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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단돈 1500원, 3분 광고비 560억 펑펑... '테무'가 미국을 홀린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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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어느 날 지인의 차를 타고 가던 길이었다. 앞좌석 양옆 창에 붙어 있던 차량용 햇빛가리개를 가리키며 "이걸 한국에서 사 왔어야 하는데 미국에서 사려니까 3배 넘게 비싸더라"라고 하자 그가 의아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어, 테무(Temu) 안 써보셨어요? 테무 들어가서 한번 찾아보세요. 웬만한 물건은 다 있어요."
곧장 테무 애플리케이션(앱)을 켜봤다. 언젠가 앱을 받아놓고는 한 번도 주문해본 적은 없었는데, 테무는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며 돌림판을 띄워 보여줬다. 판을 돌려 당첨되면 할인 쿠폰을 준다고 했다. 한 번 돌려보니 '한 번 더 기회'가 나왔고, 다시 돌리자 '100% 할인' 쿠폰이 나왔다. 제품 하나를 공짜로 주겠다는 것이었다.
뭔가 대박이 난 것 같다는 기쁨에 취한 것도 잠시. '30분 안에 주문하지 않으면 쿠폰이 만료된다'는 문구가 떴다. 마음이 급해져 앱을 살펴보는데 물건 대부분의 가격이 마트나 아마존에서 보던 것보다 최고 50% 이상 저렴했다. 아마존에서 15달러가 넘었던 차량용 햇빛가리개는 5달러 안팎밖에 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이 없나 더 보자' 하고 둘러보다가 저렴한 가격에 혹해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까지 서둘러 담아 결제를 마쳤다. 테무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억만장자처럼 쇼핑하라.' 2022년 9월 미국에 상륙하고, 최근에는 한국 등으로도 영역을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테무의 핵심 슬로건이다.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핀둬둬홀딩스의 자회사인 테무는 생필품부터 의류, 전자기기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모든 물건을 '초저가'에 판매하는 쇼핑몰이다. 무선 이어폰을 불과 4달러대에, 운동화 한 켤레를 8달러에 판매함으로써 평범한 이들도 돈 걱정 없이 쇼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우리 플랫폼에서는 매일이 '블랙프라이데이'(북미 전역 소매업체들이 연중 가장 큰 폭의 할인을 하는 11월 마지막 금요일)"라고 테무는 말한다.
테무는 미국 진출 6개월 만인 지난해 3월 월활성이용자수(MAU·최소 월 1회 이상 방문한 이용자 수) 100만 명을 돌파했다. 저가 의류를 주로 판매하는 중국 쇼핑몰 '쉬인'이 같은 MAU 달성까지 2년이 걸렸던 데 비하면 엄청난 속도다. 시장조사업체 센서타워는 테무의 지난 1월 기준 MAU를 5,140만 명으로 추산했다. 미국 전자상거래 시장 부동의 1위인 아마존은 6,700만 명이었다. 2023년 1월에만 해도 6,000만 명에 가까웠던 둘의 격차가 1년 새 1,500만여 명으로 좁혀진 것이다.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업체들은 테무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테무처럼 짧은 기간 안에 미국인들의 삶에 침투한 기업은 전무하다는 점에서 테무의 성장 비결은 미국에서도 연구 대상이다. 테무는 어떻게 미국을 사로잡았나. 그 인기는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테무의 성장 비결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이른바 '광고 물량 공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테무의 성장을 조명하는 기사에서 이런 진단을 내놨다. "인터넷을 쓸 줄 아는 사람 중에 테무 광고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치를 보면 이는 과장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1억2,000만여 명이 시청한 지난달 슈퍼볼(미국프로풋볼 NFL 결승전)에는 30초짜리 테무 광고가 6차례나 노출됐다. 슈퍼볼은 세계에서 광고 단가가 가장 비싸며, 통상 한 편을 내보내는 데 700만 달러(약 94억 원) 안팎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6편을 내보냈다면 4,200만 달러(약 565억 원)를 썼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테무가 지난 한 해 광고비로 지출한 비용은 약 17억 달러(약 2조3,000억 원)로 추정된다. 올해는 그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30억 달러(약 4조 원)를 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경쟁사들이 홍보 효과가 큰 광고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테무보다 많은 돈을 써야 한다. 이를 아는 테무는 막대한 광고비를 퍼붓는 방식으로 다른 업체들의 홍보 기회를 차단, 경쟁사들을 서서히 '고사'시키고 있다. 온라인 광고비 추적 업체인 굽타미디어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1,000명에게 도달하는 페이스북의 광고 가격은 전년 대비 24% 비싸졌는데, 테무가 이 같은 광고비 인플레이션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중고의류 등을 거래하는 미국 온라인 장터 '엣시(Etsy)'의 조시 실버맨 최고경영자(CEO)는 "테무가 혼자서 광고 비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WSJ에 말했다.
광고 등을 통해 일단 테무 플랫폼으로 유입되면 유혹을 뿌리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1달러대 휴대용 가습기, 2달러짜리 양말 다섯 켤레 세트, 10달러대 순면 이불 등 미국 물가에 비해 극단적으로 싼 제품들이 '한정 판매'라는 꼬리표를 달고 구매를 부추기는 탓이다.
테무의 강점은 비단 싸다는 데만 있지 않다. 미국의 1,000원숍이라 불리는 '달러제너럴'이나 '달러트리' 등도 테무와 비슷한 가격대의 제품들을 팔지만 디자인이 단조롭거나 조악한 것도 있다. 반면 테무의 제품들은 귀엽고 예쁜 게 많다. 웬디 울로슨 미국 럿거스대 교수는 "테무는 참신한 것을 향한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값싼 물건을 넘겨준다"며 "자극적인 쇼핑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에 테무의 제품이 기대만큼 좋지 않더라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온라인 매체 복스에 밝혔다.
여기에 테무는 할인 쿠폰을 퍼주다시피 하고, 1달러짜리 물건 하나만 구입해도 집까지 무료로 배송해준다. 배송 지연에 따른 보상과 무조건적인 무료 반품도 지원한다. 할인쿠폰을 적용하면 장바구니 속 다른 제품들의 가격이 적용 전보다 조금씩 비싸지지만, 이 같은 사실을 아는 이용자는 많지 않다. 모든 주문이 중국에서 직배송되는 탓에 배송 기간이 평균 1주일 이상 소요됨에도 대부분은 이를 불편해 하지 않는다. WSJ는 "미국 소비자들은 제품 값이 싸다면 긴 배송 기간쯤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을 테무가 증명했다"고 전했다.
현재 테무는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문 건당 평균 7달러의 손실이 생긴다고 한다.
이 같은 출혈을 감수하는 이유는 점유율 확보를 위해서다. 관련 업계에서는 테무가 미국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아마존을 누르고 1위로 오르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수익화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무료배송 같은 혜택을 폐지하고, 평균 제품 단가를 올리고, 판매자에게 받는 수수료율을 높이는 등의 방식으로 그간의 손해를 메울 것이라는 얘기다.
다만 테무가 목표한 대로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가장 큰 위협 요소는 미국 정치권의 제재다. 최근 연방 하원을 통과해 상원으로 넘겨진 이른바 '숏폼 퇴출법'이 최종 통과될 경우, 다음 타깃은 테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의회가 틱톡을 퇴출시키려는 것은 틱톡이 미국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중국 당국에 넘길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인데, 테무 역시 그런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의원들은 테무가 미국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관세는 전혀 내지 않는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미국 과세 당국은 800달러 이하 국제 우편물에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데, 테무가 이를 악용해 미국 내 물류센터를 두지 않고 중국에서 바로 배송하는 방식으로 관세를 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테무가 판매하는 상품 중 일부가 중국 신장위구르인들의 강제노동 산물이므로 판매 금지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아마존 등 기존 업체들의 반격도 변수다. 아마존은 아직까지 테무로 인한 매출 타격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입지가 위태롭다고 판단될 땐 출혈 경쟁을 불사하는 등 대응에 나설 공산이 크다. 앞서 아마존은 테무와 쉬인이 부상하자 20달러 미만 의류에 한해 판매자에게 부과하는 수수료를 낮췄다.
규제 논의나 경쟁이 본격화하기 전에 테무 스스로 무너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블룸버그통신은 테무의 올 1월 매출이 전년 대비 805%나 증가했으나, 전월(2023년 12월)보다는 12.5% 감소했다며 올해 성장세가 둔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테무의 MAU 역시 지난해 말보다는 감소한 상태다. 복스는 "중국 직송 온라인 소매업체 '위시'도 한때 주목을 받았으나 금방 인기가 시들해졌다"며 "오해 소지가 상당한 제품 사진과 설명, 불량·위조품 판매 등 각종 논란으로 소비자 불신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테무를 둘러싸고도 비슷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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