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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카드 없는 정부, 기업 활성화와 개혁 칼 꺼냈다…'졸속'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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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경고등이 켜진 한국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윤석열 정부가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서 꺼내든 칼은 기업경제 활성화와 구조개혁이다. 민간 주도 성장(민주성)을 통해 눈앞에 닥친 침체 위기를 돌파하고, 연금·노동·교육 개혁으로 미래 경쟁력까지 손에 쥐겠다는 구상이다. 재정지출 확대나 금리 인하 같은 전통적인 경기부양 카드를 꺼낼 수 없는 상황에서 나름의 고육지책을 들고 나왔다는 평가다.
그러나 정권 출범 이후 계속 되는 ‘기업 기 살리기’는 양날의 검이다. 낙수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을 경우 특혜 논란이 확산되면서 향후 정책 운용에 상당한 부담을 지게 될 수 있다. 근로시간 개편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조차 불과 반년 안에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혀 ‘졸속 추진’ 우려까지 나온다.
21일 발표한 경제정책방향 보고서를 보면 정부는 기업투자 확대와 경영부담을 줄이기 위한 여러 방안을 쏟아냈다. 우선 내년 투자분에 한정해 세액 공제율을 10%까지 높인다. 현재 일반 투자와 국가전략기술 투자의 세액 공제율이 각 3%, 4%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당근책이다. 정정훈 기획재정부 조세총괄정책관은 “매년 꾸준히 투자하는 대기업보단, 투자액이 들쑥날쑥한 중소기업이 좀 더 혜택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기업은행에서 시중보다 최대 1%포인트 낮은 금리로 15조 원을 공급하는 등 총 50조 원 안팎의 시설투자 자금도 지원한다. 역대 최대 규모다.
자유로운 경영활동을 뒷받침하고자 5년 이상 집행되지 않아 사실상 사문화한 경제 형벌규정을 개선하고, 기업 내부거래 공시 기준 금액도 현행 50억 원에서 상향 조정한다. 연간 매출액 40억 원인 시장지배적 사업자 기준도 높인다.
정부가 대규모 기업규제 완화에 나선 건 기업 투자가 늘면 고용 활성화→근로자 소득 확대→소비 회복→투자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거란 기대에서다. 그러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이 투자를 결정할 땐 경제 상황과 전망도 매우 중요하게 본다”며 “세계적인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어 당장 투자 확대가 크게 늘 것으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는 장기 저성장 위기 돌파구로 노동·교육·연금 개혁과 금융·서비스·공공 혁신을 꼽았다. 고임금 정규직 일자리와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로 나뉘는 노동시장 이중 구조, 2060년이면 고갈되는 국민연금, 올해 처음 1,000조 원을 넘긴 국가채무 등을 감안할 때 그 방향성은 맞다. 문제는 속도다. 갈등이 첨예한 사안에 대한 개혁안을 시일을 정해 두고 마련하는 건 사실상 이미 정해 놓은 쪽으로 밀어붙이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일정에 맞추려 서두르다가 괜한 ‘졸속 후유증’도 떠안게 될 수 있다.
실제 근로시간 개편만 해도 정부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 내년 상반기까지 입법에 나서기로 했다. 기본 40시간 외에 최대 12시간까지 허용되는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개편하는 게 핵심이다. 이러면 주당 69시간 노동도 가능해진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은 상황에서 장시간 노동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며 반발했다.
지난해 한국의 연평균 근로시간(1,915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99시간 많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계와 기업, 정부가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근로시간 개편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상반기까지 개선방안을 내놓겠다고 한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자본 분리)도 기대와 우려가 크게 엇갈리는 사안이다. 1995년 도입된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현재 금융지주는 비금융회사 주식을 5% 이상 가질 수 없다.
금융 혁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게 정부 진단이지만, 은행이 여러 산업에 진출하면 은행의 ‘경제 소방수’ 역할이 약화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이 산업에 진출했다가 잘못되면 은행 본연의 역할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며 “금융위기에 버금갈 정도의 경제 위기 상황에서 규제 빗장을 푸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우여곡절 끝에 근로기준법·금산분리법 개정안을 마련한다 해도 국회 문턱을 넘기까지 가시밭길이 예고돼 있다. ‘금산분리 원칙을 견지한다’는 강령을 둔 더불어민주당이 정부안을 받아들일 확률은 낮다.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공방처럼 국회 논의가 공전을 거듭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은 “노·사·정이 조금씩 양보하면서 고통 분담에 나서야 경제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다”며 “정치권도 정쟁만 일삼을 게 아니라 먼저 나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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