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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정치’ 넘어 ’공정 보상’ 추구로 세 확장...정체성 세워가는 MZ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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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노동조합이 진화하고 있다. 삼성그룹에서는 2030세대가 주축이 된 ‘초(超)기업 노조’가 출범했고, 네이버·카카오· 넥슨 등 7개 정보기술(IT)기업 노조는 ‘임금협상 연대’를 꾸렸다. 사비를 털어 서울 여의도 일대에서 ‘트럭시위’를 벌이거나, 법원으로부터 기성노조와의 ‘교섭권 분리’를 쟁취한 노조도 있다.
MZ노조가 ‘공정한 보상’에 거침없이 목소리를 내는 건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 MZ노조는 지금까지 ‘탈정치적이고 합리적이지만 얌전한 이미지'로 소비됐다. 8일 한국일보 취재에 응한 노사 관계 전문가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란 MZ세대는 ‘공정’이라는 가치가 훼손될 때 분노한다”며 “불공정한 기업 문화에 대한 불만 제기가 본격화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2030세대가 주축이 된 삼성그룹 ‘초기업 노조’의 핵심 요구도 ‘공정한 보상’이다. 초기업 노조는 지난 2월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삼성화재, 삼성디스플레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 등이 모여 출범한 '산업별노조' 성격의 대형 노조다. 초기업 노조 집행부는 계열사의 단체 교섭에 참여해 임금협상을 조율할 수 있기 때문에, ‘노사 관계에서 협상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초기업 노조 설립을 주도한 홍광흠(38) 위원장은 한국일보와 만나 “삼성의 임금은 계열사 실정이 반영되지 않고 삼성그룹 차원의 통제를 받아왔다”며 “그룹 통제에서 벗어나 공정한 보상을 받기 위해 초기업 노조를 만들었다”고 했다. “각사 임금 교섭이 예년과 같은 방식이라면 ‘초기업 노조’ 차원의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공정한 보상체계 확립’을 기치로 내건 초기업 노조는 설립 한 달 만에 조합원 규모 2만여 명을 확보했다. MZ노조의 ‘원조’ 격인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1만 명)보다 사이즈가 크다. 지난해 출범한 새로고침 협의회는 LG전자 사람중심 노조, 서울교통공사 올바른 노조 등 8개 노조가 모여 출범했다. 단, 초기업 노조가 아닌 개별기업 노조의 모임 성격이다.
홍 위원장도 ‘규모의 위력’을 실감한다고 했다. 그는 “개별 노조로 임금 교섭을 나섰을 때 사측 태도는 뜨뜻미지근했는데 초기업 노조를 결성한 뒤 노조 사무실과 타임오프(노조전임자 근로시간 면제)를 제공하는 등 사측 태도가 전향적으로 변했다”며 “조직 규모를 더 확장하겠다”고 했다.
‘공정한 보상’을 요구하고 나선 MZ노조는 삼성 초기업 노조뿐만이 아니다. LG에너지솔루션 MZ노조와 직원들은 지난 2월 사비를 모아 서울 여의도 일대에서 ‘트럭시위’를 벌였다. 트럭 전광판에는 “피와 땀에 부합하는 성과 체계를 공개하라”고 썼다. ‘주는 대로 받는’ 성과급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목표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이 타운홀미팅에 나서 “구성원이 납득할 성과급 기준을 마련하겠다” “임금 6%를 인상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경영진도 MZ노조의 기세에 긴장한 분위기다.
2030세대가 주축인 금호타이어 사무직노조는 지난해 12월 법원으로부터 민주노총 금호타이어 노조와의 ‘교섭권 분리’를 인정받았다. 김한엽(37) 위원장은 “사무직 노동자는 그동안 노조가 없어 사측이 일방적으로 근로조건을 통보했다”며 “사무직에만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를 적용하거나 연차 미사용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등 차별이 있었다”고 했다. 금호타이어 사무직노조의 성공을 시작으로 MZ노조의 교섭권 분리 요구가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생) 전통노조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개선하기 위해 붉은 띠를 두르고 강경 투쟁에 나섰다. MZ노조는 ‘달라진 시대, 노사관계도 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홍 위원장은 “기존 노조처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노사 협상 테이블에 나오라는 식의 ‘무지성 요구’는 하지 않는다”며 “정치색을 배제하고 조합원이 원하는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에 역량을 쏟을 것”이라고 했다.
MZ노조가 전통노조에 보이는 거부감엔 나름의 사정도 있다. MZ노조의 구성원 대다수는 사무직·연구직·개발직이다.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생산직 위주의 전통노조가 사무직 노동자를 대변하는 데 실패하면서 별도의 사무직 노조가 생겼다"며 “산업구조 변화로 기업 내 생산직 비중은 줄고 사무직이 늘어나는 상황도 사무직 노조가 목소리를 내고 나선 배경”이라고 했다.
예외도 있다. 2018년 설립된 네이버·카카오·넥슨 등 IT기업 노조 대다수는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에 가입했다. IT업계의 병폐로 꼽히던 크런치모드(야근과 밤샘을 반복하는 장시간 노동) 폐지를 주도하기도 했다. 오세윤(41) 민주노총 네이버 지회장은 “선배 세대 노조의 활동이 없었다면 지금 같은 환경에서 노조를 조직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MZ노조라는 명칭으로 노조를 세대로 구분하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단, IT기업에는 전통노조가 없었기 때문에 신생노조가 노노 갈등 없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는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의 관심사는 결국 ‘MZ노조의 지속 가능성’이다. MZ노조가 ‘공정한 보상’에만 집중할 경우 노조 유통기한이 짧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LG전자 사람중심노조 설립을 자문한 김경락 노무사(대상 노무법인)는 “MZ노조는 전통노조보다 이념적 동질성이나 응집력이 떨어진다”며 “MZ노조가 조합원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기업이 강경 대응에 나설 경우, 노조 내부 리더십이 흔들릴 경우 조합원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다”고 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MZ노조가 생존하려면 노사 협상에서 성과를 얻어내 조합원의 지지를 얻고,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서 대중적 공감대까지 얻어야 한다”고 했다. 박 연구위원은 “생산직 노조와 사무직 노조 간에 이해관계가 다른 측면이 분명히 있다”며 전통노조와 MZ노조의 ‘상생’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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