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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부작 드라마 기다리는 당신, 옛날 사람"...드라마 분량도 '반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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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될 박훈정 감독의 첫 드라마 '폭군'의 회차 수다. 이처럼 드라마가 확 짧아지고 있다. '모래시계'와 '올인' 등 2000년대 초반까지 화제작은 주로 24부작이었다. 16부작이 표준이던 시기를 거쳐 2~3년 전부터 반토막이 나 '밤에 피는 꽃' '사내 맞선' 등 12부작 드라마가 잇따라 제작되더니 이젠 4부작 드라마까지 등장했다. 드라마 방송 회차가 급감한 것이다. '폭군' 4부작의 재생 시간은 약 2시간 40분으로 영화 한 편의 상영 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징어 게임' 시리즈의 황동혁 등 영화감독들이 줄줄이 드라마 제작에 뛰어든 이후 허물어진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상영 시간까지 비슷해지면서 더욱 흐릿해져 가는 양상이다.
드라마로 탈바꿈한 영화들
드라마가 짧아지는 흐름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OTT)으로 확 기울어진 콘텐츠 제작 및 유통 환경 변화에서 비롯됐다. 변화 배경은 크게 두 가지. ①영화로 기획됐던 작품들이 OTT에 드라마로 풀리면서 회차가 짧아졌다. 관람료 상승 등으로 극장에 대한 관객의 심리적 문턱이 높아져 '극장용 영화'의 흥행이 어려워진 여파다. 작품을 OTT에 팔면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총제작비와 비용의 약 10%를 얹어 받을 수 있지만, 극장에서 개봉하면 반드시 흥행해야만 제작비를 거둬들이고 부가 수입을 노릴 수 있는 구조다. '폭군'도 애초 영화로 기획돼 촬영까지 마쳤지만 극장이 아닌 OTT 공개로 유통 전략을 수정하면서 4부작 드라마로 탈바꿈했다. 영화와 드라마를 함께 만드는 한 스튜디오 관계자는 "투자 등이 위축되면서 모험(극장 개봉)보다 안정적 수익 확보가 중요해졌다"며 "'수리남'(2022)처럼 처음엔 영화로 기획했다 나중에 OTT에 드라마로 공개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 드라마 회차가 점점 짧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②방송사와 달리 적은 회차를 신경 쓰지 않는 OTT 유통을 노리고 기획되는 드라마들이 늘어난 것도 드라마가 짧아지는 주요 원인이다. 방송사들은 드라마 방송료를 회차별 제작비를 기준으로 정산하지만, OTT는 다르다. 총제작비를 기준으로 판권을 사들인다. '몇 부작 이상' 등 편수 제약이 없다 보니 OTT를 중심으로 짧아지는 드라마가 제작되고 그 작품들이 TV 편성으로 이어지면서 시청 습관까지 바꾸고 있다. 올 상반기 OTT에 공개된 오리지널 드라마를 기획한 제작사 관계자는 "TV가 유일한 플랫폼이었을 땐 방송사 구미에 맞게 어떻게든 16부 혹은 24부에 맞춰 드라마를 만들었다"며 "이젠 방송 횟수에 얽매이지 않고 4~10부작 드라마를 자유롭게 기획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OTT 좇던 드라마 제작사의 딜레마
드라마 회차 급감은 제작사들에 매출 감소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국내 최대 규모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은 올해 상반기 화제작인 '내 남편과 결혼해줘'와 '눈물의 여왕' 등을 기획하고도 지난 4~6월(2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5.7%가 떨어졌다. 스튜디오드래곤은 "TV 방송 회차 감소"를 영업이익 하락의 이유로 꼽았다. 올해 2분기 스튜디오드래곤 제작 드라마의 방송 회차는 42회로, 지난해 동기(83회) 대비 절반 가까이 줄었다. 드라마 제작사들이 OTT 친화적인 '짧은 드라마' 기획에 치중하다 보니 TV 매출이 줄어드는 딜레마에 처한 셈이다.
단역 배우, 시청자에게도 불똥
'짧은 드라마' 제작이 잇따르면서 단역 배우들의 생업 전선은 더욱 열악해졌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한빛센터)가 2023년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방송산업 종사자 17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년 중 4개월은 한 달에 열흘도 일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일은 일 없이 버텨야 한다는 얘기다. 한빛센터 관계자는 "1년 중 약 4개월이 사실상 실업 상태"라며 "최근 들어 프로그램 제작 규모가 축소되면서 일자리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드라마 스토리의 다양성이 약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회차가 짧은 드라마에선 주인공 서사에만 집중하다 보니 여러 인물의 다양한 세계관이 빛나는 드라마를 찾기 어렵다"며 "요즘 일부 시청자들이 유튜브 등에서 1980년대 작품인 '사랑과 야망' 등 옛날 드라마를 다시 찾아보는 이유"라고 부작용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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