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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끝은 결국,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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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주년 광복절을 맞는 감회가 새롭다. 하지만 한국 민주주의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모두 이룬 세계 선두 수준의 대한민국인데 정치는 왜 이 지경일까. 2023년 한국행정연구원이 실시한 사회통합실태조사를 보면 우리 국민들의 국회에 대한 신뢰도는 75.3%가 믿지 않는다고 나왔다. 갈수록 더욱 악화되는 느낌이다.
22대 국회가 시작되었으나 개원식조차 열지 못하고 있다. 192석의 압도적 다수를 획득한 야권은 개원 당시부터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 국민에게 정치적 효능감을 보여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지난 두 달 반을 보내며 기억에 남는 것은 탄핵의 일상화, 선례 파괴, 숙의 없는 입법독주다.
국회 권한이 탄핵을 통하여 정부를 마비시키는 것인 양 착각할 정도로 탄핵이 일상화되었다. 탄핵은 예외적이고 비상적 수단임에도, 이를 남발하면서 비정상의 일상화가 된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온다. 탄핵 사유가 되는지 여부는 헌법재판소의 몫이지만, 묻지마식 탄핵 소추를 남발하는 이유는 결국 직무집행 정지가 목적이 아닌지 의심을 사고 있다. 더욱이 수사가 진행 중이거나 공판이 진행 중인 사건의 담당 검사와 판사들을 탄핵하겠다고 겁박한다는 것은 보복 탄핵, 표적 탄핵의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국회가 어렵게 쌓아온 선례도 무자비하게 파괴해버렸다. 국회는 정책입장과 정치이념이 다른 대표자들이 말로 토론하고 협상하며, 인내를 통하여 합의에 이르는 전통을 확립해 왔다. 우리는 그동안 동물국회라는 조롱을 받아가면서도 한 발씩 나아가기 위하여 의회정치의 선례를 하나하나 쌓아왔다. 그러나 합의제 전통과 의회정치에서 존중되어야 할 상호존중과 상호예의에 관한 선례가 모두 무너진 느낌이다. 합의제 전통을 폐기하는 아주 나쁜 선례만 새롭게 남기고 있다.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상대 당이나 의원을 비난하고 모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입법과정에 숙의가 사라졌다. 소위원회와 위원회를 통하여 민생법안을 심의하는 장면을 보기 어렵다. 패스트트랙 등에 요구되는 숙의 기간도 모두 삭제하거나 축소시켜 버렸다. 숙의가 없는 국회는 입법공장에 불과하다. 국회선진화법의 도입 취지는 18대 국회에서 폭력국회를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다수당의 직권상정 권한을 내려놓고, 소수당에게 쟁점사안에 대하여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도입된 제도이다. 입법부가 독주를 한다면, 이것이 '국민의 의지'이므로 무조건 받아들이고 환영해야 하는 걸까. "국가의 크고 작은 이익은 모두 상대가 있고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문제를 투쟁으로만 풀 수 없고 자율조정, 대화와 타협만이 살길이다"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록은 되새겨볼 만하다.
22대 국회에서 나타난 변화를 보고 국민은 정치적 효능감보다는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느낌이다. 민심의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당리당략, 진영 이익과 의제만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 김진현 전 장관은 '대한민국 100년 통사'에서 위기 절정의 한국에서 새 정치, 즉 K정치를 만들어야 하며, 그것이 대한민국 도약의 첫걸음이라고 호소한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정치에서 시작되고 정치에서 끝난다. 정치의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회색지대에 빠진 한국 민주주의의 대전환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이제 내년 광복 80주년을 어떻게 맞을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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