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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등기 말소 소송' 고배... 끝나지 않는 전세사기 '가등기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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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피해자 지원을 더 두텁게 하는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을 최근 통과시켰지만,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전세사기꾼이 남긴 '가등기 덫'에서 벗어나려 법원에 소송을 내도 패소하기 일쑤다. 특별법에 따라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아도 구제받을 길이 사실상 없다는 얘기다.
22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인천지방법원은 이달 초 전세사기 피해자 이모씨가 가등기권자 김모씨를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청구권 가등기 말소 소송에서 피고인 김모씨 손을 들어줬다. 이씨의 청구사항은 모두 기각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아 정부 지원금(250만 원)으로 변호사를 선임하며 대응에 나섰던 이씨는 "더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며 망연자실했다.
사회 초년생인 이씨는 인천 부평구 한 빌라에 전세로 들어갔다가 집주인 A씨로부터 전세금 1억2,900만 원을 돌려받지 못했다. 빌라 100여 채를 소유한 A씨는 피해자만 100명이 넘는 대규모 전세사기로 수감 중이다.
이씨는 빌라 '셀프 낙찰' 말고는 전세금을 되찾을 방법이 없다고 보고 경매에 매달렸다. 이 과정에서 김씨가 설정한 가등기 탓에 사실상 경매 낙찰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아챘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가등기가 설정돼 있었고, 김씨는 이 회사 대표다.
돈을 빌려준 이가 채권을 담보하기 위해 하는 담보가등기와 달리 등기상 순위를 보전하기 위해 설정하는 '소유권이전청구권 가등기(매매예약)'가 걸린 주택은 경매시장에서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다. 가등기를 신청한 이가 본등기를 하는 순간 소유권 시점이 본등기 날짜가 아니라 가등기 신청일로 소급되기 때문이다. 제3자가 경매로 낙찰받아도 가등기권자가 본등기를 치면 소유권을 넘겨줘야 한다는 얘기다.
전세사기 조직이 이런 가등기제도를 적잖이 악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부도 제도 개선을 약속했지만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A씨 사건 피해자 중엔 이씨처럼 '○○개발'이 A씨 상대로 설정한 가등기 탓에 셀프 낙찰이 막힌 이들이 수두룩하다. 지역도 서울 구로·은평구, 인천, 경기 수원·부천시 등 다양하다. A씨가 무자본 갭투자로 빌라를 취득하면 이후 ○○개발이 가등기를 치는 식이다. 최근 경찰은 이씨에게 '○○개발'이 설정한 가등기만 100여 개가 넘는다고 얘기해 줬다. 이런 정황만 보면 A씨와 ○○개발 간 거래가 충분히 비정상적인데, 경찰 수사는 거의 진척이 없다는 게 이씨 주장이다.
이씨가 ○○개발 대표 김씨 상대로 가등기 말소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이씨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선순위 채권자인 이씨가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는 우선변제권을 갖고 있는 만큼 가등기가 이씨에 대한 사해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 이씨는 "가등기가 말소되지 않으면 누구도 이 빌라를 낙찰받지 않는데 우선변제권이 무슨 소용인가"라고 토로했다.
본보가 지지옥션에 의뢰해 확인했더니, 서울 은평구 응암동 한 빌라는 내달 15일 경매에 오르는데, 지금까지 11번 유찰됐다. 집주인은 A씨고, 가등기권자는 ○○개발이다. 법조계에선 예견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용우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세입자가 가등기 원인이 무효임을 입증해야 하는데 상당히 한계가 있다"며 "이런 구조적 문제가 있는 만큼 정부가 대안을 내놓지 않는 이상 전세사기 피해자가 가등기 덫을 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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