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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일 만에 심사 끝낸 중국... 한중일 배터리 특허 전쟁 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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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분야 시장 점유율 세계 1위(34.9%·2022년 상반기 기준)인 중국 CATL이 최근 관련 기술의 특허를 단 39일 만에 등록했다. 짧아도 보통 수개월은 걸리는 특허 심사가 한 달여 만에 끝난 건 파격적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특허인지 알려지진 않았지만, 배터리 기술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가운데 중국의 특허 확보 속도전이 본격화하면서 업계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우리나라 심사 기간은 통상 17개월이다.
19일 특허청과 업계 등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자국 배터리 기업들이 신속하게 특허를 등록하고 기술 보호의 울타리를 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올 3월 특허청 역할을 하는 국가지식산권국을 국무총리실 격인 국무원의 직할 기구로 격상했다. 또 CATL 본사와 공장이 있는 푸젠성에 특허심사협력센터를 두고, CATL이 출원하는 특허에 고속 심사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심사관 규모는 2011년 4,402명에서 지난해 1만6,000여 명까지 크게 증가했다. 이는 우리 특허청 심사관 수(953명)의 약 17배에 달하는 규모다.
중국이 배터리 특허 출원에 혈안이 된 건 한국 기업들이 특허 경쟁력 측면에서 중국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특허청이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2개국 이상에서 출원된 배터리 특허 동향을 분석한 결과, LG에너지솔루션이 1만5,318건의 특허를 출원해 세계 1위였다. 삼성SDI는 8,157건으로 2위다. 4위는 미국 테슬라의 핵심 배터리 공급업체인 일본 파나소닉(6,104건)이다. CATL은 시장 점유율은 세계 1위지만 특허 출원은 7위(2,397건)로, 경쟁국인 한국·일본에 비해 뒤처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특허의 양적, 질적 측면 모두 선두를 달리고 있다. 특허 역시 학술논문과 마찬가지로 피인용 횟수를 통해 질적 수준을 가늠하는데, 주로 미국 특허를 토대로 경쟁력을 산정한다. 미국 기업이 자국 특허를 출원할 때 제출하는 자료에 많이 인용될수록 질적 수준이 높은 특허로 인정되는 식이다. 특허청이 이 같은 방식으로 2011~20년 한·중·일 '특허 지도'를 그려봤더니, LG에너지솔루션은 △전극소재 △셀공정 △패키징에서 상대적으로 우수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삼성SDI는 △패키징 △안정화 분야에서 우수했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 경쟁력이 우수한 건 자명하지만, 중국과 일본이 뒤를 바짝 쫓고 있는 것은 위험 신호다. 국내 기업들이 고용량 배터리에 쓰이는 NCM(니켈·코발트·망간) 양극재 특허 확보에 힘써 왔다면, 중국은 저가면서도 안정성이 높은 LFP(리튬·인산·철) 양극재 특허 출원에 주력하고 있다. 원자재 확보의 용이함과 저렴한 인건비를 발판 삼아 보급형 배터리로 시장 점유율을 늘리겠다는 게 중국의 전략이다. 기존 흑연 음극재보다 배터리 성능을 높이는 실리콘 음극재의 특허 출원도 중국에서 최근 늘었다. 지금은 LG에너지솔루션의 경쟁력이 높지만, 중국이 따라잡는 건 시간문제다.
일본은 한국·중국보다 먼저 리튬이온배터리를 상용화했으나, 시장 점유율은 양국에 한참 못 미친다. 때문에 배터리의 안정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전고체 전지를 상용화해 '판'을 바꾸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 현재 배터리의 양극과 음극 사이에는 분리막과 액체 전해질이 들어 있는데, 외부 충격을 받으면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전해질을 고체로 대체한 전고체 전지를 쓰면 폭발 위험이 줄어든다. 도요타는 지난달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전지를 탑재한 전기차를 2027년 상용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세계 배터리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한 한·중·일 기업들의 기술 전쟁이 격화하고, 전선이 미국·유럽 등으로 넓어지고 있는 만큼 특허를 해외에 출원해 권리를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다. 특히 소재 분야에서는 일본이 해외 출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10년간 일본 주요 소재기업 6곳의 전체 출원량 대비 해외 출원 비중은 62%에 달한다. 반면 한국 주요 기업 7곳의 해외 출원 비중은 33%에 그쳤다. 일본이 특허권을 앞세워 미국·유럽 시장을 선점할 경우 우리 소재기업들의 입지는 좁아질 우려가 크다.
업계에서는 해외 특허 등록을 앞당기기 위해 국내 심사가 빨라져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한 기업이 여러 나라에 동일한 특허를 출원할 경우, 국내에 먼저 특허가 등록돼 있으면 이를 근거로 다른 국가들에 우선심사를 요청하는 '특허 고속도로(하이웨이) 제도'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국내 특허를 조건으로 해외 심사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심사 상황은 고속은커녕 '병목 현상'을 겪고 있다. 특허청 심사관 1인당 연간 심사 건수는 197건으로, 유럽(59건)·미국(69건)·중국(91건)의 2, 3배에 달한다. 특히 배터리 분야 심사 건수는 2018년 3,520건에서 지난해 7,240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업계의 위기감에 특허청은 배터리를 우선 심사 분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특허청은 지난해 11월 반도체를 우선 심사 분야로 지정하고, 167명으로 구성된 반도체전문심사국을 출범시켰다.
전문가들도 특허 심사 속도를 올려 기술 경쟁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게 기업 경쟁력 확보에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영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스마트소재연구실장은 "배터리는 법에 의해 국가첨단전략기술로 지정돼 있다"면서 "전문 식견을 가진 심사관들이 신속하게 심사를 진행하는 '패스트 트랙'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차전지: 충전과 방전을 여러 번 반복할 수 있는 전지. 흔히 '배터리'로 불린다. 한 번 방전되면 다시 충전할 수 없는 '일차전지'와 구분된다.
-리튬이온 배터리: 리튬 이온을 이용해 충·방전을 하는 이차전지. 에너지 용량 대비 가벼운 것이 장점으로, 휴대폰·노트북·전기차 등에 널리 쓰이는 가장 상용화한 이차전지다. 양극·음극·분리막·전해질로 구성된다. 양극에 있던 리튬 이온이 음극으로 이동하면서 배터리가 충전되고, 음극에 있던 리튬 이온이 양극으로 이동하면서 방전된다.
-양극: 리튬 이온이 들어가는 공간으로, 양극재가 용량·전압 등의 배터리 성능을 결정한다.
-음극: 양극에서 나온 리튬 이온을 저장, 방출해 전류를 흐르게 한다. 흑연·실리콘 등이 음극재로 쓰인다.
-분리막: 양극과 음극이 물리적으로 섞이지 않도록 하는 막. 미세한 구멍이 있어 리튬 이온만 이동할 수 있다.
-전해질: 양극과 음극 사이에서 리튬 이온이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 현재 상용화한 리튬이온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을 사용한다.
-NCM 배터리: 세 가지의 양극재를 조합한 '삼원계' 배터리의 한 종류. 리튬·코발트 산화물에 니켈·망간을 더한 양극재를 쓴다. 니켈 비중이 클수록 에너지 밀도가 높고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이 주력으로 삼고 있다.
-LFP 배터리: 리튬·인산·철을 양극재로 쓰는 배터리. 에너지 밀도가 낮고 주행거리가 짧지만, 가격 경쟁력이 높아 중국이 주로 생산한다.
-전고체 배터리: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의 분리막과 액체 전해질을 고체 전해질로 바꿔 안전성을 높인 배터리. 일본 토요타가 상용화에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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