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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의 혁신, 김기현의 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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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서 인상적인 성과를 냈다. 반도체 동맹도 자유민주주의 연대도 아니다. 네덜란드로 떠난 사이 국민의힘 혁신의 가장 큰 짐을 덜었다. 장제원 의원과 김기현 대표가 용퇴하면서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참패에 따른 민심의 요구에 뒤늦게 답하기 시작했다. 잦은 순방으로 비판에 시달렸는데 순방기간 변화의 물꼬를 튼 건 역설적이다.
윤 대통령이 출국하자 윤핵관이 불출마를 선언하더니 당대표는 귀국을 앞두고 물러났다. “민주화 이후 이런 식의 퇴진은 본 적이 없다”(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고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리고는 보름 만에 ‘한동훈 비대위’로 간판을 바꿔 단다. ‘윤심(尹心)’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맞물려갔다.
한동훈 전 장관의 말대로 여당은 ‘9회말 2아웃 2스트라이크’에 몰렸다. 삼진아웃으로 허무하게 패하지 않으려면 웬만한 공에는 배트를 휘둘러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왜 이렇게 됐는지에 대한 자기반성은 빠졌다. 관중은 감독을 향해 야유를 퍼붓는데 선수의 능력 부족만 탓하다간 다음 경기에도 승리를 기약하기 어렵다.
앞서 등판한 김기현 지도부는 경고 사인을 무시하고 완투를 고집하다 사달이 났다. 교체 타이밍이 지났는데도 “힘이 빠진 적 없다”며 인요한 혁신위를 누르는데 급급했다. 윤심을 업고 마운드에 올랐지만 윤심을 읽지 못해 강판 당했다. 남은 울산 지역구는 끝내 챙길 셈이다.
이번에도 친윤계는 한동훈 카드를 앞장서 꺼냈다. 여권의 ‘미래 권력’ 외에는 돌파구가 없었다. 보수진영에서 보기 드문 팬덤까지 갖췄다. 3040세대도 꼰대로 불리는데 50세인 그가 세대교체의 아이콘으로 비칠 정도로 기성 정치권은 늙고 낡았다.
한 전 장관의 존재 이유는 ‘현재 권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혁신을 외치면서 ‘수직적’ 당정관계의 치욕을 감수하는 건 난센스다. 지지율 30%대에 허덕이는데도 윤 대통령은 “빚진 게 없다”고 당당하다. 예스맨 참모들은 쓴소리를 주저하고 있다. “맹종하지 않겠다”는 독백으로는 충분치 않다. 감미로운 클래식이 아니라 귓전을 때릴 행진곡이 절실하다. 불협화음이면 어떤가. ‘대통령의 아바타’라는 비아냥에 비할 바가 아니다.
“1시간 만나는데 50분 넘게 혼자 얘기하더라.” 정부 위원회 소속 전문가의 전언이다. 윤 대통령에게 조언하러 갔다가 한참 잔소리를 듣고 왔다고 한다. 대기업 총수들을 병풍처럼 세워놓고 떡볶이 먹방을 찍는 건 구태의연하다. 장관급 인사를 줄줄이 바꿨지만 울림은 없고 총선용 개각, 측근 돌려 막기라는 꼬리표만 달렸다. 검사 출신 국민권익위원장이 왜 하루 아침에 방송통신위원장을 맡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같은 행태가 반복된다면 이제 여론의 뭇매는 윤 대통령이 아니라 한 전 장관을 향할 것이다.
“총선 승리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겠다”. 3월 김기현 당대표의 수락연설이다. 이후 헌신의 약속은 보신으로 변질됐다. 여당은 안이한 처신으로 혁신의 골든타임을 흘려 보냈다. 아직 대통령 임기 초반인데 곳곳에서 피로감을 느끼는 건 정상적 상황이 아니다.
바통을 넘겨받은 한 전 장관은 용기와 헌신, 상식을 강조했다.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스포트라이트를 만끽하던 시간은 지났다. 그의 헌신이 성과를 거둘지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혁신 여부에 달렸다. 해가 바뀌면 총선은 고작 100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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