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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00억 일군 배터리 특허명장... ”당장 불필요해도 많이 확보하면 큰 자산”

입력
2023.07.20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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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선 LG에너지솔루션 특허센터장 국내 언론 첫 인터뷰

이한선 LG에너지솔루션 특허센터장. LG에너지솔루션 제공

이한선 LG에너지솔루션 특허센터장. LG에너지솔루션 제공

5,897억 원.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기술 특허자산의 최소 가치다. 최대 경쟁사인 중국 CATL(4억2,000만 위안, 약 749억 원)의 자그마치 8배다. 기술의 가치를 이만큼 키워낸 핵심 인물이 이한선 특허센터장이다. 그에겐 늘 '특허 명장(明匠)'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1990년대 초 LG화학(LG에너지솔루션의 전신)에 입사한 이래 30여 년간 특허만 들여다보며 그는 "회사가 시장 추종자에서 선도자로 올라서는 과정을 생생히 지켜봤다"고 했다. 지난해 말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사업 관련 국내외 등록 특허는 총 2만6,641건으로 세계 1위다. 6,583건을 확보한 CATL의 4배가 넘는다. 그 많은 특허가 이 센터장의 손을 거쳤다.

선도자와 추종자의 전략은 근본적으로 달라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특허를 신제품 개발 과정의 일부로 보지 않고, 특허 개발을 우선순위에 두고 잠재적 시장 수요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고유 기술의 특허 출원을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가장 먼저 발자국을 찍는 것"에 비유했다. 특히 자동차 배터리 분야는 '족적'을 먼저 남기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려면 "당장 필요 없는 기술도 개발해서 최대한 많은 특허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이 센터장은 역설했다. 헝가리 출장 중인 그와 12일 화상으로 만났다. "언론 인터뷰는 처음"이라고 했다.

파트너 끌어들이고 생산비용 격차 키워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월 28일(현지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파이에트 카운티 제퍼슨빌 인근에서 일본 혼다와의 배터리 합작공장 기공식을 열었다. 사진은 LG에너지솔루션-혼다 합작법인의 이혁재(왼쪽) CEO와 릭 리글 COO가 합작공장 조감도를 공개하고 있는 모습. LG에너지솔루션 제공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월 28일(현지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파이에트 카운티 제퍼슨빌 인근에서 일본 혼다와의 배터리 합작공장 기공식을 열었다. 사진은 LG에너지솔루션-혼다 합작법인의 이혁재(왼쪽) CEO와 릭 리글 COO가 합작공장 조감도를 공개하고 있는 모습. LG에너지솔루션 제공

-배터리 산업에서 특허가 얼마나 중요한가.

“모든 기업 간 거래(B2B) 산업에서 특허 확보는 중요하다.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의 기술력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배터리 분야에선 한층 더 중요하다. 배터리 제조업체의 무형자산을 매개로 완성차 업체와 합작(조인트벤처·JV)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는 특성이 있어서다. LG에너지솔루션은 글로벌 자동차 업체와 JV를 맺고 기술을 대여하는데, 특허 출원한 기술이 사업 파트너를 끌어들인다. JV 모델 확장에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이다.”

- 특허와 사업 확대가 어떤 관련이 있나.

“경쟁사와 우리가 생산하는 배터리 수량이 동일하고, 매출의 3%가 특허 사용료(로열티)라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특허를 많이 가진 우리가 경쟁사 매출의 3%를 로열티로 받아 영업이익률 3%를 올릴 수 있다. 반면 경쟁사의 영업이익은 똑같은 비율로 낮아진다. 생산 비용에서만 6%의 격차가 난다. 경쟁사에 받은 특허 로열티를 연구개발에 재투자하면 고품질 제품이 또 개발되고, 앞서나간 기술은 신규 특허로 출원할 수 있다. 미리 확보해둔 특허 경쟁력이 선순환을 가져온다.”

LG에너지솔루션이 생산하는 파우치형 리튬이온 배터리를 직원들이 들어 보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제공

LG에너지솔루션이 생산하는 파우치형 리튬이온 배터리를 직원들이 들어 보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제공

-어떻게 배터리 특허 선도자가 됐나.

“1990년대 말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1997년 배터리 관련 세계 특허를 분석해 보니, 당시 종주국 지위를 갖고 있던 일본은 핵심 특허를 자국 내에만 출원해 놓고, 일본 외 지역에는 출원을 상대적으로 덜 했다. 우리가 로열티를 내지 않고도 사업 진출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자동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에 본격 착수한 때는 2000년대 초다. 수년간 자체 연구로 2004년 12월 '세라믹 코팅 분리막' 기술을 개발해 특허 출원했다. 분리막은 배터리 화재를 막는 안전판이자 배터리 내부의 리튬이온 흐름을 원활하게 해 전기 생산이 쉽도록 하는 연결통로다. 당시 LG화학은 세라믹 입자 등을 활용해 분리막 구조를 안정적으로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 2005년 4월에는 니켈·코발트·망간을 넣은 양극재도 자체 개발해 특허를 확보했다. 전기차 배터리의 안전성과 성능 모두를 고유 기술로 갖춘 이후 현대차, GM, 폭스바겐 등 주요 완성차 업체의 물량을 잇따라 수주했다.”

모든 특허 뒤져 기술 공백 찾아낸다

2014년 5월 대전에 있는 LG화학(LG에너지솔루션의 전신) 기술연구원에서 직원들이 배터리 안전성을 높인 분리막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LG화학 제공

2014년 5월 대전에 있는 LG화학(LG에너지솔루션의 전신) 기술연구원에서 직원들이 배터리 안전성을 높인 분리막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LG화학 제공

-공격적인 수주 활동이 대량 특허 출원으로 이어졌나.

“그렇다. 배터리는 전기차의 핵심 부품이어서 완성차 업체들의 제품 사양 관련 요구가 많다. 거기에 맞춰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수주처가 다양할수록 더 많은 신기술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오고, 그걸 특허로 확보한다. 신규 특허가 쌓이는 효과가 생긴다.”

2021년 10월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 도곡 캠퍼스에서 이한선(왼쪽 두 번째) LG에너지솔루션 상무가 제10회 지식재산대상을 받은 뒤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KAIST제공

2021년 10월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 도곡 캠퍼스에서 이한선(왼쪽 두 번째) LG에너지솔루션 상무가 제10회 지식재산대상을 받은 뒤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KAIST제공

-특허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 있다면.

“2003년께부터 사내 연구개발 조직장들이 '좋은 특허 확보'를 목표로 삼았다. 좋은 특허를 가지려면 특허를 많이 낼 수 있는 연구개발(R&D)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기조였다. 2014년부터는 아예 '특허 R&D'라는 고유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연구원과 사내 특허 전문가가 함께 특정 분야의 모든 특허를 분석해 기술 공백을 찾아낸다. 지금 개발할 제품에 꼭 맞는 기술이 아니라도 '공백 선점'을 위해 개발하고 특허를 출원한다. 특허 R&D는 시장 선도자에게 필요한 전략이다. 신제품 개발이라는 목표가 있어야만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추종자의 방식이다. 업계에 필요한 모든 특허를 선점하는 것이 우리의 방향이다.”

지난달 27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3 세계 배터리 & 충전 인프라 엑스포'에서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가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3 세계 배터리 & 충전 인프라 엑스포'에서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가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배터리 기술은 양극과 음극, 분리막, 전해질의 4대 핵심 소재를 중심으로 개발된다. 중국, 일본의 경쟁력과 비교할 때 한국 기업은 어디에 집중해야 하나.

“한국은 현재 중국과 일본에 비해 강세인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뿐 아니라 리튬·철·인산(LFP), 전고체(고체 전해질) 배터리 모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전기차 시장을 장악할 기술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장엔 수많은 선택지가 놓여 있다. 대기업뿐 아니라 소재전문업체, 기술벤처, 대학 등이 협력해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의 형태로 전 분야에서 특허를 선점해야 한다.”

윤현종 기자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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