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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금 안 갚아준다고… 대낮 부산 도심서 50대 부부 무참히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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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난 것 같지만 끝나지 않은 사건이 있습니다. 한국일보 기자들이 사건의 이면과 뒷얘기를 '사건 플러스'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남편과 별거 중이던 A씨가 30대 또래 유부남 B씨를 알게 된 것은 1998년 무렵이다. A씨는 남편과 이혼한 뒤 20년 넘게 B씨와 관계를 지속했다.
하지만 2011년쯤 두 사람 관계는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B씨가 부인 명의로 아파트를 구입한 사실을 알게 되자, A씨가 B씨에게 불만을 드러냈다. B씨는 결국 A씨에게 4,000만 원을 줬다. 두 아들과 단칸방에 살던 A씨는 B씨에게 받은 돈에 대출금 1억2,500만 원을 더해 부산의 한 아파트를 샀다.
A씨는 B씨로부터 2018년부터 매달 생활비로 180만 원가량을 받았지만 생활고가 심했다. 직업이 없었고 30대 큰아들 역시 일용직을 전전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작은아들은 조현병을 앓고 있어 입원비도 필요했다.
A씨와 큰아들은 2020년쯤 생활고 해결을 위해 살고 있던 집을 팔고 작은 집으로 이사해 차액으로 생활비를 마련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사하기 위해선 대출금을 먼저 변제해야 했다. 이때부터 A씨 모자는 “대출금을 대신 갚아달라”고 B씨에게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A씨 모자는 B씨에게 “아파트를 살 때 대출금을 대신 갚아준다고 해놓고 왜 주지 않느냐”며 지속적으로 돈을 요구했다. 대출금 1억2,500만 원에 생활비로 대출받은 1,000만 원까지 추가로 요구하자 B씨는 들어주지 않았다. 시가 10억 원이 넘는 상가 건물을 소유한 B씨가 2021년쯤 5억 원을 들여 창고까지 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모자의 불만은 분노로 바뀌었다.
지난해 2월 말 A씨는 큰아들에게 ‘마음 같아서는 네 동생, B씨와 셋이서 깔끔하게 떠나고 싶다’ ‘죽여야 한다’ ‘내 가슴의 한이 죽이지 않고는 절대 안 풀린다’ 등의 문자를 보냈다. 큰아들은 이에 ‘당사자가 값을 치러야 한다, 엄마가 생각하는 것은 복수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정당한 계산’이라는 식으로 답했다. B씨를 죽이기로 마음 먹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수면제를 조금씩 모아 먹이는 수법으로 살해 계획을 세웠지만, 처방받아 모으기가 쉽지 않자 포기했다. A씨가 "생활비와 병원비를 낼 수 있도록 집이 팔릴 때까지 좀더 살려두자"고 설득했지만, 큰아들은 “지금 죽여 버린다”고 했다. A씨도 결국 큰아들 결정에 뜻을 같이했다. 모자는 지난해 3월 2일 B씨를 죽이기로 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A씨는 이날 오전 8시 조금 넘어 B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니 같은 XX는 죽을 가치도 없다, 그래도 죽어야 한다. 여자 눈에 눈물 나게 해도 안 되고, 여자 가슴에 대못질이나 한을 품게 해도 안 된다.' 그러면서 '나한테 3가지를 다 했다. 오늘이 음력 몇 월 며칠인지 잘 봐두라. 오늘이 바로 제삿날이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문자메시지를 확인한 B씨는 곧장 고기를 사들고 오전 9시쯤 A씨가 사는 아파트를 찾아가 아파트 매매와 관련된 대화를 했다. 모녀는 "아파트를 팔 테니 대출금을 갚아달라"고 요구했지만, B씨는 "돈이 없다"고 했다. 집을 나온 B씨 차량에 동행한 A씨는 큰아들에게 '차가 밀려 속도가 느려 사고를 내도 못 죽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A씨는 평소에 큰아들에게 "B씨와 차를 같이 타고 다니다 핸들을 틀어 같이 죽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큰아들은 이에 '지금 거기서 마음대로 하면 큰 일을 못하고, 너무 막장으로 가면 진행이 안 된다'고 문자로 답했다.
그날 오후 2시가 넘어 A씨 아파트로 돌아온 두 사람은 대출금 문제로 재차 다퉜다. A씨는 B씨 부인을 불러 자신들의 관계를 모두 밝히고 해결하자고 요구했고, B씨는 이에 부인을 불렀다. B씨 부인을 데리러 나간 큰아들은 만나지 못하고 혼자 아파트로 돌아왔다.
B씨 부인은 그사이 "남편이 내연녀에게 잡혀있다"고 112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과 B씨 부인은 아파트 공동현관으로 내려온 A씨와 B씨를 만났다. 그러자 B씨는 “납치나 감금되지 않았고, 관계 정리를 위해 스스로 온 것이니 알아서 하겠다”며 경찰들을 돌려 보냈다.
오후 4시쯤 아파트 인근 주차장으로 이동한 이들은 계속해서 다퉜다. 다시 B씨 부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가정사라서 경찰이 해 줄 게 없다"고 안내한 뒤 자리를 떠났다. 격앙된 분위기가 이어지자 B씨 부인은 "돈은 못 준다. 그만큼 빨아 먹었으면 되지 않았느냐”고 말했고, B씨도 "이제 나도 모르겠다. 알아서 하라"고 A씨 모자에게 말했다. A씨는 그러자 “내 인생은 어디서 보상받느냐”며 원통해했고, 이에 격분한 A씨의 큰아들이 아파트에서 가져온 흉기를 B씨에게 휘둘렀다.
범행 장면은 참혹했다. 큰아들은 흉기로 B씨의 목을 찌른 뒤 도망가는 B씨를 뒤쫓아가 밀어 넘어뜨린 뒤 다시 찌르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A씨는 이를 말리려고 다가서는 B씨 부인을 잡아 넘어뜨렸다. A씨의 큰아들은 넘어진 B씨 부인이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지만 흉기를 휘둘렀다. 경찰 조사 결과 큰아들이 범행을 저지르는 동안 A씨는 주위를 맴돌며 범행 장면을 계속 확인했다. 심지어 움직이고 있는 피해자 모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직 죽지 않았다'는 신호까지 보냈다. 20차례 이상 찔린 B씨는 현장에서 사망했고, B씨 부인은 병원으로 옮겨진 지 1시간 만에 숨졌다.
A씨 모자는 범행 후 아파트 주차장으로 달려가 차량을 타고 경북 경주로 달아났다. 하지만 내리막길에서 벽에 충돌하는 사고를 낸 뒤 사건 당일 오후 6시 반쯤 112에 신고해 자수했다.
지난해 9월 부산지법 서부지원 형사1부(부장 이진혁)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의 큰아들에게 무기징역을, A씨에게는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1심 형량이 너무 무겁고, 계획한 범죄가 아닌데다 범행 공모에 관해 사실 오인이 있다”며 항소했다. 하지만 부산고법 형사1부(부장 박종훈)는 이달 10일 “피해자와의 관계, 금전적 요구를 한 내용, 사건 당일 행동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들은 사전에 계획을 공모했고, 사건 당일 범행을 분담했다”며 A씨 모자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여전히 자신의 불행을 모두 피해자 탓으로 돌리고 원망하는 모습을 보여 과연 진정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지 의문스러운 대목이 많다”면서 “피해자의 아내가 남편이 살해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자신까지 흉기에 찔려 숨지면서 받았을 충격과 공포는 그 누구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을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평생 치유하기 힘든 슬픔과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하는 피해자 가족 또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면서 “이런 사정을 모두 고려해 보면 피고인들에게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 참회하고 반성할 시간을 갖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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