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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도우미'라고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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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에서 유독 기억에 남았던 대사가 있다.
"돈이 대리미야 대리미. 구김살을 쭉 펴줘."
자신이 일하는 부잣집 식구들의 순진성과 착함을 이야기하던 가사 도우미 충숙이 한숨과 함께 뱉은 말이다. 삶에서 필수적으로 발생하는 지저분하고 어려운 부분을 모두 외주 주고, 말 그대로 그림처럼 사는 주인집 가족의 비현실성을 짧고 명쾌하게 짚어낸 표현이었다.
올 초 어느 국회의원이 '맞벌이 청년들을 가사와 육아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월 100만 원에 쓸 수 있는 외국인 가사 도우미를 도입하자'는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다는 말에 이 대사가 머리를 스쳤다. 블랙 코미디가 현실로, 그것도 어설프게 구현되는 것을 목격한 기분이었다. 다행히 이 발상은 이곳저곳에서 뭇매를 맞았고 법안은 계류 상태로 남겨졌다.
그러나 '외국인 가사 도우미'라는 아이디어는 기어코 살아남았다. 고용노동부가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100명의 외국인 가사 도우미를 선발해 서울 시내 가정에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급여는 최저임금에 맞춰 책정됐으나, 도입 배경이나 효과를 설명하는 논리는 기존의 처참한 수준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부모들이 양육 지원 사업 중 직접 돌봄 시간을 늘려줄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을 가장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들과, 외국인 가사 도우미를 도입한 주변국의 출생률이 반등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또다시 무시되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가사 도우미 선발과 교육, 배치까지의 계획 중 어느 곳에도 이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본 흔적이 없다는 점이다. 외국인 가사 도우미의 '수요'를 예측하는 근거로 활용되는 것은 비용이 저렴하고 영어도 가능하며, 임금 대비 고급 인력이 많다는 점이다. 모두, 결국 사용자 입장에서 싸고 편리하다는 이야기다. 반면 노동자로서 이들의 인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가정이라는 사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일하면서 부딪힐 수 있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관한 언급은 없다.
인권 보호는커녕,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을 위해 겨우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맞춰 두고도 여전히 서울시장은 필리핀의 국내총생산(GDP) 수준이면 월 100만 원 급여로도 충분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한국에서 앞으로 어떤 대접을 받게 될지 뻔히 보이는 대목이다. 우리가 외국인에게 본국 GDP에 비례해 물건 값이나 세금을 달리 책정하던가? 국내 기업에서 일하는 선진국 국적의 노동자들에게 본국 물가에 맞춘 월급을 주는가? 최저임금은 이 사회에서의 생활 비용을 기준으로 책정되는 것이지 국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들을 고용할 가정의 부담을 낮춰주고 싶다면 차액은 정책을 만든 국가가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 정책이 실행되면 우리나라에 오게 될 이들은 대개 20·30대 여성일 터다. 타국 청년에 대한 이토록 명백한 착취를, 한국 청년의 삶과 커리어를 보호하는 방안으로 내놓았다는 점이 지독히 불쾌하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또래 인간으로, 이런 정책의 수혜자로 상정되는 한편 임신과 출산을 기대받는 기혼 여성 직장인으로서, 나는 나의 삶을 개선하고자 국가에 던지는 요구가 다른 여성의 값싸고 고된 노동으로 때워지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니 제발, 나를 위해 이들을 부른다고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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