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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잡고 닭털 뽑던 요리사는 왜 오리 찾는 탐조가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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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슴새다!”
제10호 태풍 산산이 북상 중이던 지난달 29일 오후 울산 울주군 서생면 솔개공원. 강풍에도 태연하게 탐조(探鳥·자연에서 새를 관찰)에 몰두하던 홍승민(28) 짹짹휴게소 대표가 갑자기 소리쳤다. 먼바다로 나가야 볼 수 있는 여름철새 ‘슴새’가 카메라 렌즈에 포착된 것. ‘섬’새인지 ‘슴’새인지도 모르는 기자가 “도저히 못 찾겠다”고 하자 홍 대표는 “자주 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새를 보는 안목이 생긴다”며 “집 주변에 있는 새부터 관찰해보라”고 권했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된다잖아요? 탐조가 딱 그래요.”
하필 태풍 영향권에 든 날을 택한 건, 새들도 바람을 못 이겨 해안선으로 붙어서다. 배를 타고 나가지 않아도 먼바다에 사는 새를 관찰할 수 있는 '길일'이라는 얘기다. 특히 울산은 주전, 대왕암, 서생 등 바다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많아 초보 탐조가에게 안성맞춤이다. 실제 이날 탐조 30여 분 만에 중부리도요, 도둑갈매기, 제비갈매기, 괭이갈매기 등 제법 많은 바닷새를 만났다. 그중엔 파도에 떠밀려온 조류 사체나 낚싯줄과 그물에 몸이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 새도 있었다. 홍 대표는 “바닷새는 보통 평균 수명이 30년인데 그물에 걸리거나 쓰레기를 먹어서 5년도 못 살고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새를 보호하자고 하면 사람부터 살자고 하는데, 새가 없는 곳에선 사람도 살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영락없는 새 전도사인 홍 대표는 2년 전만 해도 오리를 잡고 닭털을 뽑는 게 일상이었던 요리사였다. 그는 "신메뉴 개발과정에서 색채미술을 공부하다 깃털의 풍부한 색감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이후 새를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어 국립공원에서 생태관찰용 '가락지 부착조사' 자원봉사를 신청했고, 거기서 날개깃이 다 빠진 채 피를 흘리며 바다를 건너는 어린 촉새를 만나 인생이 바뀌었다. 탐조하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새 관찰에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종’을 뜻하는 스파크 버드(Spark Bird)가 있는데, 홍 대표에겐 바로 그 촉새가 스파크 버드가 됐다. 그는 “생존을 위한 치열하고도 처절한 몸부림에 절로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들었다”며 “내가 경험한 것을 다른 사람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그 길로 고향인 울산에 돌아와 조류를 관찰하고 기록했다. 지난해부턴 새를 모니터링하는 모임 ‘짹짹휴게소’를 만들어 시민 60여 명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짹짹휴게소는 철새들이 이동하는 중간 기착지인 우리나라가 휴게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데 착안해 지은 이름이다. 회원들은 탐조활동은 물론 새를 위협하는 방음벽이나 유리창 충돌, 로드킬, 쓰레기 얽힘 피해 관련 조사도 병행한다. 1년 만에 노란부리백로, 큰부리도요, 큰뒷부리도요, 뿔쇠오리, 알류샨제비갈매기 등 울산에 살고 있지만 몰랐던 멸종위기종을 발견해 알리는 성과도 거뒀다. 전 세계에 1,300여 마리만 남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 ‘청다리도요사촌’을 발견해 화제가 된 이승현(15·문수중 3)군도 짹짹휴게소 회원이다. 등교하기 전 버스를 타고 탐조에 나설 정도로 새에 진심인 이군은 “새를 관찰하면서 자연스레 환경 문제도 관심을 갖게 됐다”며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해 생태계가 망가지지 않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많은 시민들이 탐조를 통해 풍부한 생태감수성을 지닐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조류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며 생태교육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 “새는 피사체가 아니라 생명이고, 이 생명의 존엄을 일깨우는 활동이 탐조죠. 거창한 장비는 필요 없습니다. 맨눈만 챙겨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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