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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괜찮은 도시'가 되는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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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머서(Mercer)는 세계 주요 도시들을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살기 좋은 도시 순위를 발표한다. 2019년에 발표된 자료에서 1위는 오스트리아의 빈이었고 도쿄는 49위 그리고 서울은 77위로 나타났다. 또 유명 경제지 이코노미스트가 2023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살기 좋은 도시 1위는 빈이고 서울은 60위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의 살기 좋은 도시 순위를 기준으로 할 경우, 서울은 ‘이만하면 괜찮은 도시(a good enough city)’라는 평가를 받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이만하면 괜찮은 도시’라는 표현은 정신분석가 위니콧(D. W. Winnicott)의 이론에서 빌려 온 것이다.
이만하면 괜찮은 도시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의견이 조금씩 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필수적으로 포함해야 할 요소 중 하나는 ‘품격(品格)’을 갖춘 도시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품격이라는 단어에서 ‘품(品)’자에는 입을 뜻하는 ‘구(口)’가 3개 모여있다. 이것은 세 사람 이상, 즉 다수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품격이란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아니라, 다수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뜻한다. 이런 점에서 서울시가 품격을 갖춘 도시 혹은 이만하면 괜찮은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 환자와 건강한 사람 그리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과 돌봄을 실천하는 사람 모두가 함께하는 ‘동행’의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지난 10일 서울시는 민선 8기 시정 철학인 '약자와의 동행' 가치를 실천하기 위한 핵심 지표인 '약자동행지수'를 발표했다. 이 지표는 돌봄, 주거, 의료, 교육, 안전, 사회통합 등 여섯 개 영역에 걸친 50개의 평가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향후 서울시는 이 지표를 예산 재분배 및 사업의 타당성 평가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서울시가 동행의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구체적인 지표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야심 찬 선언을 한 것은 시민의 일원으로서 크게 환영할 만한 일로 보인다. 다만, 이러한 노력을 통해 실제로 서울 시민의 ‘삶의 질’이 개선되는 동시에 서울시가 ‘이만하면 괜찮은 도시’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관산학 협력체계’를 잘 갖추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비록 서울시가 의욕적으로 '약자와의 동행'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더라도, 한정된 재원으로 서울 시민이 필요로 하는 막대한 사업들을 모두 수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특히, 서울시의 '약자와의 동행' 사업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동행의 가치가 지금보다 사회적으로 더 잘 확산될 필요가 있다. '약자와의 동행' 사업이 공허한 정치적 구호로 그치지 않고 실효성을 낳는 데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동행 사업이 도덕적인 의무론에 의존해 시행되기보다는 동행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를 바탕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할 때는 상식만으로는 부족하고 심리학적인 관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심리학적으로 연민은 동정과는 다른 개념이다. 동정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감정이다. 그래서 동정심은 우리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보고도 애써 외면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대조적으로, 연민은 상대방이 경험하는 고통을 제거해 줌으로써 그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긍정적인 감정이다. 연민은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유익함을 선사해 준다는 점에서 사랑과 희망만큼이나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연민은 우리가 자신에게도 이롭고 타인에게도 이로운 것을 뜻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서울시 약자동행지수 발표가 관산학이 동행의 가치를 실천하기 위한 협력체계를 갖추는 계기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향후 우리 사회에서 동행의 가치가 굳건히 뿌리내리게 됨으로써 서울시를 포함한 전국의 많은 도시가 조금씩 하지만 꾸준히 ’이만하면 괜찮은 도시‘를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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