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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사무실에 전화 한 통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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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이달 초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김서경씨를 인터뷰하며 이런 질문을 했다. “보통 사람들은 기후위기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는 듯한데, 정치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기후대응’에 무감한 정치권에 대한 비판을 기대했다. ‘한국 정치’는 늘 실망을 안겨주니, 누구와도 편하게 흉볼 수 있는 대상 아닌가.
서경씨의 답변은 의외였다. “나는 관심이 많은데 ‘정치인은 왜 이런 거 안 해줘?’라는 부분을 생각해보면요.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했나, 어떻게 표현했나, 한 번이라도 유세 현장에 가서 이런 걸 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나, 그 사람들의 의견을 읽어보고 평가한 과정이 있었나를 돌아봐야 해요. 사실 거의 없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요.”
그의 말을 듣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대의정치의 비생산성에 지쳤으면서도 소극적 관전만을 당연시하는 ‘주권자’를 그가 정확히 지적해서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럴 것이다. 당신을 대신해서 입법 업무를 부여받은 국회의원인데, 당신은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생각도 하지 못한다.
2년여 전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겪는 임금 떼이기 실태를 보도(‘중간착취의 지옥도’ 기획)한 뒤, 후배 기자가 용역 노동자 가족에게서 받은 인상 깊은 메일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런 기사들이 계속 반복된다면··· 언젠가는 국회의원 귀에, 대통령 귀에 들어가겠지요? 그럼 좀 변하려나요?”라는 내용이었다. 그땐 그 용역 가족의 안타까운 사정을 알아주지 않은 정치권이 미웠다. 지금은 그분 또한 정치인들의 귀에 이 문제가 그저 흘러들어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도 눈에 띈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중간착취방지법은 국민의힘 환경노동위원회 간사인 임이자 의원이 동의하지 않아 심의를 못 하고 있는데, 이를 보도한 기사에 대한 반응도 비슷하다. 정치권에 분노하고 낙담하면서도, 임 의원 사무실에 전화해서 “꼭 통과시켜달라”고 의견을 내보자는 반응은 없다.
한국에선 투표하는 유권자는 있지만, 권력의 주인으로서 주권자는 보이지 않는다. ‘주인 행세’는 정치인들이 한다. 수많은 각종 특권을 누리고 1억6,000만 원에 이르는 연봉을 받고, 35억 원의 평균재산을 가진 의원들이 기초생활수급자, 비정규직 노동자, 편의점 알바생, 영세 자영업자의 대표자일 리 없고, 친구일 리 없고, 이웃일 리 없다. 정치인 팬덤의 문자 폭탄만 보더라도 입법 요구사항이 아니라, 특정 정치인 떠받들기를 위해 작동한다. 헌법 1조(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증명 불능이다.
4, 5년에 투표 한 번 하는 것 외에 ‘주권자’는 무엇을 할 수 있나. 만약 당신이 간절히 원하는 제도가 있다면 그 분야 의원실에 전화를 한 통씩 해보는 걸로 시작하면 어떨까. 기후위기·비정규직·동물권·조세·성평등··· 어떤 주제라도 좋다. 물론 의원이 아닌 보좌진이 전화를 받을 것이다. “국민으로서 절실해서 하는 말이니 잘 메모해서 의원께 전달해달라”고 해보자. 처음이 어렵지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니네” 싶을 수 있다.
정치인들의 귀에 끊임없이 ‘진짜 주인’의 육성을 들려주는 건 중요하다. 대부분의 힘없는 주권자들이 정치권에의 의견 개진을 포기해온 동안, 정치권은 경영자단체, 대기업, 거대 노동조합, 각종 이익단체들의 요구를 우선시해왔다. 목소리를 내지 못한 이들이 조금씩 ‘주인 행세’를 할 방법을 찾다 보면, 어쩌면 진짜 ‘주인 자리’ 한편을 얻을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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