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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없이 추락하는 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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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A선생님이 성실하게 수업을 진행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이런 내용의 투서가 교육청에 제출됐다면 믿을 수 있을까. 대부분 독자들이 “설마, 그럴 리가…"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일선 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다.
□믿기지 않는 사건이 일선 고교에서 벌어진 사연은 이렇다. 이 학교는 올해 1학기 고3 학생을 대상으로 내신 등급에 반영되지 않는 사회분야 선택과목을 개설했다. 수강생이 몰리는 바람에 A선생님을 포함한 교사 3인이 나눠 수업을 진행하게 됐다. 문제는 두 선생님은 수능 대비 공부에 필요한 자습시간을 많이 준 반면, 정년이 몇 해 남지 않은 A선생님은 꼬박꼬박 수업을 진행했다는 점. 다른 학급 친구들이 자습시간을 더 많이 갖는 것에 불만이 누적된 A선생님 학급의 한 학생이 결국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더 놀랍고 재밌는 건 교육청과 학교의 대응이다. 교육청은 민원을 거르지 않은 채 해당 학교에 관련 사실을 그대로 알렸다. 학교는 민원인의 요구를 거꾸로 수용했다. A선생님이 수업을 포기토록 하는 대신, 다른 두 선생님에게 자습시간을 주지 못하도록 조치했다고 한다. 저출산 여파로 학생들이 줄어들고 있지만,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교권추락은 가속화하고 있다. 교사를 무시하는 황당한 민원 제기는 일상화됐고, 학생들의 폭력에 시달리는 교사도 해마다 늘고 있다. 10여 년 전 시작된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추락을 가속화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먹고살기 바빠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학교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빨리 변하는 곳이다. 30년 전만 해도 통용됐던 ‘군사부일체’ 관념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MZ세대 등장에 맞춰 회사의 인사관리 방식이 바뀌듯, 교육현장에서도 교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장치가 논의돼야 한다. 교권침해가 발생하면 가해 학생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적극적으로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그 가운데 하나다. 실제로 미국은 2001년 ‘교사보호법(Teacher Protection Act)’을 제정, 범죄행위나 명백한 과실 외에는 교사의 생활지도에 대한 면책특권이 광범위하게 부여된 것으로 알려졌다. 입시와 대학에 맞춰진 교육개혁 논의에서 교권확립이 주요 이슈가 돼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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