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현행 최저임금법 제4조 1항은 근본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있다. 최저임금이라는 말 자체엔 ‘근로자의 생존권 및 삶의 질 향상에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임금’이라는 뜻이 함축돼 있다. 그러니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 우리나라 근로자인 한, 최저임금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임금으로 차별 없이 적용돼야 하는 게 제도 취지에 부합한다. 그럼에도 1항은 최저임금을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하여 정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하는 일과 역할 등에 따라 임금이 다른 건 시장경제체제에서 당연하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하는 일에 따라 달리 책정할 수 있다는 얘기는, 마치 직업의 귀천을 따지고 최소한의 삶의 질 역시 하는 일에 맞춰 차별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것처럼 느껴져 당혹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을 공약한 이래, 이 문제는 지난 22일 부결되긴 했지만, 현재 진행 중인 내년도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뜨거운 쟁점이었다.
▦ 물론 차등 적용론이 나쁜 취지에서 나온 건 아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과속페달을 밟은 결과 최저임금은 무려 42%나 올랐다. 게다가 주휴수당 등 추가 인건비 부담까지 더해졌다. 안 그래도 불황에 코로나로 경영난에 빠진 다수 소상공인ㆍ자영업자들은 인건비 부담을 더는 감당할 수 없다며 아우성을 치게 됐다. 최근 소상공인 등이 내년도 최저임금 동결과 함께 업종별 차등적용을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 정부와 사용자 측은 차등 적용이 최저임금 감당이 어려워진 업종 사정과, 최저임금 급등으로 되레 일자리가 위축되는 등의 부작용을 풀 수 있는 현실적 해법임을 강조한다. 미국과 일본 등도 직종이나 산업, 연령과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하기도 한다. 차등 적용은 외국인 노동자 임금 문제와도 연관돼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차등 적용은 국민정서상 여전히 수용하기 어려운 난제다. 차라리 최저임금을 일괄적용하되, 감당이 어려운 업종 등에는 고용지원제를 원용하는 방식으로 정부 지원을 가동하는 방식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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