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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아메리칸 드림'과 '미국의 영혼'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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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사전이 정의한 ‘아메리칸 드림’은 “누구나 성실히 노력하면 성공적인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미국인들의) 신념”이다. 성취의 과정 즉 기회의 평등이라는 당위에 무게를 실은 설명이지만, 더러는 목표나 결과 즉 성취할 바를 가리키기도 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인 저소득층 유권자들에게 틈날 때마다 부추기던 꿈, 즉 “좋은 직장과 멋진 집, 완벽한 가족”이 후자의 예라면, 마틴 루터 킹이 63년 8월 ‘워싱턴 행진’ 연단에서 웅변한 꿈(I Have a Dream)은 전자의 예다.
‘아메리칸 드림’은 사학자 제임스 애덤스(James T. Adams)가 1931년 저서 ‘미국의 서사시(The Epic of America)’에 처음 써서 유명해진 말이다. 그는 20세기 초 고삐 풀린 물질주의의 욕망과 대공황의 비참에 대한 성찰의 의미로 저 말을 썼다. 그의 아메리칸 드림은 “단순히 자동차와 높은 임금을 욕망하는 꿈이 아니라 남녀 불문 모두가 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사회 질서를 갈망하는 꿈이자, 출생 신분 등 우연한 조건과 무관하게 모두가 존재를 인정받기를 바라는 꿈"이었다.
말도 시대의 산물이어서 시대에 따라 의미도 더러 달라지만 ‘아메리칸 드림’만큼 시류에 휘둘려온 예도 드물다. 버지니아대 사학자 스티븐 길런(Steven Gillon)은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저 상반된 이해와 맥락으로 미국 정치의 양극화를 설명하기도 했다.
현 대통령 조 바이든이 2019년 후보시절부터 최근까지 ‘미국의 영혼(Soul of America)’이란 표현을 애써 부각해온 것도 어쩌면 이념 정쟁의 수사로 어지러워진 ‘드림’을 우회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는 통합과 민주주의 등 다양한 의미로 저 말을 써왔다.
하지만 미국 보건 시민운동가 아디 바컨(Ohad “Adi” Barkan, 1983.12.18~ 2023.11.1)은 “내 몸이야말로 미국의 영혼”이라고 주장했다. 불치의 신경퇴행성 질환인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ALS, 일명 루게릭 병)’을 앓아온 그는 난맥의 미국 의료시스템 속에서 보호받지 못한 채 쇠해가는 자신의 몸과 가정이 ‘미국의 (병든)영혼’을 상징한다며, 사는 날까지라도 사는 것처럼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의료 복지, 보험 시스템을 고쳐 달라고 산 날까지 혼신을 다해 호소했다. 정치매체 ‘POLITICO’가 “미국의 가장 힘센(powerful) 활동가”라 했던 아디 바컨이 별세했다. 향년 39세.
2016년 9월 30일, 컬럼비아대 경제학부(2006)와 예일대 로스쿨(2010)을 나온 야심 찬 시민 정치활동가 바컨은 아내 레이철 킹(Rachael King)과 LA의 한 근사한 식당에서 결혼 1주년 만찬을 즐겼다. 학부 때 만나 만 10년 연애 끝에 부부가 된 그들에겐 넉 달 전 태어난 첫 아이(Carl)가 있었고, 처음 아이를 떼어놓고 가진 둘만의 시간이었다. 킹이 캘리포니아 샌터바버라대 영문과 교수로 임용된 걸 자축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였던 바컨은 그날 포크를 쥔 손이 떨리며 자꾸 처지는 느낌을 받는다. 다음날 만난 레지던트 친구는 곧장 정밀 검사를 권했다. 진단 결과 ALS였다. 확정적이지 않은 원인으로 뇌-척수 운동 신경세포가 서서히 망가져 움직이고 먹고 숨쉬는 근육까지 기능을 못하게 되는, 아직 이렇다 할 치료법이 없는 질병. 의사는 남은 시간을 3~4년으로 예상했다.
청천벽력의 충격에 넋이 나가 있던 그에게 또 하나의 날벼락이 떨어졌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바컨은 2019년 회고록 'Eyes in the Wind'에 “내 세계가 이미 무너졌는데 두 번째 타격까지 어떻게 버텨낼지 막막했다”고 썼다.
‘두 번째 타격’은 쓰나미의 시작일 뿐이었다. ‘오바마 케어’를 집요하게 공격해온 트럼프는 집권 직후 대규모 감세-(의료)복지예산 삭감을 단행했다. 교수 아내의 꽤 근사한 가족 보험으로도 그는 치료-간병 비용을 댈 수 없었고 보험사는 24시간 산소호흡기 비용조차 지급을 거부했다. 그(와 가족)에겐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라 ‘죽느냐 파산하느냐’의 문제였다.
부자 감세를 골자로 한 트럼프 정부의 '세금 감면 및 일자리 법안(TCJA)’ 의회 표결을 앞둔 2017년 12월 초, 이미 지팡이와 휠체어에 의지하던 바컨은 자신이 속한 시민정치운동단체 ‘대중민주주의센터(CPD)’ 활동가들과 함께 워싱턴D.C로 향했다. 그(들)는 공화당 의원들을 찾아가 면담을 요구하고 의회 로비에서 농성을 벌이며 법안 거부를 호소하다 생애 처음 경찰에 체포-연행됐다.
12월 7일, 집으로 돌아오던 그는 비행기에 동승한 애리조나주 상원의원 제프 플레이크(Jeff Flake, 공화, 현 튀르키예 대사)에게 즉석 기내 면담을 요청, 감세 법안이 자기와 같은 환자(가족)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호소했다. “소신과 원칙대로 투표해서 내 아이와 당신 손자들에게 멋진 유산을 남겨 달라.(…) 영웅이 되어 달라.” 플레이크는 오바마케어에 맥이 닿아 있는 의료개혁 공약을 내건 바 있는 고(故) 존 매케인의 보좌관 출신이었다. 둘의 짧은 대화는 동료 활동가(Liz Jaff)가 휴대폰으로 촬영해 올린 유튜브 영상과 SNS를 통해 널리 퍼졌다. 무명 활동가 바컨에게 CNN 등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아디 바컨은 유대인 이민자 부부의 아들로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태어나 동부와 서부 캘리포니아를 오가며 성장했다. 역사학자(교수)였던 부모는 세속주의 유대교 신자였고, 바컨은 어려서부터 유대 구전 율법서에 기록된 ‘티쿤 오람(Tikkun olam, 세상의 치유)’, 즉 사회정의와 책임의식을 멋진 가치로 여겼다고 한다. 중등 시절부터 절친이었다는 네이트 스미스(Nate Smith)는 바컨의 정의감을 ‘뼈다귀를 문 개의 집념’에 비유했다. “우리가 처음 만난 14살 때도 그랬지만, 아마도 바컨은 5살 무렵에도 똑같았을 것이다.”
바컨은 고교시절인 2000년 캘리포니아 동성혼 법제화 저지 주민투표(March 2000 referendum) 당시 혼자서 법안 부결 캠페인에 뛰어들어 스미스를 동참하도록 설득했고, 학부 시절 교내신문 ‘스펙테이터(Spectator)’ 기자로 활동하며 대학 기념품들이 저개발국 노동 착취로 제작된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T셔츠 등 불매-시정 캠페인을 조직하기도 했다. 당시 학보 편집장이 영문학과생 킹이었다.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변호사 꿈을 꾸기 시작했다는 그는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해서도 이민자 법률 상담과 저개발국 HIV/AIDS 백신 무상-저가 공급 캠페인 등에 가담했고 뉴욕 연방지법 판사(Shira Scheindin) 서기 시절엔 슈나이딘의 인종차별적 불심검문(stop and frisk) 금지 판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졸업 직후인 2011년 ‘월스트리트 점거운동(Occupy)’에 동참하며 그는 전업 정치활동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세상을 바꾸려면 정치를 바꿔야 하고, 긴 싸움을 위해선 조직이 필요하다고 여겨 시민 정치운동단체 CDP에 합류했다. 고교시절 토론-연설-연극 동아리와 로스쿨 클리닉에서 단련한 유려한 입담과 매너는 정치인과 공무원을 상대할 때도 유효했다. 그는 공무원과 시의회를 설득해 2013년 5월 뉴욕시가 노동자 유급 병가 법안을 제정하게 하는 데 기여했고, 이듬해 워싱턴주 시애틀 시의회가 시간당 최저임금을 당시 9.19달러에서 2021년 15달러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임금격차-양극화 해소를 위한 파격적인 행정 실험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그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미 연방기관 중 가장 비밀스럽고 권위적인 조직으로 손꼽히는 연방준비제도(Fed, 줄여서 연준) 이사회에 사실상 최초로 외부 충격을 가한 거였다. Fed는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은행(FRB)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등을 통해 통화-금리 등 미국과 세계 거시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백악관의 간섭조차 받지 않는 막강한 권력기관. 그는 Fed의 판단과 결정이 노동자-서민이 아닌 금융기관과 기업의 편에 지나치게 기울어 인플레이션을 핑계로 과도한 금리 인상을 거듭함으로써 실업 등 고용시장에 가혹한 부담을 안기고 있다며, 2012년부터 CDP 지도부를 설득했다. 연준 창설 이래 이사회 의장을 비롯 12개 지역 연준 의장 전원이 백인이었던 점, 그들 다수가 결코 이해중립적일 수 없는 금융가 출신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어렵사리 지도부를 설득한 그는 각계 전문가들을 만나 전략을 수립한 뒤 2014년 8월 와이오밍주 캔자스시티 잭슨홀에서 열린 연준 연례 회의장에 ‘Fed Up’이란 문구를 적은 셔츠를 입고 노동자들과 함께 연준 민주화-투명화를 요구하며 진입, 세계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당시 연준 의장 재닛 옐런을 비롯한 주요 이사진을 만나 개혁 방안을 전달했다. 2016년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금융인 출신 연준 이사회 퇴출 등 ‘Fed Up’ 권고안 상당수를 공약으로 채택했고, 2017년 연준 역사상 첫 흑인 지역이사회 의장(Raphael Bostic)이 탄생했다.
그를 인터뷰한 허핑턴포스트 기자는 그에게서 "공부벌레들(wonkish) 특유의 이상주의와 제도적 낙관주의를 느꼈다"고 썼다. 순진하리만치 원칙과 정의를 믿으며 ‘교과서’대로 밀어붙이는 용기와 결단력, 좌파 진영이 대체로 냉소하는 제도권 개혁에 대한 기대. 병이 발병한 게 그 무렵으로, 그가 의욕과 희망으로 한껏 부풀어있던 때였다.
제프 플레이크와의 비행기 면담 직후인 2018년 4월, 그는 일종의 ‘슈퍼팩’(Super PAC, 정치자금 모금을 통한 정치행동위원회’)인 ‘Be a Hero 펀드'를 설립했다. 진보 의제에 동조하는 정치인을 후원하고 “위험한 목소리들”을 배제하기 위한 정치 로비 활동. 그는 동창 및 지인들이 ‘GoFundMe’ 모금으로 마련해준 휠체어용 밴을 타고 그해 여름 미국 22개 주를 돌며 모금 캠페인을 벌였다.
성폭력 의혹 등으로 논란을 빚은 보수 법조인 브렛 캐버노의 2018년 연방대법관 인준 표결 당시, 낙태권 옹호론자인 메인주 상원의원 수전 콜린스(Susan Collins, 공화)가 사실상 캐스팅보터였다. 히어로펀드는 그에게 반대표를 던져 달라고 설득했지만, 콜린스는 초기 입장을 번복하고 인준에 동의했다. 히어로펀드는 2020년 상원선거에서 콜린스의 상대 후보(Sara Gideon)에게 약 400만 달러의 선거자금을 지원, 잔뜩 긴장한 콜린스가 상대 후보를 ‘뇌물수수 미수’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2020년 대선 민주당 예비선거 핵심 의제가 전국민 건강보험 즉 ‘메이케어 포올(Medicare For All)’이었다. 줌(zoom)으로 대화한 바이든을 뺀 나머지 민주당 대선 후보 전원이 바컨의 요청에 응해 그를 찾아와 만났다. 현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 현 교통부장관인 피트 부티지지가 모두 각자 버전의 ‘메디케어 포 올(Medicare For All)을 공약으로 내건 터였고, 민주당 좌파의 상징 버니 샌더스의 공약은 영국-캐나다식 무료 보건서비스(single payer)였다. 암으로 아버지를 여읜 직후였던 당시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 부티지지는 “장기요양 측면에서 최선의 선택은 재산을 모두 써버린 뒤 메디케이드(Medicaid, 저소득층 의료보험) 수급 자격을 얻는 것”이라던 사회복지사의 조언을 들려주며 “이게 정말 미국서 벌어지는 일인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바컨은 눈동자로 키보드를 조작해 텍스트를 목소리로 변환하는 장치로 그들과 대화했다.
보험사와의 ‘싸움’도 바컨(과 킹)의 일상이었다. 보험사는 FDA가 승인한 신약은 물론이고 호흡근 마비로 24시간 써야 하는 인공호흡기에 대해서도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그는 동창-지인들과 함께 집단소송까지 벌여 승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 9,000달러 가량을 의료비로 지출하고 있다고, 그는 2019년 의회 청문회에서 말했다. 미국 보험사들의 횡포는 버락 오바마의 2009년 '오바마케어' 의회 연설에 잘 드러나 있다. 바컨은 “보험사들의 방식이 늘 그런 식이다. 거부하고 또 거부하고 늑장 부리며 환자(가족)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방식.” 미국 루게릭병 환자 가운데 그처럼 인공호흡기를 누리는 경우는 20%에 불과하다. 그 정도 중증이 되면 24시간 간병인이 필요하지만 메디케어 대상자거나 별도의 비싼 보험 가입자가 아닌 한 파산을 각오해야 한다.
전업 활동가로 살겠다던 바컨을 응원하며 레베카 솔닛의 에세이 ‘어둠 속의 희망’의 한 구절- “희망은 소파에 파묻히듯 앉아 행운을 기대하며 쥐고 있는 복권이 아니라, 위급한 상황에서 문을 부수기 위해 움켜 쥔 도끼 같은 것”-을 떠올렸다던 킹은 학교 일을 해내며, 간병인과 함께 바컨을 돌보고, 어린 남매를 키우고, 숱한 절망감과 모욕감을 견디며 보험사와도 싸워야 했다.
바컨은 대개의 싸움에서 패배했다. 트럼프 감세 법안은 통과됐고, 그(의 펀드)가 지지한 후보들도, 애초에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긴 했지만, 대부분 낙선했다. 콜린스 역시 전 선거에 비해 득표율이 18%나 줄어들었어도 5선에 성공했다. 그는 병과의 싸움에서도 줄곧 수세였고 결국 패배했다. 하지만 무엇도 포기하지 않았다. 2021년 좌파 매체 DSA 인터뷰에서 그는 “무너져가는 민주주의와 만연한 인종차별, 망가진 의료시스템 등과 싸우면서 나는 불의들이 서로 연결돼 있듯이 자유 또한 모두 연결돼 있다는 점을 배웠다”고 말했다. 불의가 존재하는 한 자유로 엮인 저항도 희망도 개인의 차원을 넘어 이어질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의 삶은 2021년 다큐멘터리 ‘Not Going Quietly’로 만들어졌다.
결혼 8주년이던 지난 9월, 루즈벨트연구소가 수여한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상(Freedom from Want Award)’ 시상식 수락연설에서 그는 ”매 순간이 모험이었다. 내 완벽한 두 천사(자녀)와 함께 지금 여기에 있는 것도 새로운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는 놀라운 증거”이고 “끈질기게 싸우다 보면 언젠가 아름다운 보상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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