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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배우' 김재철 "'파묘' 최민식 연기에 대사마저 잊어" [인터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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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영화 '파묘'를 안 본 게 이상할 정도다. 개봉한지 46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는 '파묘'는 적수가 없다. 누적 관객 수는 1,133만 5,762명이다.
믿고 보는 배우 최민식과 유해진, MZ무당을 연기하며 소름 돋는 연기력을 보여준 김고은과 이도현이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면, 극 초반부 관객의 몰입을 도운 장손 박지용 역의 배우 김재철이다. 그는 정확하게 계산된 연기와 특유의 분위기로 오컬트 미스터리 장르의 매력을 끌어올렸다.
이번 작품을 통해 김재철을 처음 접한 이들도 있겠지만, 사실 그는 지난 2001년 이병헌 주연의 '번지점프를 하다'를 통해 데뷔했다. 이후 영화 '마스터' '공조' '조작된 도시' '백두산'에서 단역으로 얼굴을 비췄고 '인질'의 조연을 거쳐 '파묘'의 박지용 역을 맡으며 그간의 연기 내공을 폭발시켰다.
안방극장에서도 활약해왔다. 드라마 '하이에나'에서 케빈 정 역을 맡아 김혜수와 호흡을 맞췄고 '허쉬' '연모' '킬힐' '불행을 사는 여자' '스틸러 : 일곱 개의 조선통보' 등에 출연하며 시청자들에 눈도장을 찍었다.
긴 시간 연기를 해왔지만 대중에 '김재철'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킬 기회는 많이 없었다.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고, 꾸준히 한 길을 걸어온 그이지만 슬럼프도 종종 찾아왔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달려온 데는 아내의 역할도 컸다. 아내는 단 한 번도 그에게 "다른 일을 찾아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가족의 굳건한 믿음과 지지 덕에 김재철은 '파묘'를 만나 원 없이 연기를 펼치게 됐다.
'천만 배우'에 등극한 김재철을 만나 그간 밝히지 않았던 인생 이야기와 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봤다.
장발·이국적 외모를 자랑하는 김재철
"'파묘' 끝나고 1년 동안 육아만 했어요. 작품이 잡혀있는 게 없었고 아내의 육아휴직도 끝나서 '내가 해보겠다' 했죠. 작품 들어가면 그때 어찌 하더라도 일단 제가 했는데 계속 (기회가) 안 생기더라고요. '파묘' 개봉할 때까지 그렇게 생활한 거고 이참에 머리도 한번 길러볼까 했죠. 생각보다 (장발에 대한) 반응이 나쁘지 않네요. 하하."
흥행의 기쁨
"가족들은 제가 붕 뜰까 봐 (칭찬을) 자제하는 편이예요. 말없이 주변 피드백을 캡처해서 보내주고 그래요. 친구들 단톡방에 점점 톡 수가 많아지더라고요. 동창 방도 있고 운동하는 친구들 방도 있는데 '재철이 대박이더라. 조만간 못 볼 거 같다' 농담도 하고, 저는 '그럴 리 없다' 얘기하고 그래요. 너무 고맙죠. 길 가다 알아보는 사람이 있냐고요? 제가 평상시에 트레이닝복에 모자 쓰고 다녀서 아무도 못 알아보시던데요. 달리기랑 걷는 걸 좋아해요."
'파묘' 배우들과의 돈독한 관계
"중간에 민식 선배가 '올드보이' 20주년 행사를 해서 초대해 주셨어요. 가서 밥도 얻어먹고, '파묘' 무속을 도와주신 고춘자 선생님 집에도 초대받아서 만나기도 했고요.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한 번씩 볼 일이 생기니 좋아요. 배우들 사이가 되게 돈독해요. 결과가 좋으니까 모두 행복해하고 감사해하죠. 이렇게까지 성원이 클 줄 몰라서 놀라울 따름입니다. 숫자를 잘못 본 게 아니냐는 농담도 했어요."
놀라웠던 대본
"최민식 선배가 얘기하셨는데 대본에 굳은살이 보였어요. 아름다운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감독님이 고민을 거듭한 걸 아니까 믿고 가게 되더라고요. 전체를 다 알고 바라보고 있고, 설계를 디테일하고 촘촘하게 하는 분인 걸 아니까요. 감독님이 연츨 재능도 뛰어나지만 선배들도 믿고 따라가는 게 보여서 멋있었어요. 믿고 맡겨주는 선배님도 멋지고 그렇게 만드는 감독님도 멋지다고 생각해요."
감독이 김재철을 캐스팅한 이유
"저는 중후반부엔 안 나오니까 뒷부분까지 생각은 안 했어요. 친일파라는 소재를 숨기는 듯한 에너지 정도였죠. '무덤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하고 가보는 거니까 감독님이랑 얘기할 때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부성애 같은 마음을 크게 가져갔어요. 악인처럼 보이지는 않아야 하고 너무 아버지 같은 느낌도 안 되고 중간으로 가되 그래도 아이를 살리려고 하는 것에 포커스를 뒀어요. 그래서 저를 캐스팅했다고 들었고요."
적지 않았던 부담감
"상업영화에서 가장 큰 롤이긴 했고 부담감도 컸고 신인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했어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도 됐고요. 박지용이 초반에 중요한 인물인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대본을 받았어요. 겁도 나고 설레기도 하고 왔다갔다 하는 마음에서 갈피를 못 잡을 때 감독님을 만나서 솔직하게 털어놨죠. 그럼에도 제가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용기를 심어줬고 전 속으로 큰일 났다 싶었어요. 저는 좀 늦게 캐스팅이 됐는데 잘해내야 하는 부분, 어려운 부분들을 잘 체크해서 잡아준 거 같아서 감독님께 감사해요."
고마웠던 감독과 배우들
"믿고 캐스팅해준 것도 고마운데 배우가 해야 하는 부분도 고민해 주고 없는 시간을 쪼개서 여러모로 도와주셨어요. 빙의돼서 하는 장면도 어찌 해야 할지 몰라서 몇십 개씩 해서 보냈는데 피드백을 주시고, 그때 초반 촬영을 진행 중이었는데 새벽까지 감독님도 제게 녹음해서 보내주고 그렇게 같이 만들어 가준 느낌이 있어요. 시작부터 끝을 함께 해줬죠. 또한 제가 기죽지 않게 하려고 최민식 선배나 유해진 선배가 장난도 치고 예뻐해 주셨고요. 고은씨나 도현씨도 저를 존중해주고 테이크를 더 가더라도 연기를 너무 잘해줬습니다."
재도전한 교포 역할
"'하이에나' 때도 교포 역을 했는데 사실 제 입장에선 교포인 척 하는 거 같고 영어도 어색한 거 같고 그랬어요. 혜수 선배랑 나이 차가 많이 나는데 극에선 제가 더 나이가 많은 거처럼 나와서 자연스러웠다길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죠. '파묘' 역시 시사회 때까지는 '관객들이 박지용을 좋게 봐줄까' 그런 마음이었는데 흥행도 잘되고 연기가 좋았다고 하니까 다행인 거 같아요. 현장에서 감독님이 '자꾸 천호동이 나오는데 LA로 가야 한다'고 얘기하시기도 했어요. 제가 천호동 출신이거든요. 하하. 영어 대사나 돈이 많은 부유한 느낌의 연기는 부담스럽긴 했어요. 뭔가 일반적인 사람과는 달라야 할 거 같잖아요."
최민식에 놀랐던 순간
"민식 선배가 무덤에서 질문하는 신이 있어요. '이 무덤은 누가 여기에 했냐' 하고 걸어오는데 그 순간 너무 김상덕 같았죠. 제가 넋 놓고 보는데 대사가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장난치다가 같이 촬영에 들어왔는데 순간적으로 (최민식 선배가) 다른 사람이 된 느낌을 받았어요. 놀라서 대사도 생각이 안 나고, 감독님이 '재철씨 대사 생각 안 나?' 하더라고요. 그게 아니라 마가 씌인 거처럼 그냥 정지가 됐어요. 선배님이 '괜찮냐? 물 마셔' 하셔서 정신을 차리고 했죠. 순식간에 옷을 바꿔 입는 걸 생생하게 바라본 느낌이에요. '몇 번 그냥 가자' 하시고 마음을 다잡게 도와주섰어요. 그렇게 가다가 점점 박지용이 된 거에요."
믿기지 않는 눈동자 연기
"제가 모니터를 보면서 신기했던 건, (최민식 선배가) 전화받고 '태워라. 화장해라' 하고 끊고 정면을 바라보면 '컷'인 상황이었어요. 얼굴 클로즈업하고 모니터를 보는데 죽여준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감독님이 '이거 킵하고 뭐 하나만 해주시라' 얘길 하고 선배가 '오케이' 하더라고요. 뭐가 바뀌나 했는데 검은 눈동자가 살짝 움직이더라고요. 시선을 바꾸는 건 아니고 검은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팍 움직이는데 감독님이 '이거지' 하고 외쳤어요. '저건 흉내도 못 내겠다. 눈동자까지 연기하는 건가' 싶어서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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