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영상] 1940년 경회루에서 '가마니 짜기 올림픽'이 열린 이유

입력
2023.03.02 20:28
수정
2023.03.02 20:36
구독

h알파 ep.31 일제강점기의 잔재, 가마니

편집자주

뉴스는 끊임없이 쏟아지고, 이슈는 시시각각 변합니다. ‘h알파’는 단편적으로 전달되는 이야기들 사이의 맥락을 짚어주는 한국일보의 영상 콘텐츠입니다. 활자로 된 기사가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질 때, 한국일보 유튜브에서 ‘h알파’를 꺼내보세요.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인 줄 안다.' 농담처럼 자주 사용하던 말이죠. 가마니가 그만큼 우리 생활에 오랜 기간 자리 잡은 물건으로 여겨졌다는 의미일 텐데요. 그런데 이 가마니,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조선의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들어온 가마니는 나중엔 소금·비료·군수물자를 옮기기 위해 사용됐습니다. 가마니의 사용처가 늘어나면서 우리 농민들은 가마니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노동력을 쏟아야 했습니다. 3·1절 104주년을 맞아, h알파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가마니의 의미를 되짚어 봤습니다.

카마쓰(叺)가 가마니가 된 사연

[h알파] ep.31_일제강점기의 흔적 '가마니'

[h알파] ep.31_일제강점기의 흔적 '가마니'

가마니가 한반도에 상륙한 건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입니다. 이 시기 부산항에서 일본으로 나간 쌀의 규모가 1877년 5,600석(2만 2천여 원)에서 1881년 4만 4천 석(38만여 원)으로 크게 증가했는데요. 일본은 많은 쌀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쌀을 담아갈 저장기구가 필요했습니다. 쌀을 국내에서만 소비하던 시절, 곡식을 옮기는 도구는 작은 자루 정도면 충분했기 때문에 대량의 쌀을 담을 포대가 없었거든요. 우리 조상들이 사용하던 '섬' 포대는 도정된 쌀을 저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어서 쌀알이 흘러내리기도 했고요. 그래서 일본은 쌀 80㎏을 담을 수 있는 '카마쓰'를 조선으로 들여왔습니다. 그렇게 가마니는 한국에서 저장기구이자 단위로 쓰이게 됩니다.

가마니가 수탈 도구가 된 사연

[h알파] ep.31_일제강점기의 흔적 '가마니'

[h알파] ep.31_일제강점기의 흔적 '가마니'

제1차 세계대전의 시작과 함께 일본의 '산미증식계획'도 가동됐습니다. 한국을 일본의 식량공급기지로 삼으려는 계획이었죠. 더 많은 쌀을 생산해 더 많이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더 많은 가마니가 필요했습니다. 일본에서 가져온 가마니로만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어지자, 일본은 한국에서 가마니를 만들기로 결정했어요.

전쟁이 진행될수록 가마니의 용처는 점점 늘어났고, 가마니 짜기는 농촌의 새로운 부업이 됩니다.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까지 가마니 짜기 노동에 뛰어들게 됐죠. 1940년 경회루 옆 잔디밭에서는 ‘가마니 짜기 올림픽’이 열릴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일본의 전쟁을 돕는 것을 ‘애국’으로 삼고 가마니 판매대금을 일제의 무기나 비행기값으로 내도록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평안북도 귀성군의 농민들은 ‘평북귀성 가마니호’에 무려 8만 원을 기부했습니다.

수탈의 역사를 잊지 않으려면

[h알파] ep.31_일제강점기의 흔적 '가마니'

[h알파] ep.31_일제강점기의 흔적 '가마니'

가마니는 단순한 농기구가 아니었습니다. 일제가 한국의 자원과 노동력을 수탈해 간 도구였던 셈이죠. 가마니의 역사처럼, 수탈당한 선조들의 삶을 잊고 있진 않았나요?

외교부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기업이 피해자 재단을 통해 일본 전범기업이 내야 할 판결금을 대신 내는 ‘대위변제안’을 최선의 대안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부안에 대해선 피해자들 간 의견이 갈리고 있지만, 한 가지는 동일합니다.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죠.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는 1일 '3·1절 범국민대회'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일본과 배상금을 합의한다면 돈을 아무리 줘도 받지 않겠다"고 단언하기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농촌 문제를 연구해 온 이송순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는 “2018년 대법원 강제동원 배상 판결은 ‘일제의 한반도 식민 지배가 불법이었다’는 것을 명시한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면서 “이 문제는 돈으로 해결될 것이 아니다. 우리 정부가 피해자에게 위로·사과하고, 이를 매개로 일본 정부에 사과·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더 올바른 해법이 될 것이라 본다”고 제언했습니다.

[h알파] ep.31_일제강점기의 흔적 '가마니'

[h알파] ep.31_일제강점기의 흔적 '가마니'

배상을 받는다고 과거의 상처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대전 당시 끔찍한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독일은 매년 1월 1일 의회에서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증언을 듣는다고 합니다. 이런 아픔을 전 인류가 잊지 말아 달라는 의미입니다.

h알파 유튜브 영상 보러 가기(https://bit.ly/3RrDmye)

연출 권준오·이수연/ 구성 제선영/ 진행·취재 양진하/ 촬영 이수연·최희정·안재용·김광영/ 영상편집 이수연·권준오/ 인턴PD 권준오·이상찬·김예원

[h알파] ep.31_가마니

[h알파] ep.31_가마니




양진하 기자
이수연 PD
제선영 작가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