생) 유입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이번 전시를 담당하는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새로운 브랜드 가치관을 만들면서 고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전시를 마련했다"며 "설화수가 더 이상 엄마만 쓰는 화장품이 아니라는 것을 각인시키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명품, 패션 업계만 관심을 보였던 '아트 마케팅'에 식품, 가구, 화장품 등 다양한 소비재 기업들까지 참여하는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비교적 객단가(1인당 구매 금액)가 낮은 유통업체들도 전시회를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공을 들인다. 롯데백화점과 손잡고 30일까지 전시회를 진행하는 하겐다즈는 60여년 이어져 온 장인정신과 브랜드 철학을 전달하겠다는 목표다. 20일까지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선보이는 모나미 전시회에서는 붓펜, 유성매직, 사인펜 등 모나미 제품을 사용해 그린 드로잉 작품으로 아날로그의 가치를 떠올리게 한다.
모나미 관계자는 "전시를 통해 단순히 쓰고 기록하는 필기구에서 생각과 경험을 표현하는 드로잉 도구로 브랜드를 재정의해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한다"고 말했다. 쓰는 도구에서 그리는 도구로 펜의 쓰임새를 늘리면서 주 고객층을 1020세대에서 전 연령층으로 넓히겠다는 계산이다.
많은 기업들이 예술과 전시에 상당히 공을 들이는 이유는 매출을 높이기 위해 온·오프라인이 함께 마케팅을 펼쳐 나갈 필요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최근 전시회를 진행 중인 유통업계 관계자는 "온라인 쇼핑이 활발하지만 아직도 오프라인이 가진 힘을 무시할 수 없다"며 "특히 직접 보고 만질 수 있기 때문에 미디어를 통한 광고보다 빠르고 직접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오프라인 판매 강화를 위해 정규 매장을 아예 '아트살롱'으로 바꾼 시도도 돋보인다. 최근 리빙 기업 신세계까사는 현대 미술작가 리차드 우즈와 손잡고 리뉴얼한 까사미아 서래마을점을 선보였다. 건물 안팎은 물론 매장 안 가구까지 미술 작품으로 꾸몄다.
까사미아 관계자는 "가구 매장은 침대, 옷장 등을 사거나 보려는 목적이 있어야만 들어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해 고객을 끌어들이기 쉽지 않다"며 "MZ세대 사이에서 화두인 아트를 접목해 매장 진입 장벽을 낮출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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