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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트 대신 후드티... 김 검사는 왜 로펌 말고 블록체인을 택했을까?

입력
2023.04.1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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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스타트업엔 유난히 다양한 C레벨(분야별 최고 책임자)이 있습니다. 강점을 가지려는 분야에 최고 책임자를 두기 때문입니다. C레벨을 보면 스타트업의 지향점도 한 눈에 알 수 있죠. 스타트업을 취재하는 이현주 기자가 한 달에 두 번, 개성 넘치는 C레벨들을 만나 그들의 비전과 고민을 듣고 독자들과 함께 나눕니다.


⑨김영빈 두나무 CLO

지난해 여름 한 법조인의 '변신'이 법조계에서 화제가 됐다. 2021년 초 검찰 재직 기간 만 10년을 채운 뒤 퇴직한 그는, 처음엔 여느 검찰 출신 변호사의 길을 따라 대형 로펌 중 한 곳으로 향했다. 그러다 1년 만에 돌연 방향을 전환해, 지난해 7월 국내 최대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에 합류했다. 김영빈(43) 두나무 최고법률책임자(Chief Legal Officer·CLO)의 이야기다.

그의 선택은 대형 로펌 변호사가 되거나 대기업 법무팀으로 진출하는 다른 '전관'들의 경로와 전혀 달랐던 데다, 전직 검사가 가상자산 업계로 진출한다는 사실 자체가 처음 보는 경우였다.

드라마 속 검사들의 모습처럼 늘 정장에 넥타이 차림으로 두툼한 서류 더미에 파묻혀 살았던 김 CLO는 이제 후드티에 면바지를 입고 출근한다. 업무 환경 역시나 180도 달라졌을 터. 처음으로 언론 인터뷰에 응한 김영빈 CLO를 만나 CLO로서의 역할과 새로운 업계로 도전한 이유를 자세히 들어봤다.

김영빈 두나무 최고법률책임자가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구 두나무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김영빈 두나무 최고법률책임자가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구 두나무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최고법률책임자로서 두나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두나무는 저의 입사와 동시에 CLO 조직을 신설했습니다. CLO 산하에는 법무실과 운영정책실이 있고, 25명 내외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는데요. 다양한 경력을 가진 사내 변호사들도 포진돼 있죠. 우선 법무실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전통적인 사내 법무팀 역할을 합니다. 사내변호사들이 △비즈니스에 필요한 각종 법률 자문 △약관 및 계약서 검토 △소송 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요. 법무실은 여기서 나아가 신규 서비스를 출시하거나, 새로운 정책이 도입될 때 기획 초기 단계부터 개입해 촘촘하게 법률적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모델이 확정된 다음에 법률적 문제를 사후적으로 검토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죠. 또 단순히 법적 위험 요소를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무조건 제시하려고 합니다."

-운영정책실에서는 어떤 업무가 이루어지나요?

"운영정책실은 두나무의 여러 서비스, 특히 가상화폐 등 디지털자산 분야와 관련된 정책을 검토하고 수립하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아직 업권법(특정 업종의 근거가 되는 법)이 제정돼 있지 않아, 두나무의 자체 판단 아래 투자자 보호 등을 위한 규율을 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특정금융정보법)이 2021년 말부터 시행되긴 했지만, 가상화폐거래소 신고와 감독 기능을 정하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때문에 운영정책실은 저희 서비스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규율과 체계를 만들고 있어요."

-지난해 7월 두나무에 합류하셨습니다. 당시 두나무가 CLO 직책을 신설한 배경은 무엇이었나요?

"디지털자산 관련 분야는 최근 몇 년간 급격히 커졌습니다. 두나무 역시 2012년 스타트업으로 출발해 단시간 안에 현재 규모로 성장했죠. 국민들도 가상자산에 투자하거나 접해본 경험이 많으실 겁니다. 전세계적으로도 이런 현상은 유사합니다. 반면 법적, 제도적 정비는 시장의 발전 속도에 비해 미흡한 게 현실입니다. 규정 준수, 내부 통제, 투자자 보호 정책을 어떻게 갖춰 나가야 하는지 명시적인 법령상 근거가 부재한 경우가 많고, 참고할 만한 선례도 찾기 어렵습니다. 저희 자체적으로 체계를 잡아 나가야 하다 보니, CLO 직책을 신설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특히 국내 거래소 중 1위 사업자로 업계를 선도하고 공정한 시장 질서를 조성해야 한다는 목표도 있었습니다."

-기업이 법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다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법무팀 안에 사내 변호사를 둘 수도 있고, 대형로펌과 고문 계약을 체결하기도 하는데요. 최고경영진에 해당하는 CLO가 있는 것은 기업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나요?

"실무자 입장에서 법률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자문을 구할 수 있는 당사자가 회사 내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는 서비스 기획 단계부터 법률 검토를 하다 보니, 크고 작은 의사결정을 수시로 필요로 합니다. 또 저희 서비스나 프로덕트에 대한 깊은 이해도도 필요로 하죠. 이런 점을 따져보면 외부로부터 법적 조언을 받는 게 비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회사 사정을 속속들이 이해한 상태에서 추진력 있고 빠른 판단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죠. 또 최고경영진의 구성원 중 하나로 CLO가 있다는 것은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을 내릴 때 준법 감시, 규율 준수 등에 큰 비중을 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나무의 법률 조직이 사실은 일반 기업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큰 편입니다. CLO가 모든 기업에 흔히 있는 C레벨도 아니죠. 다만 기업의 준법경영 문화를 뿌리내리는데 있어서는, 중요한 직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나무에는 최고혁신책임자, 최고데이터책임자, 최고전략책임자, 최고준법감시책임자 등 다양한 최고경영진이 포진해 있습니다. CLO실은 다른 C레벨과 어떻게 협업하나요?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C레벨은 누구입니까?

"두나무가 스타트업으로 출발했다 보니, 부서들 사이에 신속하고 밀접하게 협업하는 문화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저도 하루에 몇 번씩 여러 C레벨들과 회의를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협업을 많이 하는 C레벨은 최고운영책임자(COO)입니다. 가상화폐거래소인 업비트를 비롯한 서비스들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법률상 문제될 만한 부분은 없는지, 이용자들을 보호기 위한 합리적인 정책이 잘 시행되고 있는지 등을 CLO로서 상시적으로 밀착 감시하고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운영 과정에서 마주하는 각종 이슈에 대한 의사결정도 함께 진행하고 있고요."

-검사 또는 판사 출신 법조인이 기업의 CLO로 변신하는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검찰 출신 CLO만의 특장점이 있을까요?

"디지털자산은 금융과 정보기술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또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영역이고, 선례가 없다 보니 도전적인 해결 과제가 많죠. 변화 속도도 매우 빠른 편이고, 법적 이슈에 실시간으로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검찰에 있을 때 제한된 시간 내에 증거를 수집하고, 사건 관계자를 소환해 당사자들의 주장을 듣고 법적 쟁점을 정리하던 경험, 또 수사팀을 이끌면서 사건 해결을 추진했던 경험들이 이런 환경에 적응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법무부 소속 기획검사로 일하면서 정책 수립 업무에 참여해 많은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고, 국가 행정의 큰 수레바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경험했던 것 또한 거시적인 안목을 갖고 도전적인 과제들을 해결하는데 밑거름이 됐다고 봅니다."

-검찰에서 여러 요직을 거치셨고, 대형로펌에서도 근무하셨는데 가상화폐 분야에 뛰어든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사실 검찰을 떠날 때 만류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조직에서 좋은 성과도 내고 있는데 왜 하필 지금이냐'고 묻는 선후배분들도 계셨습니다. 개인적으로 검사로서 법무 행정을 수행하는 것도 충분히 명예로운 일이라 여겼죠. 그런데 저는 한편으론 조직 내에서 중요한 보직을 맡게 될 때가 조직 바깥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해볼 수 있는 적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디지털자산업계는 변화가 빠른 분야이다 보니,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업무를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았습니다. 또 두나무 경영진이 CLO직을 신설할 정도로 준법경영을 중시한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법조인으로서 존중 받는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직하면서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우선 조직 문화 측면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습니다. 검찰은 아무래도 직급에 따른 상하관계가 뚜렷한 조직이죠. 1년 차이 선배에게도 깎듯이 대합니다. 검사실이라는 별도의 공간이 있고, 수사관 1, 2명과 실무관 1명이 배치돼 함께 업무를 해 나갑니다. 반면 두나무 C레벨들은 직원들과 같은 공간, 같은 책상에서 일하죠. 또 검찰을 포함한 대부분의 행정부처에는 사무실에 프린터와 전화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두나무에는 프린터와 전화기가 없어요. 대신 노트북과 휴대폰으로 일하죠. 문서를 종이로 출력하는 게 아니라, 모든 자료를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공유합니다. 저도 C레벨이긴 하지만 직책 없이 영어 이름으로 불립니다. 처음에는 무척 낯설었는데 금방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검사, 대형로펌 변호사 시절에 입던 양복도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입고갈 한벌 빼고는 모두 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CLO가 갖춰야할, 또는 기대되는 덕목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CLO는 사업의 단기 성과보다는 영속성과 신뢰도를 우선해 기업을 경영해 나갈 수 있도록 나침반 역할을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업을 직접 추진하는 부서의 임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설득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특히 비즈니스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토대로 의견을 제시해야 사업부서와도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부지런히 학습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갖춰야 하죠. 또 내규나 정책을 만들 때도 임직원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그 필요성을 인지시킬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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