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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 아니냐" 국방과학연구소 2차 가해에 성폭력 피해자 투신

입력
2024.11.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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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상사가 출장 중 숙소에서 "한번 자자"
징계위원회에서 위원들이 2차 가해 발언
"가해자와 각별한 사이" "망상 아니냐" 등
징계위에서 격리된 뒤 5m 아래로 투신

지난해 12월 대전 유성구 국방과학연구소 정문 모습. 대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대전 유성구 국방과학연구소 정문 모습. 대전=연합뉴스

공공기관인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직장 상사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사건 관련 징계위원들로부터 2차 가해 발언을 듣고 건물 밖 5m 아래로 투신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11일 오마이뉴스와 JTBC '사건반장' 보도에 따르면 국방과학연구소 소속 직원인 피해자 A씨는 올 8월 팀 내 상사인 B씨와 국내 출장을 갔다. 두 사람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각자 숙소로 돌아갔는데, B씨가 '한번 자자' '하룻밤 같이 보내자'며 A씨 숙소에 침입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A씨보다 12세 많은 유부남이었고, A씨는 '그만둬 달라. 상간녀가 되고 싶지 않다'면서 20분가량 완강히 저항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B씨의 시도는 미수에 그쳤다. 그러나 A씨는 이 사건 이후 심한 정신적 충격을 입고, 급성 스트레스 장애 등의 진단을 받았다.

8월 발생한 국방과학연구소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눈 대화를 재구성한 내용. JTBC '사건반장' 캡처

8월 발생한 국방과학연구소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눈 대화를 재구성한 내용. JTBC '사건반장' 캡처

A씨는 출장에서 돌아온 뒤 직장 내 고충처리위원회에 B씨를 신고했고, B씨의 행위가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된다는 점이 인정됐다. 그런데 최근 B씨의 징계 수위를 결정하기 위해 열린 징계위원회에서 A씨를 향한 징계위원들의 2차 가해 발언이 이어졌다. A씨는 성폭력 사건 이후 병가를 낸 뒤 복귀했는데, 징계위원장이 A씨를 향해 '정신과 약을 먹고 있어서 착란이나 망상이 있는 것 아니냐'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징계위원은 '원래 B씨와 각별한 사이가 아니냐'면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인 A씨가 원인을 제공한 것처럼 몰아갔다고 한다.

이에 A씨가 울면서 항의하자, 징계위 측은 A씨를 별도의 공간에 격리 조치했다. 징계위원들의 발언에 극심한 모욕감을 느낀 데다 조직이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고 여긴 A씨는 창문을 통해 건물 밖 5m 아래로 뛰어내렸다. A씨는 지나가던 행인의 신고로 병원에 이송됐으나, 척추와 골반 등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B씨는 징계위에서 정직 1개월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B씨와 2차 가해 발언을 한 징계위원 등을 경찰에 고소했다. 연구소 측은 입장문을 통해 "이번 사고는 외부 전문가가 참여한 징계위 심의 과정에서 발생했다"면서 유감을 표명했다. 이어 "사고에 대한 사실을 자체적으로 확인 중이며, 향후 경찰 수사가 진행될 시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수사 결과에 따라 엄중히 조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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