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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대 오른 하메네이… 갑작스런 2인자 사망에 정국 '안갯속'

입력
2024.05.20 17:3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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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메네이 유력 후계자' 라이시 대통령 사망
내부 권력 변화 앞당길까… 정국 혼란 불가피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2021년 6월 대통령에 당선된 후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테헤란=AP 연합뉴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2021년 6월 대통령에 당선된 후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테헤란=AP 연합뉴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갑작스런 유고로 이란 정국이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전망이다. 이란이 이스라엘과 '그림자 전쟁'을 치러온 만큼 중동 정세에 미칠 영향에도 전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권을 쥐고 있는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가자전쟁·히잡 시위·경제난 이어 혼란 가중

19일(현지시간) 외신을 종합하면, 최고 권력자 하메네이가 건재하는 한 2인자인 라이시 대통령의 부재로 인한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신정 일치의 이슬람공화국인 이란에서는 '신의 대리인'인 최고지도자가 권력의 정점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민단체 이란핵반대연합(UANI)의 제이슨 브로드스키 정책책임자는 "이란 대통령은 의사결정권자가 아니라 실행자"라며 "따라서 국가 정책의 근간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에 말했다.

다만 이란 정국에 미칠 파장은 불가피하다. 이란이 처한 안팎의 동시다발적 위기에 정치적 불안까지 더해지면서 혼란에 휩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란은 7개월여 계속되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발을 걸치고 있는 데다 미국의 제재로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다. 통화 가치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고, 물가 상승률은 30%에 육박한다. 2022년 '히잡 시위' 이후 집권 세력에 대한 불만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지난 3월 치러진 총선 투표율이 역대 최저(41%)를 기록했을 정도로 불신이 가득하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공식 확인된 20일 서울 용산구 주한이란이슬람공화국 대사관에 조기가 걸려 있다. 뉴스1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공식 확인된 20일 서울 용산구 주한이란이슬람공화국 대사관에 조기가 걸려 있다. 뉴스1

분쟁 전문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이란 분석가 알리 바에즈는 "내부적으로 심각한 정통성 위기에 처해있고, 역내에서 이스라엘, 미국과 맞서고 있는 이란에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이런 가운데 공석이 된 대통령직은 이란 헌법에 따라 모하마드 모크베르 수석 부통령이 일단 넘겨 받고, 50일 내로 대선을 치러야 한다.

하메네이 후계 구도 영향… "내부 권력 투쟁 촉발"

이는 내부 권력 변화를 앞당기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 특히 종신 권력인 최고지도자 승계를 둘러싼 내부 권력 다툼이 촉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라이시 대통령은 하메네이의 둘째 아들 모즈타바와 함께 하메네이 사후 권력을 이을 유력한 후보로 꼽혀왔다. 모즈타바가 최고지도자 자리를 승계할 경우 이란의 '종교 독재'는 '세습 독재'로 옷을 바꿔입게 된다. 이는 "많은 성직자들이 이란의 혁명 원칙에 어긋난다며 반대하고 있는 대목"이라고 영국 가디언은 지적했다.

모즈타바가 내부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이란혁명수비대(IRGC)에 의존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 경우 군사 정권으로 진전될 가능성도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이 과정에서 성직자와 군 세력 간 파워 싸움이 현실화할 수 있다.

이는 하메네이에게 위기이자 기회일 수 있다. TOI는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라이시 대통령을 잃은 이란 정권은 취약하고 무능해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하메네이가 순조롭게 정권을 이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어려운 시기에 안정을 되찾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앞줄) 이란 최고지도자가 지난달 10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에 대한 보복을 다짐하고 있다. 테헤란=AP 뉴시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앞줄) 이란 최고지도자가 지난달 10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에 대한 보복을 다짐하고 있다. 테헤란=AP 뉴시스


전쟁 장기화 속 중동 불안정성 키우나

'가자 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대될 위험이 여전히 상존하는 가운데 이번 사고는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NYT는 이란이 미국과 오만에서 고위급 간접 회담을 열어 역내 긴장 완화와 핵 프로그램 문제 등을 논의한 지 불과 며칠 안된 민감한 시기에 이번 사고가 일어났다고 짚었다.

서방과의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을 위한 협상 복귀 전망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사고 헬기에 동승했다 화를 당한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은 지난 6일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만난 바 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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