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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튀기는 로봇에 뛰어든 '프랜차이즈 백전노장' CBDO가 되다

입력
2023.03.0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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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스타트업엔 유난히 다양한 C레벨(분야별 최고 책임자)이 있습니다. 강점을 가지려는 분야에 최고 책임자를 두기 때문입니다. C레벨을 보면 스타트업의 지향점도 한 눈에 알 수 있죠. 스타트업을 취재하는 이현주 기자가 한 달에 두 번, 개성 넘치는 C레벨들을 만나 그들의 비전과 고민을 듣고 독자들과 함께 나눕니다.


⑥백영호 로보아르테 CBDO

2015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인턴'에서 앤 해서웨이와 로버트 드 니로는 각각 온라인 의류 쇼핑몰의 30세 최고경영자(CEO), 70세 시니어 인턴으로 등장한다. 수십년 직장생활을 마치고 퇴직했다가 '백발의 인턴'으로 복귀한 드 니로는 풍부한 경력과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곧 해서웨이의 '특급 비서'로 거듭난다.

지난해 11월 국내의 한 스타트업에도 직위과 나이에서 비슷한 면이 많은 관계가 등장했다. 2018년 치킨 조리용 로봇 솔루션 기업 '로보아르테'를 창업한 여성 CEO 강지영(38) 대표가 백영호(59) 최고사업개발책임자(CBDO·Chief Business Development Officer)를 영입한 것.

백 CBDO는 파파이스치킨, 스타벅스, 파스쿠찌, BBQ 등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30년 간 일해온 '백전노장'이다. 로보아르테의 치킨프랜차이즈(롸버트치킨) 가맹점 확장을 목표로 30년 노하우를 전수하는 게 그의 임무. 이 회사는 치킨 튀기는 업무를 자동화된 로봇에게 맡기고 주문 접수 및 포장 등 나머지 과정만 점주가 담당하도록 하는 '1인 창업' 특화 프랜차이즈다.

식품 기업(SPC) 임원과 국내 최대 치킨 프랜차이즈(제너시스 BBQ) 대표를 거친 50대 후반의 베테랑이 스타트업을, 그것도 30대 대표와 젊은 직원들이 주축인 신생기업에서 새 출발을 했다는 점도 업계에선 화제다. '화제의 중심' 백 CBDO를 만나 로보아르테에 합류한 이유와 스타트업에서의 새 삶에 대해 직접 들어봤다. 이하 일문일답

백영호 로보아르테 최고사업개발책임자가 지난달 14일 서울 강남구 로보아르테 본사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백영호 로보아르테 최고사업개발책임자가 지난달 14일 서울 강남구 로보아르테 본사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로보아르테가 지난해 6월 치킨 프랜차이즈 사업에 진출한 지 5개월 만에 백 CBDO님을 영입했습니다. CBDO실 신설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로보아르테는 지난해 5월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여태까지 쌓아온 사업 역량을 빠르게 펼쳐나갈 준비를 끝낸 셈이죠. 최고사업개발책임자인 CBDO는 말 그대로 사업 확장을 해야 하는 이를 의미하는데, 이 역할에 부합하는 사람을 찾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회사 성장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 취업을 결심했습니다."

-외식 프랜차이즈와 로봇산업을 결합한 스타트업에서 각 C레벨들은 업무를 어떻게 나눠 맡고 있나요?

"우선 저희 회사에는 최고경영자(CEO),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기술책임자(CTO), 그리고 제가 있습니다. 경영 전반에 관한 의사결정은 창업자인 강지영 CEO가 총괄하지만, CEO는 투자 유치와 해외 점포 확장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특히 7월엔 미국 뉴욕 31번가 한인타운 인근에 롸버트치킨을 개점합니다. 저는 국내 외식산업을 책임지고 있죠. CFO는 국내외 투자 유치와 회계를 맡고 있고, CTO는 로봇기술 개발과 로봇 판매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CBDO는 개념이 생소한데요, 업무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CBDO실에는 점포들을 관리하는 운영팀, 식자재를 구매하는 구매팀, 저희 제품인 치킨을 개발하는 제품 개발팀이 있습니다. 또 현재 저희 7개 점포 중 5개는 직영으로 운영되는데 직영 점장들 역시 CBDO실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입사한 지 4개월 정도 지났는데 어떤 것에 가장 주력하셨나요?

"로보아르테는 2020년 2월 논현동에 직영점인 롸버트치킨 1호점을 열고 점포를 확대해 왔습니다. 이제는 직영점에서 했던 실험, 즉 점주와 로봇이 어떻게 협동할 수 있는지를 가맹점에 본격적으로 적용하는 단계죠. 제가 입사한 뒤로는 가맹사업 확장을 위해 내부조직을 개편하고, 직원들을 교육하는데 힘썼습니다. 매장 관리자가 해야 할 역할과 책임, 업무 분장을 명확하게 정리해 매장 운영에 혼선이 없도록 했습니다. 또 매장 직원들을 상대로 어떻게 하면 매출을 올릴 수 있고, 소비자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지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이런 운영체제를 본사에서 확실하게 지원해야, 점주들이 실험 대상이 되지 않고 현업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죠."

백영호 CBDO가 회식 장소에 붙일 포스터를 살펴보고 있다. 고영권 기자

백영호 CBDO가 회식 장소에 붙일 포스터를 살펴보고 있다. 고영권 기자

-외식 프랜차이즈업계 경력이 30년쯤 되신다고 알고 있는데, 처음 출발은 어떻게 하신 겁니까?

"1991년 일본 편의점 브랜드 로손에서 사회생활의 첫발을 뗐습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 환하게 불 켜놓은 편의점을 보고 '저렇게 환한 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환상을 품고 입사해 3년간 일했습니다. 치킨과의 인연이 시작된 건 1994년이었습니다. 미국 치킨 프랜차이즈 파파이스가 국내에 상륙했고, 저는 1호점인 압구정점을 개점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당시엔 지금처럼 국내 치킨 브랜드가 거의 없었고, KFC를 통해 젊은이들이 치킨을 몇 조각씩 즐기는 문화가 점차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KFC 대항마였던 파파이스는 3년 만에 100호점까지 확장됐죠. 선두주자였던 KFC가 10년 만에 100호점을 연 것과 비교하면 매우 가파른 상승세였습니다. 하지만 110호점을 냈을 시점에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하나의 브랜드를 국내에 정착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했지만, 당시 저는 젊었고 직급도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한계를 느꼈고,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더 했습니다."

-이후엔 스타벅스 1호점 개점을 책임지셨다구요?

"1999년 여름 이화여대 앞에 스타벅스 1호점이 문을 열었죠. 처음엔 '왜 미국 사람들은 커피를 앉아서 마시지 않고 손에 들고 다닐까' '미국 사람들이 스타벅스라는 브랜드를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입사했습니다. 카페 문화라는 것 자체가 국내에선 매우 신선한 것이었죠. 편의점, 치킨에 이어 또다시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2007년 스타벅스 코리아에서 퇴사할 때까지 230호점까지 개점했는데, 그 희열도 매우 컸습니다. 자녀들에게 제 일을 알리는 보람도 있었습니다. 자녀들과 어딜 가든 제가 관여한 매장이 있었죠. 오히려 제가 만약 반도체 칩을 개발하는 일을 했다면, 가족들이 제 일을 잘 몰랐을 겁니다."

-스타벅스 이후에도 카페 프랜차이즈 일을 계속 하셨습니다.

"2007년부터 8년간 SPC에 있으면서 카페 브랜드인 파스쿠찌 구조조정을 담당했습니다. 제 사회경험 중 가장 힘들었고, 재미있었고, 만족이 컸던 시기인데요. 앞서 파파이스와 스타벅스는 1호점 개점부터 시작해 사업을 키워나가는 일을 했었죠. 그런데 파스쿠찌를 맡았을 때는 이미 50개 점포가 있었고, 이 점포들의 실적을 개선시켜야 하는 게 큰 과제였습니다. 그런데 1년 반 만에 기존 점포 구조조정 및 활성화, 신규 점포 개점을 통해 실적 개선을 달성했습니다. 파스쿠찌 이후에도 카페 프렌차이즈 네스카페, 브런치카페 더브라운, 프랑스 베이커리 카페 브리오슈도레 등에서 카페 관련 경력을 이어나갔습니다."

백영호 로보아르테 CBDO 주요 경력

1991~1994년 로손
1994~1997년 파파이스치킨
1999~2007년 스타벅스 코리아
2007~2015년 SPC
2019년 제너시스 BBQ 대표
2022~2023년 로보아르테 CBDO

-2019년엔 BBQ로 오셔서, 파파이스 이후 다시 치킨 업계로 복귀하셨네요.

"한국 프랜차이즈의 숙제는 항상 가맹점주가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사에서 우후죽순으로 가맹점을 내줘 실패하는 경우가 허다하죠. 저는 BBQ가 배달 중심의 소형 매장을 통해 점주들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봤습니다."

회사 휴게공간에서 사업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는 백영호 CBDO. 고영권 기자

회사 휴게공간에서 사업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는 백영호 CBDO. 고영권 기자


-지금 회사는 치킨 조리에 로봇이 투입되는 프랜차이즈인데, 일반 치킨 프랜차이즈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의 가장 큰 고민은 '돈을 얼마나 벌까'보다 '영업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입니다. 인력 문제 때문이죠. 인건비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도 문제지만, 사람 구하는게 너무 힘이 듭니다. 뜨거운 튀김기 앞에서 하루 종일 치킨을 튀길 사람을 정말 찾기 힘들죠.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로봇이 해결해주니, 점주들은 큰 고민을 해결하는 셈입니다. 로봇은 땀도 흘리지 않고, 불평도 없으며, 추가 수당을 주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을 뽑는데 쓰는 고용 비용도 들지 않고, 로봇은 늘 제 자리에 있죠. 결석을 하지 않습니다. 1인 창업이 가능하고, 인건비를 크게 아낄 수 있죠."

-로봇도 비용이 드는데, 인건비 절감 효과가 얼마나 됩니까?

"점주에게 월 120만원의 가격으로 로봇을 대여해 주고 있습니다. 이를 노동력으로 대체하면 월 300만원 이상이 드는데, 인건비가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는 셈이죠. 게다가 로봇 기술을 계속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로봇 성능이 개선돼 대여비가 하락하면, 점주 이익은 커지고 치킨 소비자 가격도 내려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서울 관악구 롸버트치킨 사당점에서 치킨 조리용 로봇이 튀김기에 치킨을 넣고 있다. 이현주 기자

서울 관악구 롸버트치킨 사당점에서 치킨 조리용 로봇이 튀김기에 치킨을 넣고 있다. 이현주 기자

-로봇이 튀기는 치킨 맛은 경쟁력이 있나요?

"모든 치킨 브랜드가 소비자 반응이 가장 좋은 메뉴를 보유하고 있죠. 저희도 계속 메뉴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핵심은 개발한 메뉴가 제대로 조리되는 것입니다. 중식 프랜차이즈가 성공하기 힘든 이유가 주방장 솜씨에 따라 음식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로봇은 닭을 덜 튀기거나, 오래 튀길 염려가 없습니다. 조리 솜씨가 늘 일정하다는 게 가장 큰 무기입니다."

-기존에 경험해보지 않은 새로운 프랜차이즈인데다 스타트업인데, 이직 전 고민은 없으셨나요?

"로보아르테에서 롸버트치킨을 성공시킨다면 제겐 전례 없는 성공이 될 것입니다. 스타트업은 유연하고 빠른 의사결정이 핵심이죠. 여기에 제 경험을 접목시키면 소비자들이 믿을 수 있는 치킨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을 거라고 봤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동안 로손, 파파이스, 스타벅스 등 익히 알려진 프랜차이즈 기업에서 일해왔습니다. 롸버트치킨은 아직 대중화돼 있지 않은 브랜드죠. 성공한다면, 그야말로 외식업 경력의 정점을 찍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강지영(왼쪽) 로보아르테 대표와 백영호 CBDO가 지난달 15일 서울 관악구 롸버트치킨 사당점에서 직원들과 '치맥데이'를 즐기고 있다. 이현주 기자

강지영(왼쪽) 로보아르테 대표와 백영호 CBDO가 지난달 15일 서울 관악구 롸버트치킨 사당점에서 직원들과 '치맥데이'를 즐기고 있다. 이현주 기자

-강지영 대표를 비롯해 직원들 대부분이 30대인데, 세대차이는 느끼지 않나요?

"스타트업의 장점은 조직의 유연성인 것 같습니다. 나이, 직급, 상하관계를 따지지 않고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하면 되죠. 호칭도 이름에 '님'만 붙이면 되니, 직원들도 저를 '영호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입사한 뒤로 직원들끼리 한달에 두번 저희 매장에서 '치맥데이' 회식을 갖자고 먼저 제안했습니다. 날짜와 지점을 정하면 자유롭게 참석 의사를 밝히고, 선착순으로 마감합니다."

-마지막으로 로보아르테에서의 CBDO님의 목표를 여쭙고 싶습니다.

"저는 그동안 여러 프랜차이즈를 경험하면서 '마음 편한 창업'이 가능한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왔습니다. 지역에서 거점이 되는 직영점 없이 마구 가맹점을 내는 것, 가맹점을 하나만 낼 곳에 두 개를 내서 가맹점주가 피해를 보고 폐점율이 높아지는 등의 실패는 없도록 하려고 합니다. 또 회사와 가맹점주를 동반자라고 생각하고, 함께 브랜드를 키워나가고자 합니다."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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