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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알지만 기댈 곳 없어"... 인기 여전한 '우울증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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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가려면 죽거나 폐쇄병동에 입원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말이 있죠.”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우울증 갤러리’의 5년 차 유저(회원) 김민수(25ㆍ가명)씨는 22일 갤러리의 중독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 번 빠지면 자의로 활동을 중단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지난달 10대 여학생 회원의 극단적 선택 이후 집단 괴롭힘, 성(性) 착취, 약물 오ㆍ남용 창구 등 갤러리의 불법ㆍ탈법 행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커뮤니티는 위축은커녕 외려 더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신규 유입도 줄을 잇는다. 정부마저 강제폐쇄 대신 ‘자율 규제’ 쪽으로 방향을 정해 당분간 외부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젊은 층은 범죄 온상이라는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왜 우울증 갤러리에 열광할까. 취재진은 짧게는 1개월부터 길게는 수년 동안 활동한 회원 4명에게 그 이유를 들어봤다.
2019년 고교생 때 갤러리를 처음 접한 박나영(가명)씨는 이곳을 “환자를 위한 도피처”라고 규정했다.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자해 충동 같은 속내는 말하기 힘들지만 익명성에 기대 거리낌 없이 털어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활동 중단과 재개를 수차례 반복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경준(25ㆍ가명)씨 역시 “‘우울증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보통 ‘정신병자는 나가라’는 욕설을 하는데 여기는 달랐다. 가감 없이 말할 수 있는 커뮤니티로 이만 한 곳이 없었다”고 동의했다.
각종 상담센터 등 기존 치료기관에 대한 실망은 갤러리에 더욱 의존하게 했다. 지난달 강남 여학생 투신 사건 후 갤러리를 시작했다는 이수지(18ㆍ가명)양은 “가정 불화를 견디다 못해 청소년 쉼터(보호시설)를 찾았는데 사정을 듣더니 오히려 부모님에게 연락했다”며 황당해했다. 박씨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그는 “상담사들에게 고민을 말해도 그들이 나에 대해 뭘 알겠나 싶어 소통이 잘 안 됐다”고 회상했다.
확고히 자리 잡은 믿음은 ‘오프라인 친목 모임’에 발을 들이고 인맥을 쌓는 순간 배가된다. 최씨는 “외로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오프라인 모임도 잦은 편”이라고 했다. 박씨도 “만나면 술, 담배는 기본”이라며 “미성년자 입장에선 성인 회원들이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 주는 어른처럼 느껴져 일탈 행위를 해보지 않은 친구들도 물들게 된다”고 귀띔했다.
다만, 이들도 우울증 갤러리가 ‘순기능’보다 악영향이 훨씬 커졌다고 인정했다. 2019년을 기점으로 범죄가 싹트는 등 커뮤니티의 순수성이 변질됐다는 것이다. 김씨는 “일부 회원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단체 메신저방을 운영하며 오프라인 모임이 활성화됐고, 유명세를 타자 청소년 회원이 대거 유입됐다”고 설명했다. 미성년 회원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이들을 표적 삼은 범죄자들도 함께 똬리를 틀었다는 진단이다.
실제 숨진 여학생의 극단적 선택을 돕고 부추긴 혐의(자살방조 등)로 최모(27)씨가 19일 검찰에 불구속 송치됐다. 그는 갤러리에 모집 글을 올리고 사건 당일 사망자와 구체적 투신 계획을 논의했다.
우울증 갤러리의 미래에 대해선 입장이 엇갈렸다. “폐쇄해도 어차피 다른 대체 공간을 찾을 것”이라며 현상유지 쪽에 무게를 실은 의견이 있는 반면, “병폐가 너무 커져 신규 유입은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갤러리 존치 여부를 떠나 “아픔을 공유하며 위로를 받고 치료 노하우를 얻는 커뮤니티는 필요하다”는 데는 모두 생각을 같이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이날 우울증 갤러리를 접속 차단하는 강경책 대신, 사업자에게 자율규제 강화를 요청하기로 결론 내렸다.
청소년들이 우울감을 극복하려 온라인 공간을 찾아 헤매고 의존하는 것은 그만큼 기존 정책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당장 시설 심리상담 전문가 확충과 청소년 전용 상담 바우처 신설 등의 대책 수립이 필요해 보인다. 박현숙 아이심리상담센터장은 “청소년이 쉼터 입소를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로 ‘정신적 문제로 단체생활이 어렵다’는 답변이 꼽힌 적이 있다”며 “아이들이 우울증 치료에 집중할 수 있는 시설과 높은 접근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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