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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우울한 언니, 너무 불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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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학생입니다. 저에게는 따로 살며 직장을 다니는 두 살 터울 언니가 있습니다. 언니는 어려서부터 원인 모를 불안을 느끼고 우울을 호소해 가족의 걱정거리였습니다. 언니는 매사를 과민하게 받아들이고, 속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아요. 어릴 때부터 "죽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언니가 요즘은 체력도 떨어지고, 가족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과도 거의 소통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와 가족들이 언니와 어떻게 하면 잘 소통할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언니와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같은 방을 썼습니다. 그러다 정리정돈 문제로 다퉈 각자 방을 분리하게 됐죠. 언니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책으로 책상에 담을 쌓기 시작했고, 대학생 시절 살았던 셰어하우스의 방은 늘 어수선했습니다. 언니가 첫 직장을 그만뒀을 때 찾아갔던 원룸은 아직도 기억이 나요. 도둑맞은 집처럼 더럽고 엉망진창이어서 엄마와 제가 같이 대청소를 하고 방을 뺐습니다. 지금은 자취를 하는데 그 집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아요.
어릴 땐 유독 신발끈을 잘 묶지 못했는데 그런 정돈되지 않는 모습에 언니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손가락 힘이 부족해 세밀한 손 작업이 어려워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멀쩡히 서 있다가도 갑자기 춤추는 듯한 동작을 했고, 아직도 혼자 무언가 생각할 때 짧은 거리를 계속 반복해서 왔다 갔다 합니다.
언니 방에서 지폐와 동전이 방바닥을 굴러다니는 건 흔한 풍경이었어요. 대학생 때는 용돈을 받았지만 부모님과 그것 관련해 다툼이 잦았고, 직장을 다닐 때도 돈 관리에 어려움이 있었어요. 가족들이 걱정돼 물어보면 "돈이 없다"는 말만 반복합니다. 평일에 회사를 다니면서 생활비가 부족해 주말 아르바이트까지 시작한 상황입니다. 최근에는 카드값을 내기 위해 저에게 돈을 빌린 적도 있어요.
학업 성취는 나쁘지 않았어요. 어릴 적부터 독서를 좋아하고, 중학교에 들어갈 때는 수석으로 입학했습니다. 과목마다 편차가 커서 항상 성적이 좋은 건 아니었지만 서울 상위권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대인 관계에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중학교 때부터 친구들과 거리를 두고 책 읽는 데 몰두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몇 명 친구가 생겼지만 대학에 들어가선 친구가 거의 없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상사와의 관계에 어려움이 있었죠. 제가 보기엔 언니의 10대 시절부터 20대 후반까지 다른 사람들과 관계에 어려움이 있어 보여요.
3년 전 집에서 계속 울기만 하는 언니를 설득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했습니다. 당시 언니는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눈물을 흘렸어요. 이유를 물어보면 "모르겠다"는 말을 하며 밤새 대성통곡을 했죠. 한 달 정도 심한 우울감을 보였고, 어떤 날은 "죽고 싶다"는 말도 했습니다. 몇 차례 상담을 받은 후에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은 듯 보였어요. 담당 의사는 원한다면 약 처방을 받을 수 있다고 했고, 언니는 가족과 의논 후에 약 처방을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부모님은 그런 언니를 믿어 주고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분들입니다. 세대 차이를 느끼기 힘들 만큼 유연한 사고를 합니다. 다만 아버지는 보수적인 편으로, 언니나 저와 부딪힌 적이 꽤 있어요. 그렇다 해도 폭력을 쓰거나 심한 말을 하진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 가족은 평범한 중산층에, 화목한 가정이에요. 대화도 많이 하는데, 특히 언니가 힘들 때는 주기적으로 가족 회의를 열었어요. 가족 중에는 유독 언니만 대화가 되지 않아요. 언니는 요즘 다른 사람과 교류하지 않고 고립돼 지내는 듯합니다. 극심한 우울증을 호소하던 수 년 전처럼 언니의 상태가 악화될까 봐 불안합니다. 언니의 예민함은 어떻게 하면 해소될 수 있나요. 입을 잘 열지 않는 언니와의 관계를 앞으로 어떻게 이어 나가야 할까요.
김지윤(가명·24·학생)
지윤씨, 화목한 가족 안에서 자꾸 소통을 거부하고 고립돼 있으려는 언니를 보면서 마음이 불편하고 답답했을 것 같아요. 지윤씨의 마음속에는 본인과 가족에게 속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는 언니에 대한 원망이 오랜 시간 쌓인 것 같아요. 지윤씨의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같이 고민해봅시다.
지윤씨가 보기에 언니는 너무나 과민한 사람이죠. 지윤씨는 늘 우울해 보이고, 때로 "죽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언니를 안타깝게 생각해 왔어요. 언니를 걱정하는 마음에, 언니가 '과민함'을 극복하고 가족들과 친밀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해 왔지요. 동생으로서 언니를 걱정하고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저의 의학적인 소견으로는 언니가 현재 정신적으로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판단을 하기는 어려워요. 과거에 "죽고 싶다"는 말을 했고, 잠시 의학적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 금방 회복돼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요. 어려서부터 신발끈을 잘 묶지 못하고 주변 관리를 못하는 것이나 빙글빙글 돌아다녔다는 언급으로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증상을 의심해 볼 수 있지만 언니가 실제로 그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지 등이 드러나지 않아요. 저는 지윤씨가 묘사한 언니의 문제보다는 언니에 대해 지나치리만큼 걱정하는 지윤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세상엔 다양한 형제자매 관계가 존재합니다. 같은 부모에게 태어나 피를 나눈 관계라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되기도 하고, 남보다 못한 원수지간으로 살기도 하죠. 지윤씨와 언니와의 관계는 어떤가요. '피붙이' '원수' '라이벌' '단짝' 중에 어떤 말로 언니를 설명할 수 있나요. 가정에서는 우애가 깊고, 서로를 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존재하지만 실제 관계에서는 좋아하면서도 싫어하고, 때로 다투기도 하며 다양한 감정이 생기게 되죠. 특히 부모의 애정이나 인정을 두고 갈등과 경쟁이 벌어지며 시기심이나 질투심도 생기는데 대부분 그런 감정은 은근하게 억누르길 강요받아 직접 드러내기가 어렵습니다.
지윤씨도 성장 과정에서 자매 사이에서 보통 겪는 복합적인 감정을 느껴왔을 거예요. 중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서울 상위권 대학을 졸업한 언니를 보며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 부러운 감정이나 시기심을 느끼는 것이죠. 주로 언니를 걱정하며 관심 가지는 부모님에 대해 서운함을 느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서로를 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그런 감정을 억압하기 쉽습니다. 사연을 읽으면서 주목한 점도 그 부분입니다. 과거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언니의 문제점을 일일이 열거했지만 그때 지윤씨가 느낀 감정은 묘사하지 않았어요.
지윤씨와 언니는 진취적으로 나와 세상을 탐구하는 성인기 초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지금은 언니의 내밀한 문제나 언니와 소통하는 문제에 집중하는 것보다 스스로에게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시기라는 점이에요. 지윤씨가 묘사한 수준의 문제라면 언니에 대한 관심이 다소 과도한 수준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언니에 대한 걱정과 별개로 언니와 소통이 원할하지 않은 점에 대한 원망, 가족 구성원 모두가 긴밀하게 소통해야 한다는 집착과 불안 등이 느껴져요. 그 부분에 대해 스스로 인지하고 나면 지윤씨의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 거예요.
자매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중요한 요소가 경쟁심입니다. 경쟁 구도 속에서 상대의 고통이 약점으로 인식되거나, 무의식적으로 약점을 찾기도 하죠. 지윤씨 역시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언니의 단점이나 약점을 스스로 부각하는 행동을 해 왔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언니의 고유 성향일 수도 있는 부분들을 존중하기보다는 하나하나 문제시하게 되는 것이죠.
지윤씨의 고민 포커스를 지윤씨 본인에게 맞춰 보면 어떨까요.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언니에 대한 나의 감정 읽기예요. 언니와 관계된 사건을 경험하며 느낀 내 감정을 기록해 보세요. 언니 자체에 대한 걱정을 '언니의 어떤 측면에 집중하면서 과도하게 걱정하는 스스로에 대한 고민'으로 치환할 수 있다면 마음의 짐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보일 거예요. 자매가 서로 의지하면서 경쟁하고, 어느 시점에서 거리를 두고 독립을 추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성장의 모습이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언니를 바꾸거나 언니와의 관계를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잘 이해하는 것입니다. 기대하던 답변이 아니라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지윤씨의 성장과 행복에 근본적인 도움이 되길 바라고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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