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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숨기고 '손 아무개'라 기록해달라"...국보 '세한도' 국가에 기증한 손창근 선생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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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의 걸작 '세한도(歲寒圖·국보 180호)'를 비롯해 대를 이어 수집한 많은 국가유산(옛 문화재)과 재산을 국가에 기증한 소장가 손창근씨가 별세했다. 향년 95세.
국립중앙박물관과 유족은 고인이 지난 1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17일 밝혔다. 고인은 세한도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1929년 개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3년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한 뒤 아버지인 실업가 손세기(1909~1983)씨와 함께 사업을 하며 일군 재산으로 문화유산을 수집했다. 고인은 가진 것을 나누는 삶을 살았다.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연구기금 1억 원을 기부했고 2012년에는 경기도 용인의 산림을 산림청에 기부했다. 2017년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연구기금 51억 원을 쾌척했다.
추사의 걸작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와 15세기 최초의 한글 서적 '용비어천가' 초간본 등 문화유산 304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건 고인이 구순이 된 2018년이었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손세기·손창근 컬렉션' 기증식에서 고인은 "'손 아무개 기증'이라고 붙여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다"고 소회를 밝혔는데, 고인이 공개석상에 나선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세한도'는 고인의 마지막 기증품이다. 추사가 제주도 유배 시절인 59세 때 그린 것으로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는 논어의 구절을 모티프로 한다. 시련 속에서도 소나무와 측백나무처럼 변하지 않는 신의를 압축적으로 표현, 조선 후기 문인화의 걸작으로 꼽힌다. 고인은 2020년 1월 세한도를 국가에 기증했고, 같은 해 문화유산 보호 유공자로는 처음으로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고인은 훈장을 받는 자리에도 자녀를 대신 참석하게 하는 등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2020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청와대 초청도 고사하다가 끈질긴 설득 끝에 수락했다. 고인은 마지막 순간에도 별세 소식을 알리지 말라고 유족들에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은 부고를 내지 않고 가족장으로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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