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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택일 강요하는 정치 무능 끝내야"... 통일 경험한 독일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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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소멸과 기후변화 등으로 구조적 위기가 닥쳐오고 있지만 5년 단임 정부는 갈수록 단기 성과에 치중해 장기 과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정권교체마다 전 정부를 부정하는 정치적 갈등으로 정책적 혼선도 가중됩니다. 한국일보는 창간 70주년을 맞아 이런 문제를 진단하면서 구조 개혁을 이루기 위한 초당적 장기 전략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연재합니다.
“세계 역사를 좌우한 사건 가운데 일부는 미리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합니다. 이때 정치가들이 기회를 잡으려면 (사안을) 항상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단결해야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겁니다.”
한독통일자문회의 참석차 최근 한국을 찾은 카스텐 슈나이더 독일 연방총리실 정무차관 겸 동독특임관은 ‘독일 통일’이란 역사적 사건의 배경 가운데 하나로 정치권의 관심과 협치를 강조했다. 슈나이더 차관은 초당 협력 필요성에 대한 한국일보 질의에 “정치인의 협력은 이해관계가 다른 상황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대결보다 협력이 더 효과적이라는 데 대한 최소한의 합의는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은 그 해 봄까지도 거의 없었을 것”이라며 국가 명운을 가를 중대 사안에 대한 결정은 결국 정치권의 꾸준한 소통과 단결이 필수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독일의 협치 모델은 통일부터 기후변화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의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항상 주목받아 왔다. 대통령제인 우리나라와 달리 선거 제도상 특정 정당이 과반을 차지하기 어려워 반드시 ‘연정’이 필요한 시스템적 요인도 있지만 협치 효과를 체득하며 역사적·시대적 과제들을 ‘함께’ 해결해온 경험이 더 크다. 당리당략에 매몰된 ‘제로섬 정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우리 정치에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슈나이더 차관이 언급한 '독일 통일 과정에서 국가 리더의 협치 노력'은 우리 정치권이 되새겨 볼 대목이다. 사회민주당 당수였던 빌리 브란트 4대 서독 총리가 ‘동방정책(서독이 통일 전 추진한 소련 등 동유럽 제국과의 관계정상화)’ 실현을 위해 당 논리만을 좇기보다 포용과 설득,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로 접근하면서 소련과 동유럽 국가와 관계 개선은 물론 독일 내 화해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었다. 동독 봉쇄 정책인 할슈타인 원칙을 포기하는 비판을 감수하면서 10여 년간 동서독의 민간교류를 추진하고 설득에 나선 것이다.
브란트 총리는 통일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 1972년 동독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는 기본조약을 체결했는데, 당시 격렬하게 반대해 온 보수당 기독교민주연합(기민련)은 기존 입장을 바꿨다. 기민련은 10년 뒤 자신들이 재집권한 뒤에도 동방정책을 이어갔다. 이런 초당적 노력은 1990년 독일 통일의 성과를 냈다.
협치의 저력은 현재도 살아있다. 기후위기라는 과제 앞에서 보수와 진보 정당이 뜻을 모아 석탄과 원자력 발전을 과감히 포기하는 결과를 도출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지난달 16일 “에너지 정책만 해도 국민 생활은 물론 국가 기반 산업, 지구의 미래까지도 좌우할 정책이라 숙의가 필요한데 우리나라의 경우 정권에 따라 극에서 극으로 바뀌어 혼선과 사회적 낭비가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태양광 확대 드라이브’를 걸다가 5년 후에는 ‘원자력 활성화 드라이브’를 걸며 정반대로 가는 등 정권마다 국가 주요정책이 뒤집히는 변덕스러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북유럽의 초당 협력 모델이자 '숙의 민주주의' 산실로 꼽히는 '국가조사보고서(SOU·Statens offentliga utredning)'는 우리 정치권이 참고할 모범사례로 꼽힌다. SOU는 사회갈등 예방 등을 위해 정부가 ‘특별위원회’를 꾸려 국익을 위해 정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할 분야에 대한 논의를 기록해 놓는 제도다. 스웨덴의 경우 SOU를 통해 연금 개혁과 에너지 정책, 정치제도 개혁 등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우리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이 협치를 위해 진정한 노력을 했는지 되묻는다. 연정이 제도화된 독일 등 유럽 사례를 대통령제인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긴 어렵지만, 다른 정당을 동반자가 아닌 ‘정적’으로만 여기며 정치 리더들의 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김만흠 전 국회입법조사처장은 “미국의 경우도 오바마가 주도할 때와 트럼프가 주도했을 때 (협치) 상황을 비교하면 차이가 큰 것처럼 결국엔 리더의 책임이 크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ABC(Anything but Clinton·클린턴이 하던 것만 아니면 다 괜찮다)’를 외친 조지 W 부시, ‘ABO(Anything but Obama·오바마가 하던 것만 아니면 다 괜찮다)’를 외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랐다는 것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09년 1월 취임 이후 ‘부시의 사람’으로 꼽힌 로버트 게이츠(국방장관)를 유임시키고, 국정 운영에 수시로 ‘태클’을 걸던 존 베이너 하원의장과 골프 회동을 갖는 등 대화 물꼬를 트기 위해 먼저 나섰다. ‘분점 정부(행정 권력과 입법 권력이 나뉜 정부)’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적이기에 앞서 대화해야 할 동반자라는 생각을 접지 않은 것이다. 새 정부 출범 후 영수회담을 갖는 데 2년이나 걸린 우리 정치와는 다른 모습이다.
앞서 브란트 전 총리는 “양자택일 결정을 국민에게 강요하는 건 정치적 무능의 증거”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치적 무능’을 끝맺을 때가 됐다고 조언한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에서는 부탁이나 설득이 필요할 때가 오는데도 우리 정치의 경우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해외 정치상황과는 다소 다르지만 최소한의 협치를 위한 시스템을 갖추는 건 리더(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선결 과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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