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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차의 조건도 이젠 음악… 다양해지는 음악 감상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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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드라마 '소년시대'에서 주인공 정태(임시완)가 제일 슬퍼 보였던 때는 일진들에게 구타당할 때가 아니었다. 연정을 품은 상대인 소희가 정태의 연적인 경태에게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워크맨'을 사 주고 싶다며 정태가 열심히 번 돈을 가져갔을 때다. 정태는 돈도, 사랑도 뺏기고, 청소년들의 '꿈의 기기'인 워크맨까지 경태의 손에 쥐여 주며 자존심까지 밟혀버렸다.
청춘 영화엔 유독 헤드폰이나 이어폰, 워크맨이 자주 등장한다. 영화 '라붐'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여자 친구에게 헤드폰을 씌워 주며 사랑을 전한다. 영화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의 주인공은 우주전쟁 중에도 소니 워크맨에 넣어둔 음악 녹음 테이프를 보물처럼 여기고 찾아 들으며 안정을 찾는다. 이어폰이나 헤드폰은 '당신의 말은 듣고 싶지 않다'는 반항의 도구이자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방패막이 되어 주는 셈이다.
음악은 이동할 때 더 찾게 된다. 그 때문일까. 최근 유명 자동차 회사마다 카오디오에 대한 투자가 비약적이다.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박람회 ‘CES 2024’에서 발표된 신차들의 사양이 흥미롭다. 각 브랜드마다 주요 차량의 카오디오에 하이엔드 오디오를 아예 기본 세팅으로 넣어서 발표했다. 한때 아우디나 볼보 등은 보스나 뱅앤올룹슨 등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의 엔지니어를 고용하며 순정 오디오 품질에 수년간 투자했다. 몸은 다음 행선지로 향하고 있지만 교통 체증 시간만큼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적당히 외부와 차단된 공간이니 자동차 내 음악 감상은 이점이 크다. 스트리밍 사이트의 음원 퀄리티도 향상되고 있으니 이를 뒷받침해 주는 차량용 오디오가 있다면 완벽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최고 차량에서만 좋은 음질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디오 전문가들은 '튜닝 프로젝트'에 매우 적극적인 현대자동차, 특히 제네시스 쿠페에 탑재된 오디오 사양이 벤츠와 하이엔드 오디오 조합보다 낫다는 의견이다.
모든 사람이 항상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니 음악 감상을 위한 도구는 결국 이어폰, 헤드폰과 타협해야 한다. 요즘은 음악 감상 아이템을 패션의 일부로 보기도 하는데, 오디오 전문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비슷한 사양의 헤드폰보다 가격이 비싼 편이다. 외형만 힙하다고 비싼 것은 아니다. 스테레오, 서라운드 시스템의 시대를 지나, 천장의 반사 음향까지 구현해 내는 요즘 기술은 마치 좋은 홀 안에서 연주를 듣는 듯한 3차원 이머시브(3D 몰입형) 사운드 시스템을 상용화하고 있다. 이를 구현하는 스피커, 헤드폰 개발도 이어지면서 감상 도구의 선택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아이리버의 고급 음향기기 라인 아스텔앤컨에서 빈티지 듀얼 진공관 앰프를 탑재한 디지털 오디오 플레이어를 출시했다.
한때 저급한 음질의 MP3 플레이어와 고음질 음원(MQS)을 재생할 수 있는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의 휴대용 기기가 공존했던 때가 있었다. 만족스러운 음질의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 LP시대로 돌아갈 수도 없고, 고가의 디지털 음원과 값비싼 디지털 음원재생기까지 꽤 큰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관련 기기들이 사회경제적 지위를 과시하는 '위치재'의 특성을 지닌 것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디지털 음원이 지금의 안정적 포맷과 보편적 채널을 갖기 위해 지나온 과도기였는데 체감상 그 시기가 꽤 길었다. 좋은 음악을 곁에 두고 부담 없이 다양하게 들을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어 새삼 감사하다. 패션을 위해서든, 반항이나 일탈을 위해서든, 음악이 당신 인생에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충분히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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