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바람 앞 촛불'을 지키던... 다부동 전사 경찰관, 74년 만에 가족 품으로

입력
2024.11.01 15:59
수정
2024.11.01 16:35
17면
구독

독립운동가 임규 조카인 임진원 경사
유학산서 유해 발굴... 가족 DNA 일치

1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조지호 경찰청장이 6.25 전사경찰관 안장식에서 분향하고 있다. 경찰청 제공

1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조지호 경찰청장이 6.25 전사경찰관 안장식에서 분향하고 있다. 경찰청 제공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은 아버지를 평생 그리워하며 살아왔는데..."

세 살 딸과 두 살 아들을 두고 전쟁터로 떠난 아버지는 70년 넘게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집엔 사진 한 장 없었던 탓에 얼굴조차 희미했지만, 딸 임정순(77)씨는 아버지 찾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임씨는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투' 현장에서 유해가 발굴됐단 소식을 듣고, 보건소에 자기 유전자(DNA) 검사 시료를 제공했다. 몇 년이 지나도 들려오는 소식이 없자 3년 뒤, 간절한 마음에 다시 DNA 검사를 의뢰했다.

그러고도 기다림은 10년 넘게 이어졌다. 그사이 한 살 어린 동생은 끝내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1일, 임씨는 드디어 영면에 든 아버지 유해를 맞이했다. 헤어진 지 74년 만이다.

경찰청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고 임진원 경사에 대한 유해 안장식을 진행했다. 유가족과 조지호 경찰청장, 경기북부경찰청장, 국립서울현충원장, 유가족 단체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경찰은 유가족 거주지인 동두천시부터 현충원까지 동행하고 1계급 특진을 추서하며 예를 갖췄다.

1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6.25 전사경찰관 안장식이 진행되고 있다. 경찰청 제공

1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6.25 전사경찰관 안장식이 진행되고 있다. 경찰청 제공

임 경사는 3.1 운동 민족 대표 중 한 명인 독립운동가 임규의 조카이고, 백마고지 전투의 영웅인 임익순(육사 2기) 대령의 당숙이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후 국군 병력이 부족하자 6만3,000여 명의 경찰관이 전쟁에 동원됐는데, 임 경사도 참전했다. 당시 전쟁에 참여한 경찰관 중 3,100여 명이 사망했고 7,000여 명이 실종됐다.

임 경사는 6.25 전쟁 중 가장 치열한 격전으로 꼽히는 다부동 전투(1950년 8월)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칠곡 유학산 일대 고지에선 방어선 확보를 위한 전투가 약 한 달간 치열하게 벌어졌다. 국군 1사단과 미군은 다부동 일대에서 인민군 3개 사단 공격을 막고 방어선을 확보해 대구를 지켜냈다.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될 위기에서 거둔 승전이고, 여기에 인민군 주력을 잡아두면서 더글러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도 가능했다.

임 경사 유해도 유학산 일대에서 발견됐다. 고향이었던 전북 김제에서 200㎞ 넘게 떨어진 곳에서 50년 넘게 묻혀 있던 임 경사 유해는 2000년이 돼서야 빛을 봤다. 그러나 유해 발굴 이후에도 신원을 특정하긴 쉽지 않았다. 당시 DNA 감식 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던 탓에 발굴 이후 신원 확인까지 24년의 세월이 더 소요됐다. 74년 만에 아버지를 만난 임씨는 벅찬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임씨는 "머나먼 타향 땅에 묻혀 계시던 아버지를 이제라도 서울현충원으로 모실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경찰은 전사·순직 경찰관을 기리기 위해 매년 6월 6일 추념식 등 다양한 추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앞으로도 전쟁 당시 국가와 국민을 수호하다 장렬히 산화한 전사 경찰관을 빠짐없이 찾아내고 그 공훈을 기리기 위해 유해 발굴 사업과 현충 시설 정비사업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전유진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