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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傳]③ ‘야구장 K응원’의 뿌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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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적이며 열광적이고 공감적이라는 특징을 가졌다”고 평가되는 한국의 야구응원 문화. 외국인도 반해 버린다는 그 분위기는 과연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1971년 시작되어 ‘한국의 고시엔’으로 불리며 고교야구 최고 대회로 자리잡은 봉황대기엔 독특하게도 ‘응원상’ 시상이 있었다. 학교 간의 대결 중에 각 소속학교 응원단이 얼마나 뜨겁게 한마음이 되었는지가 채점의 기준. 당연히 다양한 응원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을 터다. 학생뿐만 아니라 교직원들까지 총동원되어 목 터져라 외치는 승리 구호에 일상의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건 덤이었다.
응원상은 지금까지 총 6번의 시상이 있었는데 그 중 배재고가 세 번(1976·77·86년), 경기고가 두 번(1978·98년), 북일고가 한 번(1987년) 수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봉황대기 야구장의 응원 모습은 계속 진화했다. 각종 프로 스포츠에서 당연하게 나타나는 치어리더가 등장하기도 했고, 요즘 TV중계 화면에서 자주 보이는 ‘스케치북 응원’의 초기 버전도 선보였으며, 코로나 시기엔 마스크까지 써가며 야구장을 찾는 한국인의 열정을 막지 못했다. 2024년 대회에선 또 어떤 신박한 ‘K응원’이 나올지 기대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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