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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권 침해? 집값 안정?...토지거래허가구역 4년째 묶인 강남·잠실

입력
2023.06.20 04:30
수정
2023.06.20 11:4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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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청담·삼성·잠실 등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
잠실 아파트 거래량 최대 78% 급감...매매가 4% 감소
강남 아파트 매매가 최근 2년 새 14~27% 상승
내년 4월 총선 앞두고 용도별·구역별 규제 완화할까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아파트 외벽에 이달 8일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 철회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아파트 외벽에 이달 8일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 철회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 4년 전 전세를 끼고 20억 원에 서울 잠실동 아파트 한 채를 산 자영업자 A씨는 최근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친다. 대출까지 받아서 차렸던 음식점이 코로나19로 폐업하자, 빚을 갚기 위해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았지만 매수자를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A씨는 "아파트를 처분하지 못해 부득이 고금리 대출을 받아 빚을 갚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해제만 기다렸는데 또다시 1년을 기다릴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잠실 주택 거래 78% 급감

지난 7일 서울시가 강남구 삼성ㆍ청담ㆍ대치동과 송파구 잠실동 등 4곳에 대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1년 연장하면서 해당 지역 주민 반발이 커지고 있다. 시는 개발사업에 따른 투기 과열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4년째 아파트 거래가 막힌 주민들은 재산권 피해가 크다고 아우성이다. 전문가들은 용도와 목적에 따라 제도를 보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동 등 4곳은 국제교류복합지구 개발에 따라 부동산 투기 과열이 우려돼 2020년 6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처음 묶였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해당 구역 주택이나 상가 등을 직접 거주 또는 운영하는 목적에 한해서만 취득할 수 있도록 제한한 제도다. 주택은 2년간 실제로 거주해야 매매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전세를 끼고 사는 ‘갭투자’를 차단하는 효과를 갖는다.

해당 지역 부동산 거래는 급감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잠실동의 지난해 공동 주택 거래량은 161건으로 2020년(725건) 대비 78%나 줄었다. 삼성ㆍ청담ㆍ대치동도 2020년 대비 지난해 주택 거래량이 반 토막 났다. 잠실동 한 부동산업체 관계자는 “4년째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면서 자금 사정이 악화한 집들이 많다”며 “금리까지 오르면서 갭투자한 집을 빨리 처분해야 하는데 실거주 의무 때문에 팔지 못하고 반대로 실거주를 원하는 사람들은 매물이 없어 거래가 안 된다”고 했다.

재건축사업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대치동 은마아파트 주민 김모(82)씨는 “전 재산인 집을 처분해서 노후자금으로 사용하고 싶은데 규제 때문에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며 “아이들 교육 때문에 전세 수요는 많은데, 재건축 앞둔 집을 사서 실거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라고 했다.

강남 집값은 오르고 잠실은 내리고

2020년 6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서울 강남구 대치·삼성·청담동과 송파구 잠실동 아파트 최근 거래량과 평균 매매가격. 그래픽=김대훈 기자

2020년 6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서울 강남구 대치·삼성·청담동과 송파구 잠실동 아파트 최근 거래량과 평균 매매가격. 그래픽=김대훈 기자

해당 기간 집값은 들쭉날쭉했다. 지난해 대치동 아파트(전용면적 84㎡) 평균 매매가격은 25억3,972만 원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당시(22억2,253만 원)보다 14%가량 올랐다. 지난해 삼성동과 청담동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도 2년 전에 비해 각각 23%, 27% 올랐다. 반면 잠실동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같은 기간 4% 감소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 전문위원은 “강남은 상가나 오피스 건물이 많지만 잠실은 주택 비중이 90%가 넘기 때문에 아무래도 규제 영향이 더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한때 잠실 갭투자 비중이 50%를 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규제로 인근 지역 거래량과 집값이 늘어나는 풍선효과도 나타났다. 잠실동 인근 가락동의 한 대형 아파트 단지는 올 들어 주택 매매가 150건 이상 거래됐다. 대치동 인근 반포동의 한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2년 전 대비 40% 이상 급등했다. 대치동의 한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대치동 아파트 거래가 확 줄어들면서 도곡동이나 반포동 등 인근 아파트로 매매 수요가 몰렸다”고 했다.

내년 총선 겨냥 규제 풀릴까

해당 지역 주민 반발에 서울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규제를 풀자니 아직 집값이 안정화됐다고 보기 어렵고, 규제를 유지하자니 민원이 속출하고 있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4년째 거래가 막히다 보니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민원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민 고충이 큰 것은 알지만 해당 지역 집값이 안정화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표가 많아 해제하기에는 이르다”고 했다. 다만 올해 10월 ‘부동산거래신고법’이 시행되면 시행령에 맞춰 구역 내 용도와 지역을 세분화해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내년 4월 22대 총선을 앞두고 표심을 의식해 규제를 완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도 나온다. 해당 지역 대부분은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 지역구다. 같은 당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이 의원들 요청을 계속 무시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서울시가 재지정의 가장 큰 이유인 ‘투기 수요’에 대해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연장해 주민들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국토부 가이드라인대로 구역을 축소하거나 용도별로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규제를 풀면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다시 집값 상승이 가속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 실수요 시장으로 재편되도록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며 “규제를 풀면 그동안 반영되지 않았던 호재성 요인들과 갭투자 등 투기가 늘어나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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