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국제시스템이 새로운 긴장에 직면한 이 시기 우리 외교의 올바른 좌표 설정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40년간 현장을 지킨 외교전략가의 '실사구시' 시각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실존적 위협이 된 북핵
국민적 공감대 발목 잡는 본말전도 주장들
자원·식량 교환 등 담대한 초기 조치 기대
버나드 브로디. 미국의 1세대 핵 전략가다. 그는 1946년 발간한 '절대무기'라는 핵전략의 고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군대의 목적은 어떻게 전쟁에서 승리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핵무기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그것이 전쟁을 어떻게 회피하느냐에 놓여져야 한다."
브로디가 이렇게 단언한 이후에도, 미국은 핵전략을 꾸준히 개발하였다. 아이젠하워의 대량보복전략, 케네디의 유연반응전략, 그 기초가 되었던 대 군비 전략 등 핵전쟁에서도 승리를 거두고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부단히 개발하였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극히 낮고, '상호확증파괴'(MAD)가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라는 현실에 직면해야만 했다. 이에 따른 '공포의 균형'과 핵군축이 핵무기의 사용을 억제하고 평화를 지켜 온 기제로 작동하였다.
냉전, 이를 극복한 포스트 냉전 시대가 끝나고 독일 숄츠 총리가 이야기하는 '역사의 변곡점(Zeitenwende)'을 맞은 현재, 이러한 '공포의 균형'이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된다.
러시아는 중거리 핵협정(INF) 위반에 이어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에 따른 사찰을 거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핵무기 사용을 공공연히 위협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300여 기의 전략 핵무기를 수년 내에 몇 배로 늘리겠다고 하면서도 핵무기 통제 제안에는 거절로 일관한다.
북한의 핵 개발은 이런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2021년 제8차 노동당대회에서 전략무기와 전술핵의 동시 개발을 선언한 이후, 북한은 이의 실현에 매진하고 있다. 작년에 40차례에 걸쳐 발사한 65개 미사일 상당수는 남한을 목표로 한 단거리 미사일이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북한의 핵 전략이다. 북한은 이제 핵무기를 남한에 선제적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을 공언하고, 이를 법제화하기까지 했다. 북한은 앞섰던 많은 핵 전략가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핵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다. 남한이 북핵 앞에 '실존적 위협'을 맞고 있다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이러한 위기를 맞아 무엇을 해야 하나? 가장 중요한 것은 위기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에 대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불필요한 논의에 발목이 잡혀있다.
먼저, '전쟁불사론'이다. 북핵 위협에 맞선 정부의 '한국형 3축 체계' 개발, 한미 공동훈련 강화를 향하여 이러한 노력이 북한을 자극하여 전쟁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둘째, 정부가 북핵에 대응하여 군사적 측면만 강조하고 대화를 소홀히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사실과 배치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8·15 경축사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담대한 구상'을 제안해 왔다.
동시적, 병렬적 조치로서 북한이 실질적 비핵화에 나설 경우 우리 정부는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분야를 포괄하는 상응조치를 제공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이에는 북한이 요구해 온 미·북 관계 정상화,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방안도 포함된다. 이러한 제안에 무시와 비난으로 대응해 온 것은 북한이다.
이 구상에 포함된 초기 조치가 '한반도 자원·식량 교환 프로그램'이다. 제재 면제 제도를 활용하여 북한 광물자원의 수출을 일정 한도 내에서 허용하고, 동 대금을 활용해 식량·비료·의약품 등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메커니즘이다. 비교적 부유한 지역으로 알려진 개성에서조차도 아사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을 듣게 된다. 북한이 최소한 초기 조치라도 받아들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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