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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폭염에 추석 앞 말벌 주의보… "벌초 때 밝은 옷 입으세요"

입력
2024.08.20 18:00
수정
2024.08.21 14:5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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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초·벌초하다 쏘여 사망사례 속출
봄철 냉해 없어 월동 여왕벌 많고
장기간 폭염으로 성장속도 빨라
7월까지 경북 벌 쏘임 40% 이상↑
"벌초시 챙 넓고 밝은 모자 필수
검정·갈색 등 짙은 색 복장 피하고
공격당하면 지체 없이 현장 이탈해야"

경북소방본부 119대원들이 도내 한 주택 처마에 지은 말벌집을 제거하고 있다. 경북소방본부 제공

경북소방본부 119대원들이 도내 한 주택 처마에 지은 말벌집을 제거하고 있다. 경북소방본부 제공

대구에 거주하는 정모(59)씨는 추석이 다가오면 몇 년 전 조상묘 벌초 때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산소 주변 잡목을 낫으로 치다가 갑자기 말벌떼의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벌집에서 급히 도망쳤지만 1, 2마리는 수십 m를 쫓아와 머리 쪽을 집요하게 쏘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20여 분 거리의 종합병원을 찾아 생전 처음으로 응급실 침대에 누워야만 했다.

말벌독은 꿀벌보다 수십~수백 배 강해 쏘이면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처음 쏘였을 때 별 이상이 없다가도 몇 주 뒤 다시 쏘이면 쇼크사할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해마다 전국적으로 10명가량이 벌에 쏘여 숨지고, 전국 소방서 구조 건수에서 화재현장보다 더 많이 차지하는 게 벌(집) 제거일 정도다. 특히 올해는 역대 최고 무더위로 말벌의 세력도 강해져 벌초와 추석 성묘를 앞두고 비상이 걸렸다.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벌 쏘임 신고에 따른 출동 건수는 507건으로 지난해 358건보다 40% 이상 늘었다. 벌집 제거를 위한 출동은 2022년 5,411건, 지난해 6,817건이었는데 올해 1만507건으로 폭증했다.

특히 7월 말 장마가 끝난 뒤에도 한 달가량 폭염이 지속돼 어느 해보다 말벌이 극성을 부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최문보 경북대 농업과학기술연구소 초빙교수는 “말벌 애벌레는 기온이 높을수록 성장이 빠르기 때문에 올해처럼 폭염이 극심한 해는 세력을 크게 확장한다"며 "벌 쏘임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올해도 말벌 공격을 받고 숨지는 사례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광복절인 15일 오후 충남 보령시 천북면에서 벌초하던 50대 남성이 벌에 쏘여 숨졌고 이튿날인 16일 오후 경기 군포시 산본동 초막골 생태공원에서는 제초작업을 하던 60대 남성 1명이 말벌에 쏘여 숨지고 60대 여성 1명이 부상했다. 앞서 7일 충북 청주시 문의면 도로 석축작업 현장에선 점심을 먹던 작업자들이 벌떼 공격을 받았는데 50대 1명이 쇼크로 숨졌다.

소방청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전국 벌 쏘임 사고는 2020년 4,947건, 2021년 4,872건, 2022년 6,953건, 지난해는 6,815건이었고, 해마다 10명가량이 벌에 쏘여 숨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쏘임 사고는 일상적이다. 소방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구조 건수 65만3,185건 중 벌집 제거 등 벌과 관련한 것이 12만4,280건으로 19%나 차지했다. 이는 화재구조(10만9,494건)보다 많을 정도다.

최 교수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무엇보다 벌초나 성묘를 갈 때는 △밝은 색 옷차림에 △챙이 넓고 밝은 색 모자를 쓰며 △향수 등은 말벌을 자극할 수 있는 만큼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말벌 의 천적인 곰이나 너구리 등의 털색깔과 비슷한 검은색이나 갈색 계통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말벌 공격을 받게 되면 신속히 현장을 이탈하고, 끝까지 따라오는 말벌은 손에 쏘이더라도 털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머리에 바로 쏘이면 치명적일 수 있는 만큼 모자를 쓰면 쏘이더라도 침이 두피에 닿지 않거나 독액이 조금만 들어가기 때문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벌초 현장에서는 흰색이 가장 안전한 색으로, 양봉업자나 119대원들이 입는 보호복이 흰색인 것도 이 때문”이라며 “벌초하기 전에 5~10분 정도 산소 주변을 살피고, 벌집을 발견하게 되면 임의로 제거하려 하지 말고 전문가나 119에 신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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