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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화학 물질 5000톤' 있다는데... 북한 '오물 풍선' 위험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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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900여 개의 오물 풍선을 살포한 데 이어 8일 밤에도 오물 풍선을 띄웠다. 열흘 여 만에 3차례에 걸쳐 오물 풍선을 날리면서 시민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앞서 살포한 오물 풍선은 전북 무주와 경남 창원 등 전국 각지에서 수거됐고, 자동차 앞유리를 박살 낼 정도로 민간 피해가 컸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등 군사적 도발보다 오물 풍선이 더 큰 위협으로 느껴진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국방 전문가들은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를 '쓰레기 풍선'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며, 풍선에 화학물질을 주입하는 순간 생화학 무기로 발전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군 당국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북한이 오물 풍선을 살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6년에도 대남 전단과 쓰레기, 오물을 넣은 풍선을 보낸 적이 있다. 당시 일부 지역에서 풍선이 떨어지면서 차량과 주택 지붕 등이 파손됐다. 그에 비해 이번에는 풍선 개수와 규모 등이 역대급이었다. 서울과 경기지역 도심에서 오물 풍선이 발견됐고, 물리적 거리가 먼 경남 지역에서까지 풍선 피해가 속출하면서 체감하는 공포가 더 커졌다.
북한 오물 풍선 살포는 사회적 혼란을 부추기기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이 많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의 탄도미사일이나 전단 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낮다"며 "우리나라 정부와 국민의 관심을 끌기 위해 북한이 극단의 방법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일 '왜 북한은 오물 풍선을 발사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불안을 자극하지만 파괴적이지 않은 수단"이라며 "오물 풍선 공격은 한국 정부가 국경 지대 주민들에게 오물 풍선을 '공습'이라고 실수로 경고하면서 혼란과 대중의 불만을 불러일으켰다"고 분석했다.
정부의 대북 전단 금지 조치를 유도하기 위한 조치로도 풀이된다. 탈북민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은 6일 대북 전단 20만 장을 북으로 날려 보냈다. 이 단체는 지난달 10일에도 대북 전단 30만 장을 보냈다. 겨레얼통일연대도 7일 대북 전단 20만 장을 담은 풍선을 북으로 띄워 보냈다. 데이비드 맥스웰 아태전략센터 부대표는 지난달 30일 미국의소리(VOA)에서 "남한의 대북 전단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치명적인 위협"이라며 "오물 풍선으로 위협을 가해 한국 정부가 대북 전단을 엄중하게 단속하게 유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날아온 오물 풍선에는 담배꽁초와 폐종이, 천조각, 비닐 등 쓰레기가 다수여서 안전에 위해가 되는 물질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심각한 인명 피해를 낼 수 있는 탄저균 등 생화학 물질이 담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신승기 한국국방연구원(KIDA) 북한군사연구실 박사는 "북한은 유사시 미사일을 쏠 수 있지만 풍선을 무기로 이용한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얘기"라며 "북한은 핵과 더불어 생화학 무기 역시 한미 당국을 압박하려는 차원에서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생화학 물질을 다량 보유했단 추정치도 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 발간하는 '동북아 안보 정세 분석' 자료에 따르면 북한이 보유한 화학작용제는 최대 5,000톤(t)으로 추정된다. 이는 서울시 면적의 4배인 2,500㎢를 오염시킬 수 있는 양이다. 신 박사는 "생화학 물질을 오물 풍선에 넣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이미 보유한 생화학 물질을 오물 풍선에 활용할 경우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이번 풍선에 있던 가축 분뇨나 인분에도 고병원성 바이러스가 있었을 수 있다"며 "통상 구제역 현장에서 대규모 살균 작업이 이뤄지는 것과 달리 이번 풍선 수거는 별도 방역 없이 이뤄진 만큼 안전 불감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북한이 고위험 물질을 풍선에 탑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양욱 연구위원은 "풍선은 살포할 지역을 정확히 특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주된 생화학 무기로 쓴다는 발상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신 박사 역시 "북한이 풍선에 생화학 물질을 넣는다면 그건 도발을 넘어 전쟁하겠단 의도로 해석될 것"이라며 "북한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그러지는 않을 것으로 (군 당국은) 보고 있다"고 했다.
북한의 오물 풍선 추가 살포 가능성은 높다. 군은 그동안 오물 풍선을 격추하는 대신 낙하한 풍선을 수거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내용물이 확인되지 않은 오물 풍선을 격추할 경우 생화학 물질 살포 우려가 있는 데다 격추를 위한 사격 시 민간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또 북한과의 전면전 위험도 있다.
군 당국은 오물 풍선 대응 방안을 강구 중이다. 지난 4일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정지로 북한의 도발에 대한 우리 군의 보다 즉각적인 조치가 가능해졌다. 이 사무국장은 "군이 풍선 등을 미연에 요격해 국민 생활 범위로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것 이상의 명쾌한 보호책은 없다"며 "국민을 지키는 게 군의 역할이란 점을 되새겨 오물 풍선을 포함한 미확인 물체를 적대적으로 인식·대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오물 풍선 민간 피해 보상 방안도 추진된다. 2021년 보상 근거를 마련하는 민방위기본법 개정이 추진됐지만 3년째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여야는 오물 풍선 등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는 민방위기본법 개정안을 지난 4일과 5일 나란히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민방위 사태가 아니더라도 적의 침투·도발에 피해를 봤다면 정부가 지원·수습·복구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단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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