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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도 안 했는데..." 참사 희생자 유족들 '명단 공개' 격앙·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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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참담한 심정인데… 딸의 죽음을 전하지 못한 친척, 지인도 많아요.”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딸을 잃은 아버지 A씨는 15일 통화에서 “딸의 죽음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 자체가 싫다”고 했다. 전날 인터넷 매체 ‘민들레’가 홈페이지에 참사 희생자 155명의 명단을 일방적으로 공개하자 극도의 거부감을 드러냈다.
외국인 희생자 유족 B씨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최근 한국일보를 비롯한 몇몇 언론사와 인터뷰하며 이번 참사로 숨진 사촌동생의 실명을 게재하는 것을 허락했다. 하지만 그는 “기사와 이름 공개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매체 측에서) 사전에 어떤 연락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외국인 희생자 유족 C씨 역시 “이런 방식은 유감”이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의 후폭풍이 거세다. 특히 직접 당사자인 유족들은 이름 노출이 옳은지, 그른지 당위를 논하기에 앞서 개인정보를 함부로 다루는 절차에 분노하고 있다. 두 명의 유족은 본보에 “더 이상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앞으로 절대 연락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민들레 측에 직접 항의한 유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들레는 155명 중 13명의 성(姓)은 놔두고 이름만 익명 처리했다가 다시 성과 이름 모두 삭제했다. 매체 홈페이지에는 “당장 삭제하라.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글도 올라왔다.
유경근 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가장 중요한 건 유족들이 희생자 이름이나 정보가 알려지는 것을 동의했는지 여부”라며 “가뜩이나 사안이 정치적 논란으로 변질돼 이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도 이날 한국여성기자협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명단 공개는) 당사자와 가족에게 명백히 해를 끼친 행위”라고 비판했다.
아직 유족끼리 연대해 매체 측에 법적 책임을 물으려는 집단 움직임은 없다. 장례 절차까지 모두 마무리된 상황에서 전국 각지로 흩어진 유족들이 한 데 모일 수 있는 공간이나 소통 통로가 마땅치 않은 영향으로 풀이된다.
물론 불편한 감정과 별개로 어차피 엎질러진 물인 만큼, 명단 공개가 진상규명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유족도 더러 있었다. 20대 희생자의 어머니 D씨는 “겨우 슬픔을 달래고 있는데, 명단을 보고 연락해온 지인이 있어 힘들다”면서도 “차라리 이번 공개를 계기로 참사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속도가 붙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찰도 ‘가족 동의 없는 공개’를 문제 삼아 곧 수사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이종배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은 이날 민들레와 진보성향 유튜브 채널 ‘더탐사’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더탐사는 명단 취득 과정에서 민들레와 협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단체 신자유연대도 같은 이유로 고발장을 제출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역시 관련 신고가 들어오는 대로 조사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위원회 관계자는 “명단 공개와 관련해 유족 신고가 접수되면 위법성 여부를 따져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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