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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방어와 203조 빚 사이 줄타기...정부, 원가주의 기조 깨고 기업용 전기요금만 약 10%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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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전기요금 인상 부담을 떠안게 된 건 기업이었다. 한국전력이 빚 부담 완화와 물가 안정 사이의 줄타기를 한 결과다. 서민 경제를 생각하면 요금 인상 폭탄을 피하게 됐지만 유례없는 불경기 속 고전하고 있는데도 기업들은 이전보다 비싼 전기료를 내게 됐다.
한전은 24일 산업용 전기요금을 평균 9.7%, 킬로와트시(kWh)당 16.1원 올리기로 했다. 지난해 11월 산업용만 6.9%(10.6원) 올린 뒤 약 1년 만이다. 산업용(을)은 10.2%(16.9원)를, 산업용(갑)은 5.2%(8.5원)를 인상한다. 산업용 전기는 계약 전력 300킬로와트(㎾)를 기준으로 산업용(을)은 대기업들이, 산업용(갑)은 중소기업들이 쓴다. 대기업에만 '두 자릿수 인상률'을 적용한 셈이다.
요금 인상 결정의 밑바탕에는 두 가지 상황이 있다. ①한전은 203조 원에 달하는 빚으로 하루 이자만 122억 원 늘어나는 차입 경영 상황을 해소해야 한다. ②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IDC), 반도체 등 산업의 첨단 시설이 늘어나면서 전력망 확충 비용을 확보해야 한다.
정부는 오른 요금을 감당할 여력이 있는 주체로 대기업을 지목했다. 주택 및 일반용 전기요금은 서민 물가 방어 차원에서 올리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일반 가정에 적용되는 주택용과 일반용 전기요금은 이번에도 동결됐다.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23일 브리핑에서 "이번 인상까지는 고통을 분담하자는 차원에서 수출 대기업의 산업용(을) 중심으로 요금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산업계에선 당장 "대규모 설비를 갖춘 기업들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논평을 통해 "산업용 전기요금만 연속해서 인상하는 것은 성장의 원천인 기업활동에 부담을 주고 산업경쟁력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원자재, 물류비 인상 등으로 이중고를 겪는 국내 기업의 국제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가에서 전기요금 비중이 큰 철강업계도 걱정이 컸다. 현대제철은 "전기료가 제조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 정도"라며 "전기요금이 10원 오르면 원가 부담은 연간 수백억 원 커진다"고 했다. 중국 철강업계의 저가 공세로 판매 가격 인상마저 쉽지 않은데 전기요금 인상은 고스란히 수익 감소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번 산업용 전기요금 상승이 윤석열 정부가 에너지 정책의 밑바탕이라고 했던 원가주의를 배척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원가주의에 기반한 전기요금 결정 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원가주의는 전기 생산 원가가 비싸면 비싼 만큼 요금이 올라야 한다는 원리다. 원가주의에 따라 전기요금을 결정한다면 원가가 상대적으로 비싼 국내 주택용 및 일반용 전기요금이 산업용보다 더 많이 올라야 한다. 한경협의 지적은 이런 측면에서 산업용 전기요금만 올리는 건 원가주의에 반한다는 주장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원가주의는 윤석열 정부가 내건 에너지 정책 기조 중 하나이지만 집권 후 원가주의에 따라 요금을 결정한 적이 없다"며 "결국 국민 정서상 전기요금 인사에 대한 저항이 클 것으로 보고 만만한 기업에 희생을 요구한 것인데 불황기에 대기업들이 비싸진 전기요금만 떠안게 됐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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