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의 해법 논의를 위해 14일 열리기로 했던 민관 토론회가 돌연 연기됐다. 원래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과 민간 연구기관 세종연구소 공동 주최로 양 기관 소속 전문가, 국내 학자, 전직 외교관 등이 참여하려던 행사였다. 외교부가 행사일에 임박해서 "민감한 시기라 행사를 미뤘으면 좋겠다"고 주최 측에 종용했다고 한다. 연기라지만 다음 일정을 정하지 않아 취소나 다름없다.
석 달 전 한일 정상 간 약식회담을 앞두고 민관협의체를 꾸려 정부 입장을 정리했던 외교부는 이후로도 공청회를 포함한 다양한 형식으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달 들어서야 박진 장관과 원로 4명의 '현인회의'(6일), 피해자 측 면담(7일)을 진행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13일 정례브리핑에서 "강제징용 배상 해법 격차가 좀 더 좁혀졌다"고 밝혔다. 여기에 토론회 무산까지 맞물려 정부가 여론 청취보다 일본과의 합의 도출에 치중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6일 현인회의에서도 정부안에 대한 국내 동의를 구하는 게 우선이라는 취지의 조언이 나왔다고 한다.
정부가 강제징용 문제 해소에 조급한 모습을 보이니 '일본 눈치보기' '저자세 외교' 비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달 초 국가인권위원회가 징용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를 국민훈장 서훈 대상으로 선정하자 외교부가 석연찮은 이유로 이를 취소한 일도 있었다. 무엇보다 외교부가 마련해 일본과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진 대위변제(제3자 변제) 방안에 피해자들이 협상 마지노선으로 요구한 '전범기업 사과 및 배상 참여'가 반영됐는지가 불확실하다. 정부가 투명한 공론화 절차 없이 '밀실 외교'를 이어갔다간 파국으로 끝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의 재판이 되기 십상이다.
정부가 북한 핵무장이라는 공동 위협에 대응해 한일 관계 회복에 공을 들이는 건 필요하고 바람직하다. 하지만 우리의 중대한 국익이나 합당한 명분마저 관철하지 못할 만큼 끌려다니는 외교여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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