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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일가의 최충헌 따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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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혈연승계가 법으로 보장된 왕조국가가 아닌 곳에서 최고 권력이 3대 이상 이어지는 건 동서고금 모두 드물다. 권력 속성상 여러 견제 세력이 일족의 독주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인류 문명사에 드문 그 일이 한반도에서는 이미 한 차례 실현됐고, 지금 또다시 진행 중이다. 고려 최충헌 가문과 북한 김일성 집안이다.
□김일성 일가 권력 세습은 820여 년 전 최씨 정권(1196년 집권)과 여러모로 닮았다. 독재체제를 굳히는 과정에서 혈육까지 제거한 ‘피의 숙청’부터 그렇다. 1세대 집권자 최충헌은 동생 최충수를 죽였다. 최충헌의 아들로 2대 집권자였던 최우는 후계자로 낙점했던 사위(김약선)를 독살한 뒤 권력을 아들(최항)에게 물려줬다. 북한 김정은도 이복형(김정남)과 고모부(장성택)를 제거했다. 글로벌 패권국과의 대립에서 권력을 지키려고 극도의 고립주의를 고수한 것도 비슷하다. 몽골이 침공하자 최씨 일족이 강화로 천도해 버티는 동안 국토는 유린되고, 5차 침입 때는 고려 사람 20만 명이 노예로 끌려갔다. 북핵을 둘러싼 미국 주도의 국제사회 제재로 아사자가 속출하는 북한과 다르지 않다.
□3대 집권자의 면면도 닮았다. 우선 적장자가 아닌데도 권력을 승계받았다. 최우가 사위의 후계자 내정을 철회하고 송광사로 출가시킨 최항을 지목했듯, 김정일도 처음에는 장남 김정남을 염두에 뒀으나 3남(김정은)으로 바꿨다. 최항이 최우의 적자가 아니었던 것처럼, 김정은도 김정일의 네 번째 부인이자 평양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출신 고용희의 소생이다.
□8일 밤 평양에서 벌어진 열병식 이후 김일성 일족의 '4대 세습' 얘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열병식에는 엄마와 아빠를 반반 섞은 듯한 김주애가 등장, ‘존경하는 자제분’으로 호칭됐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3대 세습이 북한 내부 권력다툼의 명분이 돼 김씨 왕조는 망할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김씨 일족의 놀라운 생명력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다만 세 번째 세습에 성공했던 최씨 일가의 4대 집권자(최의)가 11개월 만에 측근(김준, 임연, 유경 등)에게 제거된 걸 되새긴다면, 최충헌·김일성 일가의 닮은꼴 궤적이 계속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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